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라는 이름의 감정에 대하여
다른 사람이 잘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있다. 그 사람만 잘되는 것 같고 나는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 사람이 보기 싫어지고 미워지는 마음이 생긴다. 어른이 되었다고 이런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일은 나를 지치게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불편한 감정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감정을 다른 에너지로 바꾸는 연습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반에 한 여학생이 전학을 왔다. 작은 키에 하얀 얼굴을 가진 아이였다. 무표정에 어딘가 모를 슬픔이 배어났다.
이름은 정미였다. 정미는 말수가 적었고 조용히 수업만 듣다 집으로 갔다. 처음에는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 관심을 끌게 된 계기는 시험이었다.
전학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치른 시험에서 정미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정확한 점수는 알 수 없었지만 나보다 점수가 높았던 건 분명했다. 전학을 오자마자 시험 범위도 제대로 몰랐을 것이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그런 점수를 받았다는 것에 나는 당황했다. 이후 글쓰기 대회와 그림대회에서도 그녀는 늘 상을 받았다. 담임선생님은 정미를 보며 칭찬했지만, 정미는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녀가 오고 나서 내 성적은 뒤로 밀려났다. 상도 더 이상 내 차지가 아니라고 느꼈다. 나는 그 상들이 원래 내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들수록 그녀가 미워졌다. 다른 친구들이 그녀를 험담하면 나도 함께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에 끼어들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서울로 왔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 이야기를 나는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환경이 어려운데 공부까지 잘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정미가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반 아이들도 못 하는 것 없는 정미를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정미의 친구는 정미보다 한 달 일찍 전학을 온 보금이었다. 보금이는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공부도 잘하지 못했고 외모도 수수했다. 둘은 특별하게 친해 보이지는 않았다. 학교와 집을 오갈 때 가끔 본 기억이 난다.
정미는 날이 따뜻해져도 늘 빨간 체크무늬 코트를 입고 다녔다. 소매는 몸에 맞지 않게 길었고 끝이 헤져 있었다. 나에게 정미는 소공녀처럼 보였다.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가 모든 것을 다 잃은 아이. 그래도 가진 게 많은 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정미를 시기했다. 내가 가진 것을 그녀가 빼앗아 갔다고 믿었다. 미워할수록 그녀는 더 많은 상을 받았다.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 불편해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정미가 사라지길 바랐다. 어린 마음이지만 이뤄질 수 없는 바람으로 나 자신을 괴롭혔다.
얼마 전 캐나다에 있는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딸은 1년 넘게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한국에서 유치원 실습을 마친 뒤 한국에서는 버티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캐나다로 떠났다.
캐나다에서 딸은 혼자 많은 일을 겪었다. 이사를 여러 번 했고 직장도 자주 옮겼다. 변기가 막혀 애를 먹었고 집에 쥐가 들어오기도 했다. 일의 크고 작음을 떠나 모든 판단을 혼자 해야 했다. 그 책임이 딸을 지치게 했다.
작년 여름 한국에 잠시 다녀간 뒤 딸은 다시 캐나다로 돌아갔다. 그때 딸은 영주권에 도전해 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자유롭게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일을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온라인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했다. 하지만 영어 실력은 쉽게 늘지 않았다. 공부는 재미없었고 성취감도 없었다. 외로움이 공부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캐나다를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바로 돌아올 수도 없었다. 계약 기간을 채워야 한다는 이유로 직장을 그만둘 수 없었다. 딸은 그 시간을 버티는 대신 견디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영어학원 광고를 보게 되었다. 체험 수업을 듣기 위해 학원에 갔다. 그곳에서 30대 유아 교사인 한국인 여성을 만났다. 그 사람도 영주권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딸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녀도 하고 있는데 나는 왜 못한다고 생각했을까.
그 질문이 딸을 붙잡았다. 한국이 싫어 도망치듯 캐나다에 왔는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딸은 학원에 등록했다. 예전에는 학원비가 아까워 혼자 공부했다. 이번에는 55만 원이 아깝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정미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 나는 정미를 경쟁자로만 보았다. 정미의 성적과 상은 나의 자리를 빼앗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교는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딸은 달랐다. 딸은 자신과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을 보며 뒤처졌다고 느끼지 않았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비교가 방향을 바꾼 순간이었다.
비교가 문제였던 게 아니었다. 그 비교 앞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가 문제였다. 어딘가에서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비교를 스승처럼 대하라. 비교는 빼앗김이 아니다. 비교는 가능성의 증거다.‘
누군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신호다. 그렇게 받아들일 때 시기와 질투는 나를 밀어 올리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