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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caa Mar 30. 2022

다산의 공감 연습2(맹자)

1장 공감과 공정/하필왈리何必曰利

 총 7편으로 구성된 《맹자》의 첫 번째 편은 <양혜왕梁惠王> 편이다. 양梁나라 혜왕惠王은 《장자莊子》에서는 문혜군文惠君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장자》의 ‘포정해우庖丁解牛’ 이야기에서 문혜군은 백정白丁에게 칼날을 망가뜨리지도 않고 소를 잡는 비결에 대해서 물었다. 문혜군의 질문에 백정은 자신이 칼 또는 감각으로 소를 잡는 것이 아니라, 신神을 통해 도살작업을 한 것이라고 말하고 이에 덧붙여 자기의 칼은 19년째 갈지도 않았다고 대답한다. 이 이야기는 《장자》 <양생주養生主> 편에 나오기 때문에 당시 최하위 계급에 있던 백정이 최고의 권력자에게 양생養生의 비결을 알려주는 우화寓話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장자》에서 백정의 경지에 이른 칼솜씨를 통해 양생 또는 무병장수의 비결을 깨달았던 문혜군이 바로, 《맹자》의 수 많은 등장인물 중에서도 맹자와 처음 대화하는 양혜왕이다.


 맹자의 대화상대로 처음 등장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물론 《맹자》에서 양혜왕이 유일한 군자는 아니고, 제선왕齊宣王과 등문공滕文公이라는 군주들도 등장한다. 춘추春秋시대의 공자와 마찬가지로 맹자도 전국戰國시대에 군주들을 찾아다니며 유세遊說를 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유세를 다녔지만 맹자는 자신의 이상을 현실에서 제대로 펼치게 할만한 군주를 만날 수가 없었다. 모든 군주들이 부국강병을 꿈꾸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맹자》에서 처음 등장하는 양혜왕 역시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맹자》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을 때, 왕이 말하기를 
孟子見梁惠王, 王曰:
“영감께서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고 일부러 오셨으니, 아마도 우리나라를 이롭게 하여 주시겠지요?”
叟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왕께서는 왜 하필 이利라는 것을 내세우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따름입니다.” 
孟子對曰: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맹자》 <양혜왕> 1장     


 맹자가 양혜왕을 찾아간 것은 일종의 유세 행위이다. 전국시대 모든 나라들에게 부국강병이 최대의 과제였고, 부국강병을 할 수 있는 재상宰相을 청빙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맹자와 양혜왕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맹자》의 첫 발언은 양혜왕이 시작한다. 그런데 양혜왕은 군주의 위엄을 갖춰 노골적으로 부국강병을 꺼내지 않는다. 애둘러서 어떻게 자신의 나라를 ‘이롭게[利]’ 할 것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


 ‘이롭게 하는 것[利]’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단군檀君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에 대해서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익, 이득, 소득 어떻게 부르든 무언가를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전군시대 군주들은 모두 이 어젠다agenda에 대해 동의하고 있었고,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전국시대는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출세할 수 있는 기회의 시대이기도 했다. 노자老子 또는 장자莊子를 대표하는 도가道家나, 묵자墨子를 따르는 묵가墨家는 예외적이지만 그 외에 법가法家, 병가兵家, 음양가陰陽家, 연횡가連衡家, 합종가合從家 등 춘추전국시대에 생겨난 지식인 집단들은 극도의 혼란기에 피어난 꽃과 같은 존재들이다.


 성공하고자 하는 지식인들과 자기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군주들의 만남이 매우 정상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양혜왕이 던진 첫 번째 질문은 다른 군주들의 관심사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굉장히 진부한 질문이었다. 양혜왕의 질문은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질문이었지만 맹자의 대답은 다르다. 맹자의 첫 번째 발언이 오늘날까지 우리가 맹자를 맹자로 기억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문장이다.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따름입니다.
亦有仁義而已矣。     


 현암 이을호 선생의 《한글 맹자》의 번역을 그대로 옮겨놓았는데, 사실상 가장 중요한 인과 의가 무엇인지 다시 설명해야 되는 상황이다. 인은 유학 전통에서 인仁이라는 글자 그대로 전해져 왔다. 불교 전통에서 자비로 이해되기도 했고, 예수회Jesuit를 비롯한 서양 기독교 전통에서 사랑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정약용은 인을 서恕라고 해석했다. 공자가 《논어》에서 서를 “기소불욕 물이서인己所不欲勿施於人” 즉,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라고 풀이한 것을 거쳐 여기서는 인을 ‘공감’이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물론, 《맹자》에서 인과 가장 가까운 표현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조선의 철학논쟁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4단7정 논쟁인데, 4단四端 중에 첫 번째 단서[端]이면서 나머지 세 개의 단서들을 포괄하는 것이 바로 측은지심이다. 그런데, 측은지심은 공감보다 연민憐愍에 가깝다. 맹자가 측은지심의 설명하며 제시하는 구체적 상황은 우물가에 있는 어린 아이다. 어린 아이가 우물에 가까이 가다 빠질 뻔한 상황에서 누구든 측은지심을 가지고 아이를 구하지 않겠냐는 질문으로 맹자는 본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맹자가 인이라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도덕적 본성의 단서로서 측은지심을 제시한 것은 남의 고통에 외면하지 않는 마음이 보편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에 대한 맹자의 다른 표현 ‘역지사지易地思之’는 더욱 공감의 핵심적인 내용을 나타낸다. 타인이 겪고 있는 어떤 부정적인 상황이나 감정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상황과 감정들을 나누는 것이 공감이다. 이러한 표현은 맹자가 말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에도 해당된다. 


 그렇다면 의義는 어떻게 옮길 것인가? 의에 대해서 가장 적절한 현대어는 정의正義이다. 한때 정의가 대한민국에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정의 이슈도 1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니까 약간 변하여서 지금 대한민국의 최대 이슈는 공정公正이 되었다. 정의는 한자어로 풀면, 바름과 옮음이다. 전형적인 윤리학의 주제이다. 인간이 이성과 자유의지를 가졌다면, 어떻게 바르고 옳은 결정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윤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 특히 청년들은 단순히 바르고 옳은 것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 정의라는 것이 이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 청년들은 바름과 옳음에 대한 결과적 관심보다 그 과정이 공정한지에 대해서, 또한 시작은 공평한지에 대해서 더 따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맹자》의 여러 주제들을 더욱 공정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이해하고자 한다. 맹자가 말한 인과 의를 ‘공감共感’과 ‘공정公正’이라는 우리 시대의 화두로 바꾸어 다시 풀어보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역시 이번에도 가장 많이 활용할 텍스트는 정약용의 《맹자요의孟子要義》이다. 《맹자요의》는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맹자》 전체를 꼼꼼하게 해석한 책은 아니다. 정약용은 《논어》에 대해서는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라는 큰 저작을 남겼지만, 《맹자요의》는 《맹자》에서 중요하고 핵심적이라 판단된 부분들에 대한 논쟁을 중심으로만 저술하였다. 정약용의 이러한 선택에 좋은 점은 정약용이 생각하는 《맹자》의 핵심들을 효율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아쉬운 점은 《맹자》 원문에서 공감과 공정의 이슈를 중심으로 볼 수 있는 문장 전체에 정약용의 정확한 입장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 문제는 정약용의 다른 해설서나 문집의 글들을 통해 충분히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맹자의 첫 번째 대답을 통해 《맹자》의 주제가 공감과 공정이라는 것을 밝혔다. 양혜왕이 자기 나라의 이로움에 대해 질문하자, 맹자는 “하필 이로움을 말하냐고何必曰利”라고 면박을 주긴 했지만, 이 역시 전국시대 군주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최대 관심사였다. 맹자가 이로움 자체에 대해 문제 삼지 않는다. 이어지는 맹자의 말은 다음과 같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로울까?’ 하시면, 대부大夫는 ‘어떻게 하면 내 집안에 이로울까?’하며, 선비[士]나 백성들은 ‘어떻게 하면 내 자신에 이로울까?’하면서 서로 서로 이 끝에만 얽히어 싸우게 되면, 나라는 위태로워지는 것입니다.
王曰: ‘何以利吾國’, 大夫曰: ‘何以利吾家’, 士庶人曰: ‘何以利吾身’ 上下交征利而國危矣。《맹자》 <양혜왕> 1장     


 사실 맹자가 지적한 것은 이로움이 아니다. 왕이 ‘내 나라’의 이로움만 생각하는 것, 대부가 ‘내 집안’의 이로움만 생각하는 것, 선비나 백성이 ‘내 자신’의 이로움만 생각하는 것을 문제로 본 것이다. 내 나라, 내 집안, 내 자신의 이로움이 아니라, 다른 나라, 다른 집안, 다른 사람의 이로움까지 생각하는 공감과 공정의 정치를 제안하는 대목이다.


 단군의 건국 이념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며 지금까지도 칭송받고 있다. 그런데 양혜왕이 자기의 나라를 이롭게 하는 것에 무슨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인간’과 ‘자기 나라’의 차이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고통받는 중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이 발생했다. 양혜왕이 질문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단번에 이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맹자가 오늘날까지도 계속 읽히고 있는 것은, 여전히 이러한 상황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자국민의 희생은 물론, 다른 나라의 무고한 희생까지 발생시키는 지도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라와 나라가 싸우는 전국戰國시대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이로움이 아니라 공감과 공정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이다.


 오래된 철학자 맹자를 통해 우리 인류가 부국강병만을 추구하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가 아니라 공감하고자 하고 공정해지기를 원하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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