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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니

https://www.ulsanpress.net/news/articleView.html?idxno=392923

[목요광장] 정정화 소설가

정정화 소설가

보철한 치아에 작은 구멍이 나서 처치가 필요했다. 어금니로 위에 세 개, 밑에 한 개였다. 위에 세 개는 중간에 이가 없어 양쪽 이에 걸어서 하나로 이어져 하나만 손상돼도 한꺼번에 새로 해야 했다. 안쪽 이는 10년 전쯤 충치가 있어 신경 치료를 한 상태였고, 바깥쪽 이는 멀쩡했는데, 빠진 이 때문에 생니를 조금 갈아서 덮어씌운 상태였다. 온전한 치아였기에 보철할 때 신경 치료도 하지 않고 했었다.


최근에 보철을 새로 하기 위해 A 치과에 예약을 했다. 오랫동안 다녔던 B 치과가 없어져서 다른 의원에 갈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두 개의 이는 신경치료가 돼 있고 하나는 되지 않아 그곳에 마취를 하겠다고 했다. 내가 왜 그러냐고 했더니 잇몸이 조금씩 내려앉기 때문에 새로 성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신경 치료 안 하고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의사가 마취 주사를 놓았다. 찌뿌듯하게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잠시 뒤에 의사가 이를 갈기 시작했다. 기구를 들이밀어 가는데 무지막지한 느낌이 들어 자꾸 몸에 힘이 들어갔다. 의사는 힘을 빼라고 했지만, 몸이 저절로 반응을 했다. 입을 인위적으로 벌리려고 끼워둔 장치는 내 입 크기를 최대로 벌리게 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손을 들어 힘들다고 얘기했더니 높이를 조금 낮춰 주었다. 생살이 찢기는 느낌이었고, 막무가내로 이를 가는 듯했다. 그래도 신경 치료 안 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놓은 터라 적당히 갈겠지 하고 나름 믿고 있었다. 마취한 상태라 통증보다는 가는 소리에 공포를 느꼈다.


성형을 마쳤는데, 잇몸에서 피가 엄청 나왔다. 헹궈도, 헹궈도 피가 흘러 나왔다. 잇몸이 찢기는 느낌과 온 치아에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마취를 해서 얼마만큼 갈리는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는데 혀를 대어보니 처음보다 너무 작아진 상태라 깜짝 놀랐다. 이의 본을 뜨고 완성되는 동안 가짜 이를 끼고 있는데, 매우 불편했다. 드디어 보철이 완성돼 간이접착제로 붙이는 날이었다. 며칠 씹어보고 영구접착제로 붙인다고 했다. 보철을 붙였는데도 시린 느낌은 그대로였다. 간호사는 시리거나 아프면 신경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기분이 나빴다. 부탁을 한 건 아랑곳없어지고 의사의 편의대로 시술을 하고는 설명도 없더니, 그제야 아프면 신경치료를 해야 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생니를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순간 B 치과에서 보철을 할 때가 생각났다. 그때 의사는 신경치료를 하지 않기 위해 마취를 안 하고 이를 갈았다. 그러면서 아프면 손을 들라고 했었다. 나는 의사 말대로 했고, 의사는 본래 이의 손상을 최소한으로 해서 이의 본을 떠주었다. 치과의사라면 보철을 하는 과정이 다 비슷할 거라는 믿음은 내가 다닌 단골 치과에서 생긴 듯했다.


의사는 일주일을 씹어보고 다시 오면 영구접착제로 붙인다고 했다. 씹어 보니 마음대로 음식을 씹을 수가 없었다. 신경이 눌려 아프고, 매우 시렸다. 보철을 새로 하는 건 씹을 때 편하기 위해서 하는데, 보철을 새로 하기 전보다 씹는 게 훨씬 불편했다. 며칠을 우울하게 보냈다. 예약된 날에 치과에 갔다. 이가 시리고 마음대로 씹을 수 없다고 하니까 의사는 불소 치료를 해줬고, 무슨 근거인지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며칠 뒤에 다시 오라고 예약을 잡아줬다. 불소 치료를 하고서도 시리고 아픈 증세는 계속됐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환자를 더 배려하는 곳에서 보철을 했을 것이다. 마음대로 이를 갈아버린 의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부탁까지 했는데 왜 그렇게 신경이 예민해질 때까지 갈았는지, 부득이한 상황이라면 미리 신경치료를 권유하지 않았는지, 의사의 행동은 다분히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간단하게 보철을 뜯어내고 새로 하는 일이 커져서 새해 벽두부터 치과에 다니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달이 다 지나도록 시리고 아픈 증세를 안고 고통 받다가 결국 신경치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신경치료를 하지 않고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왜 이러냐고 물었더니, 의사는 자신은 신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실소가 나왔다.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는 환자에게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소통하면 어떨까 싶었다. 지금도 생니를 잃은 듯한 기분을 저버릴 수가 없다. 의사가 시술할 때는 갑인 듯해도 고객은 만족도가 없으면 돌아서기 마련이다. 눈높이에 맞게 좀 더 배려하지 않으면 고객은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윤보다 고객을 위한 양심적이고 진정성 있는 시술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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