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하나 바꾸고 알게 된 선택의 기준
주말에 핸드폰을 바꿨다.
내가 쓰던 핸드폰이 몇 년 된 것인지도 모른 채 사용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진을 찍으면 같이 찍은 사람들이 다시 찍어 달라고 했다. 카메라를 소매 끝으로 닦아 보기도 했다. 잠깐 나아진 것 같다가도 며칠 지나면 같은 현상이 반복되었다. 배터리는 금세 닳았다. 모임을 갈 때마다 가방에 보조배터리와 충전기를 챙겨야 했다. 핸드폰보다 충전 상태를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얼마 전 남편이 회사에서 핸드폰을 싸게 판다고 했다. 하나 사주겠다고 했다. 나는 싫다고 했다. 지금 쓰는 핸드폰에서 메모리 부족 알림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핸드폰은 전자 상가에 가서 기종은 보지 않고 메모리 용량만 보고 산 것이다. 삼성 중고폰 256기가다. 그전에는 용량이 작았다. 그래서 용량이 기준이 되었다. 지금 사용하는 핸드폰은 중고였지만 사진을 찍고 앱을 받아도 걱정이 없었다.
남편은 내 핸드폰을 보더니 메모리는 반도 차지 않았지만, 출시된 지 오래됐다고 했다. 남편 회사에서는 업무를 핸드폰으로 처리하는 일이 많아 주기적으로 교체를 권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남편이 쓰던 핸드폰도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빠가 쓰던 중고폰을 쓰라고 하면 좋아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남편은 핸드폰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새 핸드폰을 나에게 주겠다고 했다. 자기는 아직 쓸만하다고 했다. 접히는 핸드폰을 써보는 건 어떠냐고도 했다.
나는 새것은 남편이 쓰고 쓰던 핸드폰을 내가 쓰겠다고 했다. 말하고 나서도 내 핸드폰에 남아 있는 메모리가 아까웠다. 남편이 쓰던 핸드폰 용량을 물었다. 내 것보다 적었다. 나는 안 되겠다고 했다. 남편은 지금까지 내가 쓴 용량보다 자신이 핸드폰에 남아 있는 용량이 더 크다고 말했다.
며칠 전 남편은 새 핸드폰으로 자료를 옮겼다. 나는 오늘에서야 남편의 핸드폰으로 갈아탔다. 저녁을 먹으며 옆에 둔 핸드폰 화면을 톡톡 누르자 안에서 무언가 돌아가는 느낌이 났다. 잠시 후 남편이 다 됐다며 핸드폰을 건넸다. 초기 화면까지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사진도 모두 옮겨져 있었다. 신기했다. 용량이 찼을까 걱정됐지만 묻지는 않았다.
그날 저녁 나는 카카오톡부터 은행 앱까지 하나씩 열어 본인 인증을 했다. 핸드폰 자판을 누르는 느낌이 좋았다. 화면은 깨끗했고 사진은 선명했다. 중고폰이었지만 나에게는 새 상품 같았다. 핸드폰은 기존 핸드폰보다 묵직했다. 하지만 마음은 가벼워졌다.
핸드폰이 바뀌었다고 내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은 달라졌다. 내가 불편 없이 쓰고 있다고 믿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새 핸드폰이 다시 좋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익숙해진다. 익숙해지면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다. 그동안 나는 불편함을 인내라고 불렀다. 절제라고 생각했다. 참고 사는 것이 어른답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나를 단단하게 만든 줄 알았다.
메모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고른 핸드폰은 반도 쓰지 못한 채 카메라 기능이 떨어졌다. 고장 날 때까지 쓸 수도 있었다. 메모리가 다 찰 때까지 버틸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핸드폰을 바꾸고 나니 이 기기의 기능을 더 알고 싶어졌다. 나는 전화 받고 사진만 찍을 줄 아는 사용자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자이언트 수료식에 가며 기차 안에서 음성을 텍스트로 바꿔 주는 기능이 이미 내 구 핸드폰에 있다는 걸 알았다. 좋은 기능이 있었지만 나는 모르고 살았다. 핸드폰을 자주 바꾸는 사람들을 보며 낭비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바꾸는 데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그들은 기능을 알고 있고 변화된 환경을 먼저 받아들이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아침 중국어 수업을 들으려고 유선 이어폰을 꽂으려다 구멍이 없다는 걸 알았다. 유선 이어폰은 충전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잃어버릴 걱정도 덜 하다. 무선이어폰은 충전도 해야 하고 관리도 번거롭다. 하지만 선택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핸드폰이 바뀌니 이어폰도 바뀌어야 했다.
불편을 피했더니 다른 선택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고집하고 싶어도 고집할 수 없는 시점이 있다. 그럴 때는 물건이 아니라 내가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