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갤러리의, Mr.Lee

프롤로그+1부 낯선 초대

by 만두콩

프롤로그. (빛나는 문)

밤거리는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도시는 늘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날만큼은 바람조차 숨을 죽인 듯했다. 가로등 불빛은 희미하게 번져 있었고, 낡은 간판에서 떨어져 나온 전선들이 서로 얽히며 서늘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부르고 있는 듯했다. 목적지도, 이유도 없이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좁은 골목 끝에서 이상한 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문이었다.

어느 건물에도 속하지 않은, 허공에 홀로 서 있는 문. 낡은 벽돌과 녹슨 철제 난간들 사이에서, 그 문만은 이질적인 빛을 내뿜고 있었다. 문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은은한 광채는 마치 나를 초대하듯 손짓하고 있었다.

“들어오실 건가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좁은 골목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다시 문을 바라보았을 때, 문 안쪽 그림자 사이로 아주 작은 실루엣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이곳에 발을 들여선 안 된다는 이성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갈망이 발을 문 쪽으로 이끌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았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감촉. 그러나 그 단순한 감촉에 온몸이 떨려왔다.

문이 열리는 순간, 세상은 한순간에 뒤집혔다.

골목의 어둠과 냄새, 차가운 바람은 사라지고, 눈앞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오래된 갤러리였다. 벽에는 수십, 수백 점의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그 그림들은 정지되어 있지 않았다. 푸른빛은 파도처럼 출렁였고, 붉은빛은 심장이 뛰듯 박동하며 빛났다. 어떤 그림은 눈처럼 흩날렸다가 이내 사라졌다. 색이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아이가 서 있었다.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작은 체구. 검은 코트 차림에, 얼굴은 매끈한 하얀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다. 눈구멍 너머는 비어 있었지만, 분명히 내 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아이의 목소리는 또렷하고 맑았다. 그러나 그 어조에는 어른 같은 차분함이 스며 있었다.
“여기는 사람들의 사연이 색으로 바뀌는 곳. 그리고 저는 이 갤러리의 주인, 미스터 Lee라고 합니다.”

나는 숨을 삼키며 속삭였다.
“… 아이인데, 주인이라고요?”

아이... 아니, 미스터 Lee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네. 하지만 아이이기만 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죠. 저를 보는 사람마다 다른 얼굴을 본다고들 하니까요.”

그 목소리는 너무도 기묘했다. 아이 같으면서도 아이 같지 않은, 짧은 한마디에 수십 년의 세월이 묻어나는 듯했다.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동시에 이상한 안도감을 느끼며, 문 안쪽으로 한 걸음 더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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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낯선 초대

갤러리의 공기는 묘하게 부드러웠다. 오래된 책 냄새와 바닷바람이 뒤섞인 듯한 향기가 은은히 스며 있었고, 벽마다 걸린 그림들은 고요히 숨 쉬고 있었다. 나는 마치 현실과 꿈 사이에 걸려 있는 것처럼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는…”
나는 낮게 속삭였다.
“… 도대체 어떤 곳이죠?”

미스터 Lee는 벽에 걸린 그림 앞에 서서 대답했다.
“이곳은 이야기가 색으로 바뀌는 장소예요. 누군가의 고백, 억눌린 감정, 끝내 말하지 못한 비밀… 그것들이 모두 그림이 되죠.”

나는 잠시 벽을 바라보았다. 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단순히 바다의 풍경이 아니었다. 바닷속에서 무언가 울부짖고, 동시에 위로하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당신의 이야기도 결국 이곳에 남게 될 거예요.”
아이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
“작은 이야기라도 괜찮아요. 기쁨, 슬픔, 후회, 그리움… 어떤 색으로든 바뀔 수 있으니까요.”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목구멍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내 안에 묻어 두었던 감정들이 가슴 언저리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 잃어버린 사람이 있어요.”
결국 그 말이 터져 나왔다.

순간, 벽 하나가 바스락거리며 빛을 머금었다. 깊은 푸른빛이 번져 나가더니, 거대한 바다가 벽 위에 출렁였다. 파도 소리가 은밀하게 울렸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 앞에 서 있었다. 벽에서 흘러나오는 파도는 내 기억 속 바다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잡지 못한 손, 끝내 전하지 못한 말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네, 아주 깊고 짙은 바다의 색이에요.”
아이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직 닿지 못한 빛이 숨어 있어요. 계속… 들려주시겠어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곳은 단순한 갤러리가 아니라, 내가 평생 닫아 두었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