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예언자의 노래」 (폴 린치, 은행나무)
2023년 부커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2024년 11월 20일에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되었다. 소설은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우파 정권이 비상대권법을 시행한 후 전체주의적 국가 권력이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주의와 개인의 평온한 일상이 파괴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해서 소설을 썼지만, 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후 2주가 채 못 되어 우리나라에는 비상계엄이라는 비상식적인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앞으로 벌어질 우리나라의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출간 시기가 놀랍다. 제목마저도 『예언자의 노래』라니.
소설의 주인공인 아일리시는 남편과 함께 네 명의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정신없지만 평범하게 흘러가던 그녀의 일상은 전체주의적 국가 권력의 횡포로 인해 하나둘 깨어지기 시작한다. 교원 노조 소속이었던 남편 래리는 합법적인 시위를 했으나 불법 체포되고, 큰아들 마크는 집을 떠나 반군에 가담한다. 정부군과 반군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적 삶은 엉망으로 무너져 내린다. 가장이 된 아일리시는 직장마저 잃게 되는데 인플레이션은 갈수록 심화되고 나중에는 전기와 수도마저 끊긴다. 소설은 뒤로 갈수록 비극의 절정으로 치달아 간다. 나중에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다.
이것이 그저 허구의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 답답한 마음도 함께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에도 있었던 일들이고, 지금도 지구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며, 가까운 미래에 또다시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더군다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자가 풀려나고 그에 대한 판결이 지지부진하게 연기되는 지금의 현실에서 읽게 된 이 책은, 혹여나 잘못된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갈 경우 우리에게 벌어질 일들을 구체적으로 직시하게 한다. 너무도 공포스럽고 불안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내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버지가 말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면 그것이 아이에게는 어떤 세상일까? 세상이 혼돈에 굴복하고, 당신이 걷고 있던 발밑의 땅이 허공으로 날아가고, 태양이 당신 머리에 어둠을 비춘다.’(60p) 내 아이에게 그런 세상을 주고 싶지 않다. 국가 권력에 의해 사랑하는 이를 잃게 되는 일을, 혼돈과 모순 속에서 헤매다가 끝내 어디론가 도망쳐야 하는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 실은 나조차도 그런 상황에는 절대 놓이고 싶지 않다.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언자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지나온 역사들이 예언이고, 지구 저 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예언이며, 우리가 읽는 문학이 예언이고, 지금 보고 듣고 있는 것들이 모두 예언이다. 예언자가 부르는 노래들을 무심히 흘려듣지 않고 그 노래의 의미를 제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세계를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책 속에서
예언자가 노래하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과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의 종말이다, 세상은 어느 곳에서는 늘 끝나고 또 끝나지만 다른 곳에서는 끝나지 않는다, 세상의 종말은 늘 특정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세상의 종말이 당신 나라에 찾아가고 당신 동네를 방문하고 당신 집의 문을 두드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머나먼 경고, 짤막한 뉴스, 전설이 되어버린 사건들의 메아리일 뿐이다,
- 폴 린치 「예언자의 노래」 p.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