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닫힌 방」 (장 폴 사르트르. 민음사)
‘그러니까 이런 게 지옥인 거군. 정말 이럴 줄은 몰랐는데……. 당신들도 생각나지, 유황불, 장작불, 석쇠…… 아! 정말 웃기는군. 석쇠도 필요 없어,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에 나오는 구절이다. 문장 자체가 워낙 인상적이고 강렬하다보니 표면적인 의미만으로도 여기저기서 자주 인용이 된다. 그런데 사르트르가 말한 ‘타인=지옥’의 의미는 그의 희곡을 읽었을 때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어느 날 세 영혼이 도착하게 된 지옥, 그런데 그 지옥의 모습은 유황불이 타오르는 끔찍한 배경이 아니라 그저 창문도 출구도 거울도 책도 없는 닫힌 방일 뿐이다. 거울에 자신을 비춰볼 수가 없고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므로 오직 타인의 시선에 의해서만 자신이 규정되는 곳, 주체성과 자유를 잃게 되는 곳,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매우 민감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내가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나를 안 좋게 보지 않을까. 그렇게 타인의 시선을 늘 신경 썼기에 싫은 일도 거절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타인의 시선과 규정에 매몰되어버릴 때 나의 자유는 사라진다. 노예가 된다.
다행히도 어느 순간 나는 타인의 평가에 대한 두려움과 집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 그렇게 잘 보이려 애를 써도 결국은 다들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인정하고 나니, 타인이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하든 어떻게 생각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잘 보이려 노력하고, 그들에게만큼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지만 그건 타인의 평가에 얽매이는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좋아하니까 잘보이고 싶은 단순한 마음이다.
타인은 지옥인가. 그럴 수도 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지옥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자신의 좁은 시선으로만 상대를 평가하지 않고 더 큰 시야에서 서로를 함께 보려고 노력할 때, ‘너’와 함께 ‘우리’가 되고 싶은 진심을 잃지 않을 때, 그 순간 우리는 어쩌면 닫힌 방의 비밀 출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 2024년 10월 수영구도서관 소식지에 게재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