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죽은 노동'의 혁명

칼 마르크스 <자본론>

by 오레오나오레오


인간은 AI로 인해 지위 불안을 느끼는 수준까지 왔다. AI는 인간의 협력자인가 대체자인가


칼 마르크스는 인간만이 새로운 가치 창출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기계는 인간이 만들었고, 정해진 산출값만을 낸다고 전제했다. 그렇기에 '죽은 노동'으로 정의했다. 부르주아는 이윤을 높이고자 '살아있는 노동'(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고, 혁명으로 이어진다고 봤다. 그의 생에는 보지 못했던 혁명이 지금에 와서 일어나고 있다. 원인은 '죽은 노동'의 혁명, 이른바 인공지능(AI)다. 주입식 교육으로 학습하던 '죽은 노동'이 스스로 사고하는 '살아있는 노동'으로 변모하고 있다. 인간의 고유한 지위가 단기간 내 흔들리는 지금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재증명이 시급하다.


인공지능이 사고하고 형태를 갖는 시대가 도래했다. 딥시크의 등장 이후, 적은 데이터로도 답을 추론하는 방식이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인터넷 밖으로 나와 로봇이라는 물리적 형태를 갖추게 됐다. 이른바 '피지컬 AI'다. CES2026에 등장한 현대의 노동 로봇 '아틀라스'는 이족보행이라는 고전적 한계를 뛰어넘고 각 관절이 360도 회전하며 진정한 기계 노동자로 거듭났다. 정해진 산출값을 넘는 결과를 보여주며 '죽은 노동'이라는 기존정의를 벗어던졌다. 독서와 검색으로 직접 질문하던 인간은 그 해답을 인공지능에게서 찾는다. '죽은 노동'에 '살아있는 노동'이 기대는 현실이다.


노동의 주체 간 힘의 균형이 기울어짐을 너머 한쪽에 쏠리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유일한 무기인 '살아있는 노동'은 부르주아의 수단에 불과한 '죽은 노동'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착취의 필요성은 사라지고 쓰임을 다한 노동에 무관심만이 자리 잡는다. 국가는 대책으로 현금성 지원을 내밀지만 지원이란 탈을 쓴 억압일 뿐이다. 지원을 매개로 권력은 국가에 집중되고, 재원은 기업으로부터 나오기에 견제는 약화한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정치에 참여한다'라고 강조했던 콩스탕의 기본 전제는 뿌리째 흔들리고,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시대를 지나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역할에 있어 기준을 세워야 한다. 인간이 여전히 '살아있는 노동', 인공지능은 '살아있음을 표방한 죽은 노동'임을 재증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인간만의 무기가 필요하다. 베버는 정치는 직업을 넘어 신념과 책임 윤리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정치 너머 인간의 사회적 역할에 보편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누구나 뚜렷한 목적의식, 즉 신념을 가진다. 또한, 본인의 의도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채감이 자동으로 나타난다.


반면 인공지능은 사고력을 지니나 여전히 주입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알고리즘일 뿐이다. 둘의 실수가 치명적 결과로 이어졌을 때, 인간은 신념과 책임에 따른 가책을 느끼고 합당한 처벌을 받지만 인공지능은 그저 '오류'로 치부하고 재작업에 들어설 뿐이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간 본연의 가치가 위협받는 지금, 가치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현대 사회를 바라본 칼 마르크스는 자신의 전제가 틀렸다는 자들을 향해 이리 말할 것이다.


"인간은 '신념과 책임을 지닌' 새로운 가치 창출의 유일한 주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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