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보고 쓰다

게으른 기록(3)

제대로 쓰지 못한, 그러나 기억하고 싶은 영화들.

by 서정아

1. <쇼아> 클로드 란즈만 감독


홀로코스트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9시간짜리 영화.

영화의 전당에서 특별전을 하면서 1부와 2부로 나누어 상영하였는데 상영 마지막 날 1부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상영 시간이 길어 부담이기는 했지만, 11년에 걸쳐 만들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런 생각조차 미안하다. 영상은 증언, 인터뷰, 현장 방문으로만 구성되었고, 자료 화면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역사적 비극에 대한 우직한 증언과 기록의 방식.



2. <넌센스> 이제희 감독


“가까운 존재한테는 상처를 받고 오히려 낯선 이에게는 위안을 받는 것이 인간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위로받고 싶은 인간의 나약한 내면을 이용해 가스라이팅하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한 남자가 결국 그들의 삶을 파멸로 이끌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보험회사의 손해사정사로 일하는 유나는 언제나 냉철한 일 처리로 직장에서 인정을 받으며 높은 성과를 올리지만 아버지가 남겨놓은 큰 빚 때문에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어느 날 유나는 의문의 사망 사고에 의한 보험금 수령자 순규를 조사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순규가 하는 말들이 유나의 단단해 보였던 내면을 흔들어 놓는다.

일상의 상처와 고통을 잘 견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음 깊은 곳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사람들.

무너지기 쉬운 순간들.



3. <나의 이름은 마리아> 제시카 팔루 감독


예술계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었던, 약자에 대한 착취와 폭력의 문제를 다룬 전기적 영화.

19세의 나이에 영화 세계에 진입하게 된 마리아 슈나이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라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끼며 열정을 가지고 촬영에 임한다. 그러나 촬영 과정에서 그녀가 동의하지 않은 강간 장면 촬영이 폭력적으로 구현되고, 마리아는 혼란과 고통에 휩싸이게 된다.

과거의 남성 중심적 예술 환경, 그리고 폭력에 대해 저항하기 힘든 상황에 놓인 어린 여성의 모습.



4. <윗집 사람들> 하정우 감독


하정우와 공효진 두 사람이 부부로 나오는데, 권태로운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중 위층으로부터 들려오는 성생활 소음으로 인해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던 중 위층 부부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식사 자리에서 네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주인공 부부의 숨겨져 있던 은밀한 욕망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청불이지만 눈으로 딱히 보여지는 건 없고 주로 성적 농담과 자유분방한 대화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재미있고 유쾌하며, 각자의 마음속에 숨겨진 욕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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