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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아 Nov 24. 2024

낭만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독서일기 『매우 초록』 (노석미, 난다)

비록 지금은 닭장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시골에 들어가 작은 단층 주택을 짓고 살았으면 하는 로망이 있다. 이왕이면 지붕은 삼각형 모양의 박공지붕이면 좋겠고, 창밖으로 커다란 나무가 보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 반찬으로 먹을 채소 정도는 자급자족하면서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물론 시골 생활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낭만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각종 야생 동물 혹은 곤충들과의 공생, 도심에서 멀어짐으로써 얻는 고요함 대신 감수해야 하는 여러 현실적 불편함들, 그리고 외지인으로서 한동안 견뎌야 할 텃세 같은 것…. 이런 것들을 모두 감당할 용기가 생겼을 때 비로소 귀촌의 꿈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40대의 싱글 여성인 화가가 탈서울을 결심하고 시골로 땅을 보러 다니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매우 초록>은, 귀촌을 한번쯤 꿈꾸어본 사람이라면 서두부터 흥미롭게 읽어갈 수밖에 없다. 예술가에 대해 호의를 갖고 있는 부동산업자를 만나 양평의 어느 산자락에 있는 땅을 사게 된 일부터 해서, 목수를 구해 소박한 집을 짓고 장작 난로를 놓기까지의 이야기들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시골 정착의 과정을 그녀와 함께 겪고 있는 것만 같다.


1부 ‘땅과 집’, 2부 ‘정원과 밭’, 3부 ‘동물을 만나는 일’, 4부 ‘사람을 만나는 일’, 5부 ‘집과 길’의 총 5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시골 정착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연과 집, 동물과 사람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는 훌륭한 일상 에세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작가가 시골 생활에 대해 이상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지는 않다.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서술하지만, 그 속에서도 너그러움과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책 중간중간에 컬러로 등장하는 화가 노석미의 그림은 보너스 선물이다.     


* 2022년 8월 부산 연제구청 소식지에 수록했던 글을 일부 수정하여 게재합니다.



책 속에서


- 나와는 차원이 다른 곳에서 세상에 이름이 불리든 안 불리든 개의치 않으며 조용히, 아름답게 살아가는 풀들처럼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존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을 바로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실천하며 사는 존재들이 있다. 순하고, 곧게 사는 일은 힘들다. 그래도 세상에는 그렇게 사는, 살려는 사람이 있다. (1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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