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고미숙, 북드라망)
소리 내어 책읽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묵독도 좋지만 좋은 구절은 꼭 소리를 내어 읽고 싶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활자를 읽어나가다 보면 그 문장들이 고스란히 내 몸에 쌓이는 느낌이 든다. 무대공포증이 있어 여러 사람 앞에서 뭔가를 하는 것은 언제나 피하고 싶은데도 낭독 요청만큼은 흔쾌히 응하게 되는 이유다. 물론 소리 내어 글을 읽게 되는 자리가 그리 흔치는 않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하는 글쓰기 수업 때 문학작품의 일부를 수강생들에게 낭독해 주기도 한다. 물론 수강생 모두가 나의 낭독을 좋아하는지는 확신할 수가 없다. 그래도 어쭙잖은 말솜씨로 뻔한 이야기들만 늘어놓느니 훌륭한 문학작품을 읽어주는 편이 그들에게도 더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껏 작은 모임, 그러니까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만남 속에서 좋은 글을 낭독해볼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낭독을 그리 좋아하면서도 말이다.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에서 저자 고미숙은 이렇게 말한다. “가족들은 왜 매일 똑같은 말만 주고받는가? 하루에 한 구절이라도 고전을 낭송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중략)… 연인끼리도 마찬가지다. 늘상 비슷한 말만 주고받지 말고 서로 고전의 구절들을 들려줄 수 있으면 훨씬 ‘매혹적인’ 존재들이 될 것이다.”(126p)
저자는 ‘새로운 독서법’이자 삶을 바꾸는 운동으로서 ‘낭송’을 주창한다. 책을 그저 소리 내어 읽는 낭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글을 외워 낭독한다는 의미이다. 책의 제목에 있는 ‘큐라스’라는 단어는 케어(care)의 라틴어이고, 이 책에서는 낭송에 배려, 보살핌, 치유 등의 기능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외우는 것이 어렵다면 낭독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한다. 좋은 시 한 편, 가슴에 남는 고전 한 구절씩이라도 메모해서 지니고 다니다가 친구를 만날 때 선물로 읽어준다면 어떨까. 그런 선물을 좋아해주는 친구가 있다면, 각자 나이가 들어가더라도 뻔하지 않은 언어 속에서 서로를 설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2023년 7월 부산 연제구청 소식지에 수록했던 글을 일부 수정하여 게재합니다.
책 속에서
- 생일파티나 결혼식도 그렇다. 화려하고 럭셔리한 물량 공세만 생각할 뿐 그 공간을 고매한 말과 소리로 채울 생각은 하지 않는다. 친구의 생일파티에 가서, 혹은 직장 동료의 결혼식장에 갔다가 니체나 스피노자, 공자나 연암 박지원의 문장을 듣게 된다면 그야말로 최고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 (12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