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맥을 포함해 심폐질환 환자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수시로 드나들며 나와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위중한 부정맥을 앓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경우도 더러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방구석 돌팔이 의사는 또 한 번 스스로 '공황장애 진단'을 내렸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신과에 가야했다. 공황장애와 정신과.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조합이었다.
나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열등감, 질투심, 자괴감 등의 감정에 잘 휘둘리는 편이다. 이런 점이 스스로 성격과 심리적인 면에서 꽤 큰 단점이자 문제점이라 생각하는 한편, 누구나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살 것이라 짐작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 다만 나 스스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고 명상을 하면서 이를 고쳐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그 외에는 스스로 정신적인 측면에서 아주 매우 참으로 건강한 청년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나는 평소 정신과 질환에 대해 유독 관심이 많은 편이기도 했다.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이 유독 힘들어 보일 때가 많았고, 실제로 내 주변에도 마음이 힘들어 일상이 어려운 지인들이 있었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내가 뭐라고 주변에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빨리 발견해 뭐라도 하나 더 해줄 수 없을지 고민하며 공부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환자가 되어 정신과를 찾다니.
정신과에 가는 것이 잘못되거나 창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내 발로 걸어 들어갈 결심을 하니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코감기에 걸리면 이비인후과에 가고 뼈가 부러지면 정형외과에 가듯이 마음이 아프면 정신과에 가면 되는 건데 그게 잘 안됐다. 힘들어 하는 친구들에게 "정신과에 가는 건 너무 건강하고 당연한 선택이야."라고 말한 내가 같잖게 느껴졌고 일단 가서 상담만 받고 오면 되는 건데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더 이상 많은 생각을 하는 건 독이 될 거라 생각해 곧장 회사 근처 정신과에 상담 예약을 했다. 유튜브나 다큐멘터리가 아닌 현실에서 발을 들인 정신과는 꽤 아늑하고 따뜻했다. 내가 너무 중증 정신 질환자들의 케이스에만 관심을 가졌던 탓인지 대기실에는 보통의 사람들이 여유롭게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맞다. 나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평범하고 멀쩡한 사람인데 백화점에서 혼자 그 난리를 치고 집으로 도망쳤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했다.
심장내과에 이어 정신과에도 담당의가 생겼다. 의사 선생님은 매우 훤칠하고 잘생긴 젊은 남성이었는데 몇 마디 나누자마자 냉철함과 공감력을 두루 갖춘 완벽한 인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떤 증상으로 찾아오셨죠?"라는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지금껏 나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장황하지 않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담당의는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면서도 쉬지 않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가 많은 메모를 하는 짧은 순간 나도 수많은 생각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신과 진료실 의자는 유독 넓고 편안하구나, 오래 앉아서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겠지. 책상 위에 해부학 조형물이 아니라 대놓고 각티슈가 놓여있네. 아무래도 마음이 힘들어 울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테니 쉽게 눈물을 닦을 수 있게 배려한 거겠지. 내가 이런 잡생각을 하는 것마저 의사 선생님은 다 파악하고 있겠지. 내 모든 생각을 간파하고 있는 저 눈빛, 기분 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