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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으로 돌파하는 용기

독서일기 『착한 척은 지겨워』 (김한민. 워크룸프레스)

by 서정아

올여름은 유독 덥고 길었던 것 같다. 오래된 에어컨의 실외기가 가끔 돌아가지 않을 때면 섬뜩해졌고, 에어컨 없이 살았던 때를 떠올려보려 했으나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기까지 했다. 기후 위기에 대한 고민 때문에, 나중에 아이를 다 키우고 나면 에어컨 없이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문명의 이기에 대한 의존성과 나의 나약함만 확인하게 되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기후를 걱정하고, 나무를 아낀다… 가치를 옹호하긴 쉽지. 근데 그걸 위해 작은 쾌락이라도 포기해야 하는 순간 즉시 쾌락보다는 가치를 희생시키지.’(111p) 김한민 작가의 그래픽 노블 『착한 척은 지겨워』에서 나오는 이 말은 우리의 흔한 ‘착한 척’에 대해 정확히 비판한다. 좋은 가치들을 말로만 옹호하는 것, 내 쾌락을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만 소극적으로 실천하는 것,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의 노력은 하지 않는 것…. 그 동안 내가 실천한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그저 ‘착한 척’은 아니었던가 되돌아보게 된다.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시민운동가 ‘나’가 자신과는 다르게 세상을 정면 돌파하는 기후 활동가 마야와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기후 위기에 대한 소시민들의 태도에 일침을 날린다. ‘나’의 눈에 비친 마야는 이런 사람이다. ‘명민했고 성실했고 열정적이고 확신에 찼으며 비전이 있었고 추진력이 엄청났고 깨끗했다. 이 세상 모든 정치인들이 추구하는 덕목들이지만, 유일한 차이라면 그녀는 정말로 그랬다는 것. 단, 착하진 않았다. 좀 덜 착한 게 아니라, 완벽하게 안 착했다.’(202p) 마야는 과격한 변화를 꿈꾼다. 현시대를 유지하는 모든 시스템을 포맷하여 동물을 해방시키고 지구의 절반을 자연에게 돌려주고 탈성장-탈자본-탈인간 중심의 원리로 움직이는 세상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바로 마야와 같은 인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기후 악당들과 소시민의 나약함 때문에 망가져가는 지구를 구하려면.


* 2023년 9월 부산 연제구청 소식지에 수록했던 글을 일부 수정하여 게재합니다.




착한 척은 지겨워.jpg


- 같은 재앙을 맞더라도 누군가는 그 재앙을 불러온 주범-가해자-원인 제공자, 누군가는 재앙의 온전한 피해자, 누군가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그러나 가해자에 순응했기에 결과적으로 재앙에 기여한 동조자. 누군가는 가해자에게 저항해 재앙의 피해를 줄인 공로자이다. (1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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