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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caa Apr 12. 2022

다산의 공감 연습2(맹자-4)

4장 복지와 공정/환과고독鰥寡孤獨

 2010년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을 때, 대한민국에는 정의正義 신드롬까지 일어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정의에 관심을 가졌다. 서두에 저자는 정의의 의미를 따려 보기 위해 세 가지 항목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그 세 가지는 행복welfare, 자유freedom, 미덕virtue이었다. 그런데 한국에 처음 출판되었을 때 여러 번역 오류 중 하나가 바로 첫 번째 항목이 행복이 아니라 복지welfare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복지福祉는 말 그대로 ‘행복한 삶’이다. 그런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복지가 중요한지, 자유가 더 중요한지, 덕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흔히 유럽국가들을 복지국가라고 부르고 있는데, 사회복지에 대한 개념이 서양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도 복지 개념은 이미 존재했는데,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맹자》 <양혜왕> 하편 5장이다.


마누라 없는 늙은이를 환鰥이라 하고, 이녘이 없는 할멈을 과寡라 하고, 자식 없는 늙은 아비를 독獨이라 하고 어려서 어버이 잃은 아이를 고孤라 하는데, 이 넷은 천하에 호소할 곳 없는 불쌍한 무리들입니다. 문왕은 정책을 세워 인정을 펴실 때 무엇보다도 먼저 이 네 부류들의 일을 걱정하였습니다.
老而無妻曰‘鰥’, 老而無夫曰‘寡’, 老而無子曰‘獨’, 幼而無父曰‘孤’. 此四者, 天下之窮民而無告者. 文王發政施仁, 必先斯四者.
<양혜왕> 하편 5장     


 대한민국의 사회복지정책은 크게 아동복지, 노인복지, 장애인복지로 나누어 있는데, 코로나 시대 이후에 정치인들이 서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하는 복지는 청년복지정책이다. 청년까지 복지 대상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오랫 동안 사회적으로 돌봄을 받아야 했던 사람들은 네 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환鰥이라고 했는데, 나이가 들었는데 아내가 없는 홀아비를 말한다. 두 번째는 과寡인데, 나이가 들었는데 남편이 없는 과부寡婦를 말한다. 세 번째는 독獨인데, 독거獨居하고 있는 늙은 사람을 말한다. 이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경제활동이 어려운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네 번째는 고孤는 나이가 어린 사람이면서 의지할 어른이 없는 아이, 즉 고아孤兒이다. 

 이 중 ‘고아’의 고孤와 ‘독거노인’의 독獨을 합친 고독孤獨이라는 단어를 지금도 매우 쓸쓸한 감정을 나타날 때 쓰는데, 실제로 ‘고’와 ‘독’이 느끼는 외로움은 그 이상이다. 물론 홀아비와 과부의 고독감도 그 상실감이 크겠지만, 독거노인과 고아의 불안감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코로나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욱 격심한 고립감과 불안감을 준다는 것이었다.

 홀아비, 과부, 독거노인, 고아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 정책은 이러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여기에 장애인에 대한 복지 정책까지 더해져서 사회복지의 범위가 더욱 확장된 것은 그만큼 국가가 복지국가로 발전하고 있다는 좋은 현상이지만, 청년 복지에 대한 접근은 그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

 기존의 사회복지 정책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 국가나 사회가 어느 정도 가족의식을 갖고 돌보는 것인데, 앞서 맹자 말했던 공감정치에 기반을 둔 것이다. 나의 어르신이 아니더라도, 내 어르신처럼 모시고자 하는 것, 또한 나의 아이가 아니더라도, 내 아이처럼 보살피려고 하는 것은 적극적인 공감 행위이다.

 사실 청년은 전통적 의미에서 복지의 대상은 아니다. 고대부터 복지의 대상은 경제적 능력, 또는 생산 능력을 상실하거나 아직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시작하고자 하는 청년 복지는 아동 또는 청소년 복지의 연장선에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대학을 졸업했는데, 취업하기가 너무나 어려워진 상황에서 국가가 나서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취업활동에 대한 지원, 거주지에 대한 지원 등 우리 청년들이 더욱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정책의 방향은 바람직하지만, 이제는 청년들까지 보살펴야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매우 아쉽다. 

 정약용도 사회복지 정책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졌다. 환·과·고·독이라는 네 부류에 대한 개념은 그대로 가져오면서 이들은 사궁四窮이라 불렀다. ‘네 가지 부류의 궁핍한 자들’이라는 뜻인데, 《목민심서》 <애민愛民> “진궁振窮”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홀아비·과부·고아·늙어 자식 없는 사람을 사궁四窮이라 하는데, 궁하여 스스로 일어날 수 없고, 남의 도움을 받아야 일어날 수 있다. 진振이란 일으켜 주는 것이다.
鰥·寡·孤·獨, 謂之四窮, 窮不自振, 待人以起, 振者擧也.
《목민심서》 <애민愛民> 진궁振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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