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정정화 소설집 "꽃눈" 출간


연말에 실천문학사에서 "꽃눈"을 출간했다.

작가의 말을 소개하면서 독자와 첫 만남의 인사를 나누고 싶다.


    걷는 시간을 사랑한다. 둑길을 걷다 보면 강과 하늘과 돌, 풀과 나무와 꽃이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다. 그러면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되고 새로운 상상을 시작할 수 있다. 날마다 이렇게 오가는 시간이 없었다면, 얽히고설킨 일상의 무게에 눌려 툴툴 털고 일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발가락 골절로 걸을 수 없던 시간이 길었다. 아주 작은 신체의 일부라도 자유를 구속당하는 일이 참으로 가혹한 형벌임을 체득하는 시간이었다.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둑길을 걸으면 와글거리던 고민이 먼지 알갱이가 되어 햇살에 널린다. 너덜거리던 마음이 빳빳하게 다림질된다. 컴퓨터가 부팅되고 자판기 두드리는 리듬의 새소리를 들으며 돌아오는 길. 어느새 발걸음이 가벼워져 있다. 다시 리셋이다.

  세 번째 소설집을 준비하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현실의 무게에 눌려 소설에 매진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소설을 열심히 쓸 수 있었을 때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오 년 전부터 걷기를 멈춰버린 어머니와 함께하는 동안 내 몸의 여기저기서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왔다. 내내 바이러스에 감염된 증상 같은 무기력감을 버텨야 했다. 날마다 다가오고 물러가던 현실이 새삼 버거웠다. 글을 쓰지 않고 지나가는 시간은 견디기가 힘들었다. 몸에 마음이 끌려다니다니……. 

  멈추지 말고 써라.

  원하든 원치 않든, 좋든 좋지 않든 그 어떤 상황에 놓일지라도! 다행히 그간 단련해온 마음의 되새김과 어떻게든 담금질하는 습관이 세 번째 소설집을 내도록 다그쳤다. 가까이 두고 돌보지 않으면 어느새 멀리 가버리던 소설은 하나의 인격체였다. 현실적 어려움으로 글과 멀어지려 할 때 길을 나선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걸으면서 좋은 사람들과 만났다. 온기를 나눠준 일련의 일과 삶의 자세를 깊이 찔러준 지인들에게 감사하다. 벌판에서 재료를 모아두고 집짓기를 망설일 때 소설집을 기꺼이 내주신 실천문학사 윤한룡 대표님과 편집진에 감사드린다. 고민을 들어주고 힘이 되어준 남편과 두 딸에게 감사하다.

  길목을 응시하면 낮에도 어둡다. 이제는 여기를 떠나 저기를 서성거릴 참이다. 사방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다시금 한줄기 빛을 찾아 길 떠날 채비를 한다. 당신을 사랑하므로. 

         

2022년 끝자락에     

정정화 


#정정화 #소설 #꽃눈 #실천문학사 #작가의


                    

작가의 이전글 정정화 소설 "담장" 유튜브로 감상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