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문학동네)
주위가 온통 까만 밤. 이마에 랜턴을 차고 산에 가는 남자에게, 무섭지 않냐고 물은 적이 있다. 산에 가끔 멧돼지가 출몰한다는 안전 문자가 와서 조금 걱정이 된다고, 멧돼지가 나타났을 경우의 대응법을 숙지해 두고 있다고 그는 대답했다. 나는 그 태도가 부럽기도 하고 심지어 좀 얄밉기까지 했다. 밤에 혼자 산에 가면서 오직 멧돼지만 두려워할 수 있다니. 밤늦게 혼자 택시를 타도 겁먹지 않을 수 있다니.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골목길을 걸어도 비난받지 않을 수 있다니. 물론 내가 느끼는 부러움과 얄미움은 그 사람 개인에 대한 감정이 아니다. 그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산에 갈 수 있고 밤늦게 택시를 탈 수도 있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술에 취해 좀 비틀거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행위들이 여성에게는 어쩔 수 없는 두려움이자 자기 검열의 대상이 된다. 그건 단순히 어른들의 잔소리와 훈계만으로 학습된 것은 아니다. 직, 간접 경험에서 비롯된 실제적이고도 구체화된 두려움이며 도무지 잊을 수 없이 깊게 새겨진 기억들이다.
김지연의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에 수록된 단편소설 「공원에서」. 주인공 수진은 만원버스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공원 벤치에서 희롱 섞인 위협을 당하고, 공원 화장실 입구에서 술에 취한 남자와 시비가 붙었다가 폭행을 당한다. 그 모든 상황들이 낯설지 않다. 더 씁쓸한 것은 그런 상황에서 여성은 스스로가 피해자임을, 피해자다웠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게 왜 겁도 없이 아무데서나 잠이 들어?”, “그러게 왜 밤늦게 혼자 돌아다녀?”, “그러게 왜 술을 그렇게 먹고….” 그런 말들 속에는 네가 피해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비난이 깔려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여성이기에, 어린이이기에, 노인이기에, 외국인이기에, 그런 약자의 위치에 있기에 스스로 더 조심하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좋은 사회가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규범화되고 통용되어 오던 관념과 언어들을 곱씹어 보게 된다. 소설 속 화자가 ‘개 같은 것들’이라는 말을 계속 되뇌자 기존의 관념이 무너지고 ‘아주 사랑스럽다’라는 식의 완전히 다른 의미로 재탄생한 것처럼, 어쩌면 그 곱씹음과 되뇜 속에서 나는 오래도록 잘못 규정되어 온 관습에서 벗어나 그 존재 본연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밤에 공원을 산책하거나 산에 가는 일이, 누구에게나 그저 가벼운 산책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긴 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관찰하고, 마침내 자신과 세계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 밤이든 낮이든 혼자이든 여럿이든, 산책은 그저 산책. 어떤 두려움도 비난도 자기 검열도 없이, 우리 모두의 산책이 그저 가볍고 편안한 산책일 수 있기를.
책 속에서
개 같은 것을 쓰다듬는 것은 좋다. 개 같은 것들, 개 같은 것들, 개 같은 것들. 나는 그 말을 계속 되뇌었다. 되뇔수록 그 말은 내 속에서 박살나고 뭉개져서 원래 통용되는 의미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다른 의미로 조합되었다. 나는 개를 쓰다듬었다. 개의 이름은 토리이고 토리는 아주 사랑스럽다. 그것이 아주 개답다고, 개 같다고 생각했다.
- p.282 「공원에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