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터친의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놀이, 의자 빼기 놀이.
참가자보다 의자를 하나 적게 배치하고 시작한다. 노래가 시작되고 참가자들은 둥글게 놓아진 의자를 돌기 시작한다. 노래가 멈추는 순간 재빨리 의자에 앉는다. 앉지 못한 참가자는 즉시 탈락하고, 의자도 하나를 뺀다. 매라운드마다 의자는 참가자보다 무조건 하나가 적다. 현대사회도 마찬가지다. 교육 수준은 높아지고, 안정적 고용과 일정 수준의 소득을 보장하는 사회적 지위의 자격을 갖춘 사람은 늘어난다. 반면 이러한 지위를 제공할 양질의 일자리와 사회적 위치의 총량은 정체되어 있다.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은 심화하고 삶의 질은 떨어진다. 사회적 연대를 위한 공동체주의의 재정립이 시급하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기존의 '공동체주의'에서 '개인주의'로 노선을 변경했다. 공정한 기회와 자유로운 경쟁. 결과의 책임은 오롯이 개인에게 전가하는 사상이 사회에 자리 잡았다. 학교에서부터 옆자리 학생을 친구가 아닌 경쟁자로 받아들인다. 일상은 곧 경쟁이고, 인생의 목표는 경쟁에서의 승리로 귀결한다. 그러다 보니 공동체적 가치는 붕괴했다. 배려, 연대 등 사회공동체적 가치는 사치이자 과거의 유산이다. 고성장 국면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구조적 위기로 드러나지 않았다. 사회적 지위의 확장이 일정 부분 경쟁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더 이상 과거의 성장 궤도에 있지 않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경제성장률을 0.8%로 전망하며, 2027년까지 1%대 저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과거 1%대 성장률은 단 4번뿐이었다. 1988년(오일쇼크), 1999년(외환위기), 2009년(글로벌 금융 위기), 그리고 2020년(코로나 펜데믹). 저성장엔 명확한 원인이 있었고, 이후 '기저효과'를 기반으로 빠르게 회복했다. 반면 현재의 저성장은 원인이 복합적이고 구조적이다. 투자와 고용, 임금과 소비로 이어지는 경제의 선순환이 멈췄다.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아 지난해 12월 실업률은 4.1%로 역대 두 번째로 높다.(12월 기준)
이러한 현실은 '개인주의'와 맞물려 치명적인 상호작용을 낳는다. 2024년 기준, 만 18세부터 21세까지의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은 74.9%, 1980년(27.2%)의 3배에 달한다. 반면 구직자 1명당 일자리 수를 뜻하는 '구인계수'는 0.28로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다. 경쟁에서의 승리 기준은 과거보다 높아졌고, 패배한 이들은 점점 늘어난다. 이른바 '반엘리트'의 증가다. 일생의 노력에도 지속적으로 지위불안을 느낀다. 매슬로의 욕구의 5단계 중 가장 하위 단계인 생리적 욕구부터 금이 간다. '개인의 책임'을 기조로 삼기에 패배의 책임은 홀로 책임져야 한다. 안전, 사회적 욕구마저 채워지지 않는다. 경쟁에서 패배했다는 압박, 노력의 보상이 없다는 현실은 스스로의 패배감과 사회에 대한 반발감으로 이어진다. 패배감은 '쉬었음' 청년을, 반발감은 '극단주의' 청년을 양성한다.
공동체의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 경쟁에서 불안을 느끼는 청년이 기댈 곳이 절실하다. 가정과 학교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가정에서부터 경쟁이 아닌 연대와 배려의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 학교에서는 주변 학생과 공동체의 가치를 직접 적용하며 중요성을 체감해야 한다. 현장체험학습은 해외여행을 갔다 와 자랑하는 제도가 아닌 사회적 약자를 찾아가 연대하는 제도로 탈바꿈해야 한다. 일상생활에 녹아든 경험은 무너진 공동체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토대로 작용할 것이다. 이는 실패해도 언제든 재도전할 수 있다는 신뢰, 자신은 사회의 일부라는 소속감으로 이어진다. 심리적 공허가 사라지니 극단주의, 패배주의가 들어서지 못한다. 심리적 안정을 넘어 사회적 통합으로 귀결하는 것이다.
'개인주의'만을 강조하며 '공동체 가치'를 후순위로 미뤄온 선택은 결국 사회 전체에 부담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의자가 줄어드는 현실 자체를 단번에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나의 의자에 혼자만 앉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바꿀 수 있다. 함께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모색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선택해야 할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