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챙겼다고 믿었던 하루에 대하여
구청 앞에서 장이 섰다. 직장에서 명절 선물로 준 온누리 상품권을 여기서 써보자는 심산으로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버섯도 사고 닭갈비. 멸치. 배, 김을 삿다. 오빠네. 친정, 시댁, 시누이네도 하나씩 줘야겠다고 생각하니 두 세개씩 사게된다. 김은 5봉지나 샀다.
물건을 들고 들어오니 선희 언니가 딸기를 먹고 있었다. 내게도 하나 먹어 보라고 했다. 탱탱한 딸기를 한입 베어 무니 단맛이 확 올라왔다. 맛을 보니 사고 싶었다. 나는 장바구니에 있는 물건을 꺼내놓고 다시 장바구니를 들고 구청앞 장터로 나갔다.
딸기 파는 가판대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돈을 건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큰 팩은 2만원, 작은 팩은 1만원이었다. 마침 세정과 주민 언니가 작은 팩 2개를 놓고 고민을 하자 사장님은 작은 것 두 팩 살꺼면 큰 팩 하나가 양이 많다고 선택의 폭을 좁혀주었다. 주민 언니는 두 집으로 가야 한다며 살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선희 언니가 ‘너무 비싸다. 나는 안살래.“ 라고 말했다. 나도 ”군대 간 아들이 다음주 화요일에 오는데 그때까지 두면 맛이 없겠죠.?” 라고 말하며 사기를 포기했다.
그러다가 보희 언니가 “자기는 작은 거 하나 사서 남편과 먹어.”라고 말했다. 사다 주면 남편도 좋아할 것 같았다. 나도 가격 앞에서 아들이 먹고 싶다면 망설였고 남편이 먹고 싶다면 지나쳤던 것 같다. 가장이었지만 원하는 것을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남편이 오늘은 유난히 떠올랐다.
보희 언니의 말을 듣고 다시 가서 작은 팩 하나를 달라고 했다. 사장님은 작은 팩에 딸기를 하나씩 차곡 차곡 담았다. 그동안 나는 “딸기 얻어먹었으니까 하나 더 사서 나눠 먹을까?”라고 말했다. 보희 언니는 “그러지 말고 한 팩 더 사서 엄마랑 같이 가서 먹어.”라고 말했다. 나는 엄마를 생각하지 못했다. 나보다 남이 내 가족을 더 챙기는 느낌이었다. 나는 작은 팩하나 큰 팩 하나를 샀다.
퇴근길에 엄마 집에 들러야 한다고 생각하니 저녁을 포장해 가야 할 것 같았다. 추어탕을 사기로 했다. 남편에게 저녁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얼마 전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은 시어머니 집에 가서 어머니가 밥을 함께 먹겠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남편에게 시댁에 갈 거냐고 물었다. 남편은 저녁은 먹었고 시어머니 집에는 못 간다고 말했다.
나는 추어탕집에서 추어탕 2인분을 샀다. 낮에 산, 딸기를 챙겨 친정엄마 집으로 향했다. 엄마네 집이 가까워질수록 바로 옆 동에 사는 시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시어머니도 혼자 저녁을 드실 텐데 혹시 남편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에 든 추어탕 중 하나는 시댁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친정 현관문을 들어섰다. 엄마는 뭐 그렇게 많이 들고 오냐고 말했다. 추어탕과 딸기에 김이 손에 들렸다. 물건들을 식탁에 늘어놓고 엄마에게 작은 반찬통이 없냐고 물었다. 엄마에게 추어탕 하나는 시댁에 가져다드릴 거라고 말했다. 사 온 딸기 중 작은 팩의 딸기를 작은 통에 나눠 담았다. 큰 팩은 엄마 먹으라고 내밀었다. 작은 팩에 남은 딸기는 남편 갖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막 딴 딸기라 싱싱하고 맛있다며 냉장고에 두고 엄마 다 먹으라고 말했다. 엄마는 시어머니와 남편 더 많이 갖다주라고 말했지만, 나는 엄마가 많이 먹으라고 말했다.
추어탕과 딸기, 조미김 두 봉지를 들고 옆 동 시댁으로 갔다. 어머니는 작은 시누이와 전화하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예원 엄마 왔다. 전화 끊어라.” 하며 서둘러 수화기를 놓고 나를 맞았다. 나는 “어머니 이 추어탕 냄비에 넣고 끓려서 드세요 여기 있는 부추도 넣어 드세요. 그리고 이 딸기 많지 않지만 맛있어요. 어머님만 드세요.” 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영수(남편)는?”이라고 물었다. “바빠서 오늘 못 온대요 어머니 혼자 드시면 돼요. 저는 친정 가서 먹을게요.”라고 말하고 종종 걸음으로 현관을 나섰다. 어머니는 나를 따라오며 잘 먹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현관을 나서는 내 마음은 무거워졌다. 어린아이를 혼자 두고 나온 것 같았다.
국을 끓여 드리고 왔어야 하나 잠깐 망설였다.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저녁에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라는 책을 읽다가 이런 문장을 보았다.
“충분히 잤는데도 피곤하다면 마음이 지쳐 있다는 증거다. 먹어도 먹어도 텅빈 허기가 찾아온다면 마음 한구석에 거대한 구멍이 나 있다는 증거다. 마음은 볼 수는 없어도 알 수는 있다..”라는 문장을 필사했다.
그 밑에 나는 ’마음도 신호를 보내는구나.‘ 라고 썼다. 그 아래 내문장을 썼다. ’가릴 수는 있어도 감출 수 없는 것이 마음이다.‘라고.
오늘 딸기가 그랬다. 충분히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은 계속 부족했다. 친정엄마, 남편, 시어머니 모두 챙기고 싶었다. 하지만 큰 팩 딸기는 친정엄마에게 갔고 작은 팩은 나뉘어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갔다. 오늘 딸기는 내가 누구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인지 보여 주었다. 마음은 가릴 수 있어도 속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