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여름 정원>을 보고 (소마이 신지 감독 / 2025년 8월)
유독 길고 무더웠던(9월이 코앞이지만 여전히 무더운) 올여름. 생각해보니 이번 여름엔 바다나 계곡물에 발 한 번 못 담가보고 지나갔지만 그래도 책 몇 권과 영화와 음악들이 나를 이곳저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소마이 신지 감독의 1994년 개봉작(최근 리마스터링 되어 재개봉한) <여름 정원>도 그랬다. 유년의 어느 여름날을 떠올리게도 하고, 내가 아직 겪어보지 않은 노년의 어느 여름날도 상상해보게도 하는 영화. 일본의 어느 작은 마을을 잠시 여행하고 온 기분.
영화는 한 노인과 세 명의 어린 소년들 사이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는 게 점점 어렵게 느껴지는데, 영화 속 노인의 경우 아예 그 문을 잠가버린 인물이다. 전쟁에 참전했을 때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과 트라우마는 그를 모든 관계로부터 고립시켰고, 그 누구와도 소통을 거부하며 외롭게, 죽음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며 살아가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년들의 대책 없는 천진난만함은 그토록 단단하게 닫혀있던 노인의 문을 열게 만든다. 때때로 삶에는 그런 대책 없음이 필요하기도 하다. 굳게 닫혀 있는 문을 열기 위해서는 말이다. 이성적 판단과 명확한 계획들, 그런 어른의 태도는 의젓한 일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배제해 버리기도 한다.
마치 노인의 마음을 빗댄 듯 외부와 그의 집을 차단하고 있던 정원, 들쑥날쑥 높게 자란 잡초들로 가로막힌 그 공간을 세 아이들은 아름다운 여름 정원으로 재탄생 시킨다. 풀을 베고 예쁜 꽃을 심고, 아름답게 탈바꿈되어가는 그 공간을 바라보며, 이제 친구가 된 네 사람은 수박을 맛있게도 먹는다.
노인의 옛사랑과 그의 손녀딸이 실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고, 소년들 덕분에 몇 십 년 만에 그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는 설정은 너무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스토리상의 단점은 작품의 분위기나 다른 묘사들로 충분히 커버가 되는 것 같다.
어떤 악의도 없이 ‘노인의 죽음을 꼭 목격해 보겠다’던 어린 소년들의 대책 없는 천진난만함은 결국 현실이 되며 그 아이들에게 커다란 상실감과 슬픔을 안겨주고 만다. 그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정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실과 슬픔을 겪으며 아이들은 천진성을 조금씩 잃게 되고, 앞으로 다가올 고통들에 대해 예비하며 대책도 세우게 되겠지만, 그런 시간을 겪었기에 세 명의 소년은 조금 더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해가지 않았을까.
지금 내 마음의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