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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읽고 쓰다

왼손으로 증명하기

독서일기 『쓰는 여자, 작희』 (고은규, 교유서가)

by 서정아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애써 증명해내야만 나를 지킬 수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이 길고 외로운 싸움일 때, 그때의 마음.

다른 누군가는 손쉽게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스스로 증명하지 않아도 주위에서 알아서 증명해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증명을 넘어서 호화로운 성벽으로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을 것이다. 그 성벽 밖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홀로 싸우는 사람. 나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본다. 그 사람의 그림자에서 당신을 보고 나를 본다.


『쓰는 여자, 작희』는 그렇게 분투하는 삶 속에서 ‘쓰기’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어렵게 써낸 글이라 하더라도 그 결과물이 독자들에게 제대로 가닿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그런데 심지어 작희는 자신이 쓴 소설을 도둑맞고 만다. 그것도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남자 오영락에게.


사고로 오른손이 망가진 뒤 작희는 절망스러운 심정이 된다. 그럼에도 남아 있는 왼손으로 꾹꾹 눌러 일기를 쓴다. ‘왼손으로 나를 증명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135p) 나는 이 문장에서 마음이 얼얼해져 한참 동안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왼손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일이 오른손으로 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펜을 놓지 않는 작희. 나도 미래에서 찾아온 유령이 되어 잠깐이나마 그의 곁에 머물며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왼손으로 어렵게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이겠지만, 쉽지 않더라도 끝까지 함께 써나가자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므로 소설 속에 흥미로운 설정으로 등장하는 ‘작가 전문 퇴마사 미스터’의 처방은, 쉽지 않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잘 챙겨 먹고, 산책을 하고, 매일 일정한 시간 집중해서 해야할 일을 하는 것. 끝내 증명을 해내든 실패하든, 나의 마음과 시간을 들여 진심을 다해 한 일들은 그 순간 속에 이미 존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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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 당신은 지금, 당신의 문장이 있나요? (2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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