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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영 Nov 04. 2021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의 세상이 시작된다.

서울 63 아트에서 열리고 있는 <에릭 요한슨 사진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일단 말해야 할 것 같다. 당신이 에릭 요한슨의 사진전을 가려고 생각 중이라면 사람들이 남긴 전시회 후기를 보지 않는 걸 추천한다. 마치 영화의 결말을 알고 가면 재미없듯이 이 작가의 사진을 미리 보고 가면 재미없을 것이다. 사진을 보는 순간, 그의 천재성과 상상력이 펼쳐지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누가 찍은 사진을 보는 건 스포당하는거랑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이 전시는 충분히 돈 내고 볼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다. 

(덤으로 60층에서 전시가 되고 있으니 서울 전경을 볼 수 있다.) 이것만으로 이 전시회 가치는 중분 하다. 

그래서 아래 나오는 나의 후기에는 에릭 요한슨의 사진이 없을 것이다.

사실 초등학교 때나 63 빌딩 아쿠아리움 정도 가봤지 서울 토박이도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 가본다. 입구부터 헤매고 겨우 지하 1층으로 갔다. 그리고 60층까지 한 번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오오오오오오옹" 

 에릭 요한슨은 사람들이 상상만 하던 것들을 사진으로 찍어 합성을 해 한 장에 사진으로 만들어낸다. 그는 생각, 상상을 정말 많이 하는 것 같다. 지나가다 자전거 하나를 봐도 시계 하나를 봐도 모든 그의 상상으로 다시 이뤄진다.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에이 근데 이건 아니지" 

하며 우리는 지나치지만 그는 

"이럴 수도 있겠네!" 하면서 현실로 만들어낸다. 

단순히 건물 사진과 사람 사진을 합성하는 게 절대 아니다. 그냥 사진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그냥 천재다. 이 말만 계속 나온다. 천재다. 이 사람은.

 

사진만 전시되어있어도 재밌었겠지만 어떻게 이 사진을 만들게 되었는지, 자세히 찍은 영상이 옆에 같이 전시되어있다. 그의 상상력이 현실이 되는 그 순간을 같이 볼 수 있다.

 196 레이어, 7기가 되는 이 사진 한 장은 그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오히려 사진 찍는 건 1주일 안에 끝나지만 이미지 프로세스를 하는 작업이 1~6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요새 영화를 보면 cg작업이 워낙 발달되어 현실을 배경으로 실제로 찍은 것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한 영상이 티가 안 난다. 그래서 cg를 사용해서 많이 찍는다. 예전엔 그런 생각이 들었다. cg를 통해 영화가 만들어지면 점점 현장 스태프들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 현장에서 찍다가 뭐가 안되거나 문제가 생기면 

"후반 작업에서 하면 돼~"

이런 말이 언젠간 당연시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러면 굳이 사람이 영상을 찍을 필요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CG, 합성을 좋아하지 않았다. 뭔가 진짜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까...

 이제는 그런 생각을 버릴 수는 없지만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에 재밌게 본 영화 <DUNE>는 배우 피셜로 단 2컷만 그린 스크린에서 찍었고 나머지는 중동지역 사막에서 찍었다고 했다. 감독이 말하길 배우가 진짜 사막의 횡량함과 장소에 대한 특성을 직접 느끼고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렇게 현실을 배경으로 찍는 영화도 있지만 환경이 맞지 않아, 혹은 예산, 다양한 이유로 CG에 힘을 빌리는 경우도 많다. 요새 방영 중인 <지리산>은 CG문제로 꽤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나도 정말 기대했던 라인업인데 안 보게 되는 이유는 과도한 PPL과 어색한 CG가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현실과 너무 티 나는 CG는 감정을 깨트리고 드라마의 스토리보다 나중엔 어디가 CG인지 아닌지 '오 여기는 CG안썼네' 이러면서 보게 되었다. 아직 초반이지만 지리산에 대한 장소의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해가 어디서 들어오는지, 인물과 배경의 거리가 얼마큼 돼야 하는지, 마치 지리산에 한 번도 안 갔다 온 사람이 CG를 한 것 같았다.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얼마 전 시즌1이 끝난 <유미의 세포들>. CG는 아니지만 웹툰을 애니메이션화 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칭찬을 받았다. 더불에 세포들의 목소리 연기에서 인기 있는 연예인들을 안 쓰고 성우를 캐스팅해 칭찬도 많이 받았다. (유미의 세포들은 웹툰 초창기 때부터 보던 거라서 더 애정이 간다.ㅎ) 1시간짜리 드라마에서 대략 20분 정도가 애니메이션으로 이뤄졌다 할 만큼 세포들의 비중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현장 사람들이 드라마를 만들지 않은 걸까? 이건 또 아니다. 사실 드라마를 보면서 실제 찍는 분량은 적었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세포들의 감정을 연기하는 데에 있어 힘든 점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최대한 CG를 이용하지 않은 영화, CG를 이용한 드라마 중 약간의 비판이 있는 드라마, 애니메이션화가 잘 되어 호평을 받고 있는 드라마를 알아봤다. 


이렇게 써보니 나도 머릿속에 정리가 안됐는데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내가 생각한 건 

"CG로 이뤄진 드라마, 영화는 진짜가 아니다. 실제로 찍는 게 좋지 않나?" (불가피한 상황, 예를 들면 우주영화 등 제작비, 상황을 모두 제외하고) 

하지만 지금 보니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는 건 퀄리티였다. <지리산>도 CG의 퀄리티가 좋았으면 사람들 모두 칭찬했을 것이다. <유미의 세포들>도 마지막 회에 유미가 세포마을에 들어와서 세포를 직접 만나고 실사와 애니가 한 프레임에 담기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이 또한 너무 자연스럽다. 

 결국 나는 이제 영화나 드라마를 현장에서 만드는 스텝이 아니라 보는 입장이 되어서 그런지 한 관객으로서 좋은 퀄리티를 바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들의 사정이 뭐던 간에. 

 사실 CG를 싫어한다까지는 아니더라고 지양하는 입장에서도 CG가 가득한 마블 영화는 좋아했다. 왜 퀄리티가 높고 그만큼 재밌으니까. 예전에는 이게 현실이 되지 않는데 상상해서 뭐하냐 이런 마인드였지만 이제는 "상상이라도 해보자." 

이런 생각. 

 그래서 이 사진전 처음엔 의아했다. 보통 합성한 사진, 보정된 사진은 '거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잘 안 보고 싶고 나도 사진 보정을 해도 최대한 원본과 비슷하게 하려고 한다. 단순히 인물과 배경을 합성하는 게 아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사진 한 장을 통해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진을 찍고 작업을 했는지, 지금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 어느 사진 작품보다 본인의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한 장인 에릭 요한슨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나는 전시회를 조용히 혼자 갔다 오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딱 두 번째 이 생각이 들었다. 

이 전시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수록 더 좋은 전시회이다.

사진을 보면 정답이 있는 게 아니다. 다들 다른 생각을 말하고 내가 보지 못한 관점을 다른 사람이 캐치해 공유할 수 있다. 그리고 에릭 요한슨의 사진은 특히 더 그렇다. 실제 있는 공간을 그냥 찍은 게 아니기 때문에 너의 상상력과 나의 상상력이 합쳐지면 더 큰 상상력이 나올 수 있다. 

 2-3년 전에 대학 동기들과 전시회를 한번 다녀온 게 정말 좋았던 기억인데 이때 생각이 들었다. '전시회는 같이 가면 더 재밌구나.' 근데 그게 대학 동기들이어서 재밌었던 걸까. 가끔은 혼자 보는 게 좋았다. 혼자도 다니고 같이 다니고를 반복하다 이번 전시는 혼자 생각해보고 싶어 혼자 갔는데 이 전시는 같이 가는 걸 추천한다! 그리고 같이 가면 63 빌딩에서 인생 샷도 건질 수 있다!

마지막 공간에서 에릭 요한슨은 집을 나만의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사진들 모두 집 한채만 딱 있었다. 도심 속에 모여있지도 않고 물속에 집 한 채동 그러니, 바다가 보이는 바위 위에 내가 살 곳 딱 한 개, 언뜻 보면 처음부터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 아닌 이상 저길 못 갈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적인 집을 잘 표현했다. 

 에릭 요한슨은 무작정 사진을 찍고 편집하는 게 아니라 한 프로젝트를 가지고 오랜 시간 고민했다. 여행, 반려동물, 집 등 

'내가 상상하던 건 이런 건데 여기서 너의 기억은 어떻게 저장되어있어? '

하면서 저-기 어디 깊숙이 박혀있던 나의 추억을 꺼내어 상상하게 해주는 사진들이었다. 

 안 그래도 후기를 몇 개 찾아보다가 그만둔 이유가 맨 처음 말했던 그 이유다. 이 사람의 사진은 미리 보면 절대 안 된다. 작가는 본인 사진은 크게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전시회를 가면 알게 된다. 그래서 나도 몇 장보다가 블로그 후기글을 보고 이 전시를 다 볼 거 같아서 그만두고 직접 보러 갔다. 

 전시회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챕터가 몇 개나 있는지 모르고 갔다. 5개 있는데 2개 정도 보면서 진짜 천재다 미쳤다 하면서 1시간은 걸린 것 같다. ㅋㅋㅋㅋㅋ 봤던걸 또 봐도 새로운 사진 같고 신기했다. 그래서 그런지 3,4,5로 넘어갈 때 감흥이 점점 떨어졌다. ㅋㅋㅋㅋ.... 진짜 좋았던 사진은 너무 좋아서 다시 돌아가 또 봤던 반면에 그냥 그런 사진은 빨리 넘어가고 해서 그런지 전시가 넓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도 사진이 많았다. 사진 한 장을 보는데 음~ 좋다 하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어떤 사진이 합쳐졌는지, 내 상상력도 같이 펼치고 영상도 보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려서 뒤에 갈수록 약간 지쳤다. 전시를 을 보면서 에너지 분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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