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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사지

https://www.ulsanpress.net/news/articleView.html?idxno=394610


간월사지                                                                      정정화

매화가 피었는데도 한파가 찾아와 눈바람이 부는 날씨였다. 가까이에 살면서도 지나친 곳이 있었다. 상북면 등억알프스리에 있는 간월사지. 딸과 함께 이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작년에 강원도 원주에 있는 폐사지 세 곳을 여행하고 나서 간월사지를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은 터였다. 간월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에 자장율사가 처음 세운 절이다. 임진왜란 때에 한 번 폐사되었고, 그 후 인조 12년에 다시 세워 19세기 말까지 존립하다가 그 이후에 한 번 더 폐사되었다고 한다.

  입구에 들어서자 아담한 법당과 언덕의 소나무가 우리를 반겼다. 천여 년의 세월이 흘러선지 소나무가 무성한 곳은 동산 형태가 돼 있었다. 찬바람에 솔잎이 파란을 일으키며 떨었다. 내 몸도 따라 추위를 느꼈다. 법당 안에 보물 제370호인 석조여래좌상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울산지역에서 보물로 지정된 유일한 불상으로 받침인 대좌의 일부와 원광인 광배가 없어졌으나, 전체의 형태는 잘 남아 있는 편이다. 불상을 모셔둔 대좌는 삼단으로 되어 있는데,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화려하다. 통일신라 말기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손이 일부 잘려 나가 훼손돼 있었고, 목은 떨어져 나간 것을 수리·복원했다. 부처님이 앉은 좌대는 복원한 것이라 단의 색상이 달랐다. 긴 세월을 지나면서 소실되거나 원형이 훼손된 부분이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복원돼 보물로 지정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남쪽과 북쪽에, 쌍으로 배치된 삼층석탑이 있었다.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된 탑으로 통일 신라 시대에 조성됐다. 탑은 푸른 하늘색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했다. 1층 탑신에 새겨져 있는 부조상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탑 중앙에 커다란 문비를 두고 좌우에 문을 지키는 신장인 금강역사상을 돋을새김해 조각했다. 문비란 석탑 초층 탑신부에 조각된 문짝을 말한다. 내부 공간이 있음을 상징하며 부처나 고승의 사리가 안치돼 있다는 의미로 새긴 것이다. 통일 신라인의 상상력에 신비한 느낌이 들었고, 돌에 새겨진 조각은 놀랄 만치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탑 역시 무너진 것을 복원하면서 새로운 부재를 덧붙인 곳이 있다. 탑의 크기나 모양, 부조로 새겨진 조각의 정교성을 볼 때 보물로 지정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남탑과 북탑 사이에는 금당지가 있다. 금당이 있던 곳인데 지리적 요인으로 동향으로 축조됐다고 한다. 수려한 신불산, 간월산을 등지고 있어 금당터로 적격일 것 같았다. 금당지를 마주하고 산자락에서 뻗어 내려오는 웅혼한 기상을 느껴보았다. 북탑 뒤쪽으로 삼성각이 보였다. 다른 사찰은 삼성각이 보통 대웅전 뒤쪽에 위치하는데 북탑 쪽에 있어서 생소하게 느껴졌다.

  소나무 언덕을 돌아 나오니 안내소에 있던 해설사가 나와 유인물을 건네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손님이 와서 미처 안내를 못 했다며 간월사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곳은 발굴되기 전에는 논과 밭으로 이용됐다고 한다. 석조여래좌상은 농부에 의해 발견돼 머리가 반출됐다가 다시 돌려받아 복원했다. 땅에 파묻혀 있었기에 부처님 코가 온전히 보존됐을 거라 했다. 예전에는 부처님 코를 갈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 때문에 훼손이 많이 되곤 했다. 간월사는 건립 당시 통도사와 견줄 정도로 규모가 큰 사찰이었지만, 조선 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폐사되었다. 뒤에 있는 삼성각은 간월사지에 거처하던 스님이 지은 것이라 했다. 삼성각을 보고 배치가 이상하다 여겼는데 의문이 해소됐다. 일정 부분의 보상을 주고서야 울산시에 온전히 귀속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무관심으로 방치된 문화재가 심하게 훼손될 뻔했는데 그때라도 바로잡아서 다행이었다.

  추위도 잊고 설명을 듣고 질문하느라 시간이 제법 흘렀다. 찬바람에 솔 향이 몰려왔다. 한파에도 머물고 싶은 곳. 바람을 뚫고 오후의 태양이 간월사지를 어루만지는 듯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간월사지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 해설사께 감사 인사를 드렸다. 마음이 복잡할 때 둘러보며 치유하기에도 좋은 장소 같았다.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듯 절터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절은 산수가 빼어나고 명당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곤 했다.

  가까이 있다고 무심하게 지나쳤던 곳을 세세히 둘러봐서 가슴이 뿌듯했다. 천여 년의 세월을 건너 폐사지에 펼쳐진 통일신라인의 숨결을 오롯이 느낀 시간이었다. 어디선가 석공이 돌을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제부터라도 숨어 있는 지역 문화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문화재는 후손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더 널리 알려지고 빛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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