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여행과 나날>을 보고 (미야케 쇼 감독 / 2026년 2월)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주말 아침이었다. 올 겨울 처음 보는 눈. 잠깐이었지만 가느다란 눈발이 흩날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어 좋았다. 조조영화를 보러 나섰던 길인데, 마침 또 영화의 배경과도 어울리고.
추위를 많이 타서 일상의 겨울은 힘든데, 겨울이 배경인 영화는 좋다. 화면을 가득 채운 설경도, 고드름도, 주인공의 입에서 나오는 하얀 입김도.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받은 영화이고, 주연인 심은경 배우는 일본의 키네마준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물론 상을 받았다고 다 좋은 건 아닌데, 이 영화는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소설 한 편을 읽은 것 같기도 하고, 일본의 소도시에 잠시 머물다 온 것 같기도 하다.
특별히 다이내믹한 스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각본가가 주인공인데 영화 시사회가 끝나고 난 뒤 어느 마을로 훌쩍 여행을 떠나게 되고, 외딴산장에 묵게 되며 무뚝뚝한 여관 주인과 며칠을 보내게 되는 이야기.
전반부는 그녀가 쓴 시 나리오의 장면들이 영화 속 영화로 등장하는데, 여름의 바닷가가 배경으로, 삶이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두 남녀의 만남과 교감을 그렸다.
온몸으로 비를 맞고, 거센 파도에 몸을 맡긴 그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지루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지나갈 한 순간이라 해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풍경들이 있다.
그리고 후반부는 주인공의 여행 장면인데, 기차가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면 눈으로 뒤덮인 세상이 펼쳐진다. 소설 <설국>의 첫 문장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특별한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었기에 숙소를 예약하지 않은 주인공은, 폭설로 인해 주변의 모든 숙소가 만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난감해 하다가 동네 주민에게 도움을 청한다. 동네 주민은 그녀가 내민 지도의 바깥을 가리키며 친절하게 말해준다. 이 지도에 보이지 않는 산으로 올라가면 작은 여관이 하나 있는데 거기는 아마 방이 있을 거라고.
그렇게 찾아간 산장은 분위기가 무척 묘하다. 심지어 무뚝뚝하고 나이든 주인 남자와 난로를 사이에 두고 같은 방에서 자야 하는데, 남자는 무심하게 코를 골며 자고 괘종시계는 정시마다 시간을 알린다. 잠이 올 리가 없는 그곳에서 말똥말똥 밤을 지샌 그녀는, 곧 그곳에서의 하루하루에 적응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여관 주인이 충동적으로 전처의 집 연못에 가서 무척 비싼 잉어를 훔쳐오던 씬.
나무로 된 통에 물과 잉어를 담아 온 여관 주인이 약간 흥분한 채 그 잉어가 얼마나 비싸고 좋은 것인지를 설명하니, 주인공은 그렇게 비싼 잉어는 맛도 좋냐고 묻는다. 그러자 여관 주인은 어이 없어하며 이건 먹는 게 아니라 ‘관상용’이라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번 보라고 자랑스럽게 뚜껑을 연다.
그러나 잉어가 담긴 물은 이미 꽁꽁 얼어붙었고 그 수면 아래에서 잉어 역시 얼어 죽어 있다. 그래서 결국 그 비싼 관상용 잉어를 허망하게 불에 구워 먹는데, 끝내 허망해져버려서 좋고, 그 허망함을 너무 무겁게 이야기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
일상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여행이 되고, 여행으로 시작했더라도 언젠간 일상이 되는 때가 온다.
평범한 일상 속, 기대하지 않았던 첫눈과 함께, 좋은 영화 한 편을 만나고 온 나의 짧은 여행.
(사진 출처 : Da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