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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매 Jul 11. 2023

EP 01. 확실한 취향 고백, 나 트로트 좋아해

그냥 좋다고 왜 말을 못하니.

 아이돌, 뮤지컬, 배우, 그림, 크로스오버 등 분야별 덕질이란 덕질은 다 거쳐온 29년 인생.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는 것이 어려워 항상 거침없이 '덕밍아웃(취향에 대해 주변에 당당하게 알리는 일)'하던 내가 유일하게 망설였던 분야가 있다. 바로 트로트.


 할머니를 비롯해 집안 어른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란 내가 현 시점에 기억하는 인생 첫 노래가 '봉선화 연정'이었기에 가능한 취향일까. 아니다, 내가 어릴 적 엄마가 항상 집에서 R&B 장르의 노래를 즐겨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역시 취향은 후천적인 걸까. '내가 왜 트로트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이유를 곱씹어보는 것 자체가 다른 덕질과 참 다르게 느껴진다. 그냥 좋다고 왜 말을 못하니.


 물론 무분별한 트로트 관련 콘텐츠들로 인해 조금이나마 관심을 보였던 젊은이들도 많이 떠난 상태이고, 여전히 빨갛고 노란 의상과 쿵짝쿵짝 화려한 박자들 때문에 '촌스럽다'는 느낌이 이어지는 것도 사실이다.(실제로 촌스러운 건 인정한다.) 관련 기사에는 '트로트 작작 좀 해라'라는 식의 댓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대중, 특히 내 또래의 반응이 내가 다소 소극적이고 비밀스러운 덕질을 이어가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래서 숨어 있었다. 그 시간이 무려 4년. 출근길에는 댄스 트로트로 흥을 올리고 퇴근길에는 발라드 트로트로 마음을 진정시키는 20대 직장인이지만 행여 버스나 지하철 승객들이 무지개색 화려한 유튜브 썸네일을 보고 뒷발걸음 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숨어서 듣기도 했다. 내가 만들고 싶던 나의 이미지는 '마케팅을 전공한 세련된 홍대 직장인'이었으니까.




좋아하는 걸로 끝내면 안되겠다.

 내 삶은 항상 애매했다. 성적도, 외모도, 춤과 노래 실력도, 교우 관계도, 가족 관계도, 자신감도, 취향도 애매했다. 10년 넘게 준비하고 공부한 전공을 포기하고 상상치 못한 분야에 발을 들이면서 내 전문 분야도 애매해진 시기도 겪었다. 그래서 나는 온라인상에서 스스로 '김애매'라 소개하곤 한다.


 서른이 되기 전에는 애매하지 않은 내 취향을 하나라도 찾기로 했다. 다시 말해 확실한 내 취향, 매번 조심스러웠지만 내 삶을 가득 채운 그것에 대해 이제는 덕밍아웃, 아니 '트밍아웃'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걸로 끝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냥 뽕짝 말고, 비즈가 잔뜩 박힌 옷을 입은 어르신 말고, 한 서린 목소리로 매번 울부짖는 모습 말고 내가 받아 들이는 트로트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 애매하지 않은 내 취향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발걸음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 뿐이다.


그 어떤 장르보다 쉽게 이해하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노래라는 것을 알리는 젊은이가 되고 싶어졌다. 노래 실력이 좋았으면 경연대회라도 나갔을텐데 그 쪽으로는 전혀 소질이 없으니 내가 도전할 수 있는 건 글 뿐이었다.




브런치 + 트로트 = 내가 바로 생태계 파괴자

 브런치에 '트로트' 라는 키워드를 검색해보니 한참 젊은층 사이에 트로트 열풍이 불었던 2019~2020년 글이 많았고 최근 종편 채널에서 앞다투어 내세운 경연 프로그램에 대한 글도 눈에 띄었다. 물론 내 글도 일상 에세이 80%에 트로트 20% 정도를 섞은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그래도 '혹시 내가 생태계 파괴자는 아닐까' 싶은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이 장르를 사랑하는 이들과 트로트를 노래하는 이들 중에 다양한 장르에서 빠져든 사람들이 충분히 많으니 이 또한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들로 생태계 파괴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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