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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

https://www.ulsanpress.net/news/articleView.html?idxno=391398

풍등                                                                          정정화

  2022년 새해가 시작됐다. 나이만큼 세월을 느낀다는 말이 있는데 요즘 그 속도를 절감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시간을 오롯이 겪었는데도 아이들이 늘 어리다는 생각이 들고, 성인이 됐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기간보다 영·유아기나 아동기가 더 기억에 생생하다. 학창 시절에는 주로 학교에서 생활하기에 부대끼는 시간이 적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며칠 전, SNS를 통해 지인이 감천 문화 마을에 다녀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말은 많이 들었는데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마침 풍등 축제 기간이라고 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풍등이라니, 갑자기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외출했다 집에 오니 4시쯤이었다. 방학이라 둘째 딸이 집에 와 있어 내일 풍등 축제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딸아이는 내일 약속이 있다며 갈려면 지금 가자고 했다. 길을 나서기엔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풍등 축제면 저녁에 도착해도 될 것 같아 선걸음에 출발했다.

  KTX, 지하철, 택시를 이용하니 멀다고 느꼈던 것과는 다르게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도착하니 막 해가 지고 저녁 어스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를 맞는 풍등에 탄성이 절로 쏟아져 나왔다. 초·중·고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 소원을 써서 붙였다는 얘기를 들어선지 풍등이 더 정감이 갔다. 고사리손으로 소원을 쓰고 만드는 모습이 상상됐다.

  “감천동은 한국전쟁 당시 힘겨운 삶의 터전으로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족 근현대사의 흔적과 기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산복도로는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지역의 지형적 특성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다”라고 안내돼 있었다.

  골목을 들어서니 문을 닫은 가게가 많았다. 그 가게 중에 외관을 볼 때 구경하고 싶은 곳이 더러 있었다. 아쉬움도 잠시, 점점 밝아오는 풍등에 눈이 갔다. 시멘트 계단을 예쁘게 꾸며 놓고, 벽에는 그림을 그려서 분위기를 화사하게 해 놓았다. 포토존도 군데군데 만들어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잘 조성돼 있었다. 가장 인기 있는 포토존은 단연 어린 왕자와 여우 사이에 앉아 사진을 찍는 곳이었다. 평일 저녁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도 유독 그곳만은 줄을 서 있었다. 우리는 줄을 서서 기다리기보다는 구경하고 나올 때 찍을지 말지 결정하기로 했다.

  사이사이 골목길은 한두 사람이 겨우 나다닐 폭으로 경사지게 이어져 있었다. 그런 골목길을 누볐고, 누비고, 누빌 사람들의 삶이 느껴져 가슴이 뻐근했다. 초등학교가 폐교되었다면, 아이들이 살지 않는 곳일 테다. 나날이 낡아가지만, 알록달록 예쁘게 단장돼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 됐다는 건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자동판매기로 1년 운세를 보는 곳이 있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딸과 재미로 운세를 보기로 했다. 동전을 넣어서 돌리니 빨간 캡슐이 굴러떨어졌다. 그걸 망치로 두드리면 플라스틱 공 모양이 열리면서 1년 운세가 적힌 종이가 나왔다. 가로등 불빛이 있다지만,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서 주머니에 넣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감천만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기자기한 집들의 끄트머리에 바다가 이어져 운치를 더했다. 책 표지로 장식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천덕수’라는 우물이 있고, 그 위에 옛날에 사용하던 펌프도 있어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물을 떠다 먹었을지 상상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행복우체통 앞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우표를 붙여서 넣어주시면 1년 뒤에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메일이나 폰 문자가 일상화되기 전에 마음을 주고받았던 손편지.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리던, 아련한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돌아 나오는 길에 어린 왕자와 여우상이 있는 포토존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길게 늘어섰던 줄이 줄어들어 젊은 연인 두 팀밖에 없었다. 조금 기다려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난간 느낌이 나는 곳이라 조금 불안했지만, 무사히 찍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여러 생각이 스쳤다. 명작은 이렇게 머나먼 곳에서도 살아서 빛나구나, 싶어서 가슴이 뛰었다. 아주 사소한 조각상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의 문화마을을 만든 사람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옅었던 불빛이 더 짙은 노랑으로 빛났다. 아이들은 풍등에 어떤 소망을 담았을까. 딸과 이런 얘기를 나누면서 천천히 문화거리를 빠져나왔다. 이맘때면 사람들도 마음에 풍등 하나쯤은 매달 것 같다. 나 역시 소원을 적어 마음의 풍등 하나를 걸었다. 아름다운 풍등이 별빛과 함께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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