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모임에서 돌아온 한 문장
우리는 모두 미래를 걱정하지만 정작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오늘뿐이다. 새해의 첫날이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지만 각자 오늘을 살고 있다.
시댁과 친정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 동 현관을 내려오면 바로 옆 동이 친정이다. 설 세배를 마치고 남편과 나는 친정으로 건너갔다. 오빠네와 동생네는 이미 아침을 먹고 상을 치우고 있었다. 오늘은 우리가 예전보다 조금 일찍 온 듯했다. 아들과 딸은 이번 설에 함께하지 못했다. 딸은 캐나다에서, 아들은 군대에서 설을 맞았다.
남편과 내가 들어서자 다시 다과상이 차려졌다. 오빠는 차례 지내고 남은 경주 법주를 다시 꺼냈다. 엄마는 동생네가 사 왔다며 동그란 흰떡과 쑥떡을 내놓았다. 새언니는 과일을 깎았다. 우리는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남편은 사진을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곧 딸에게서 답장이 왔다.
“와, 외할머니네 새집이다.”
며칠 전 딸은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며 음성을 녹음해 보냈다. 혼자 약을 먹으며 설을 보내는 딸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짧은 메시지 속에서 딸이 제자리에서 하루를 잘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아들도 전화가 왔다. 떡국은 먹었단다. 내무반에서 동기생들과 넷플릭스 영화를 보고 있다며 하루 일정을 말했다. 훈련 없이 지낸다니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남았다.
엄마가 잔을 들었다. 건배하자며 한 사람씩 한마디 하라고 했다. 다들 잠시 망설였다. 직장에서 이런 걸 시키면 싫다며 투덜거렸지만, 엄마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건강하자. 새해 복 많이 받자. 우리가 남이 가 등. 웃음이 섞인 말들이 오갔다.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나는 순간 긴장했다. 작가라는 이유로 뭔가 그럴듯한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준비되지 않은 자리에서 말하라면 머리가 하얘진다.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머리를 굴리다가 나는 무심코 외쳤다.
“오늘 안에 미래가 있다.”
말하고 나니 조금 뜬금없었다. 아무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늘이 중요하다는 말이었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얼른 잔에 남은 술을 털어 넣었다.
고2가 되는 남동생 아들 연준까지 한마디씩 하고 나니 모두의 표정이 풀렸다. 엄마가 이런 자리를 만든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한잔씩하고 한마디씩 꺼내 놓으니, 서로의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듯했다.
오빠가 고민이 있다며 말을 꺼냈다. 오빠는 오십 후반이다. 회사에서 휴직 신청을 받는다고 했다. 기본급의 70퍼센트를 주고 휴직 기간 다른 일을 해도 된다는 조건이었다. 요즘 자신이 하는 일은 자기 일을 지침으로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회사 측에서 인공지능으로 자신이 하는 일이 대체 가능한지 시험하는 분위기 같다고 했다.
나는 스트레스는 없냐고 물었다. 오빠는 지금은 괜찮다고 했다. 나는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그냥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직장은 돈만 버는 곳은 아니다. 규칙적인 하루가 있고, 최소한 한 끼는 해결된다. 그런 안정이 생각보다 크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오빠의 마음이다. 휴직 기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선택도 좋다. 선택이 옳으냐 그르냐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새언니는 오빠가 종친회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자를 익혀 시제도 지내고 집안 어른들 일을 도우면 좋지 않겠냐고 했다.
무엇을 하든 쉬운 일은 없다. 직장도, 종친회 일도,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가끔 나에게 왜 그렇게 힘들게 글을 쓰려하냐고 묻는다. 나는 그냥 내 소명 같다고 답한다. 어쩌면 어렵기 때문에 쓰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계속 써야 다음 세대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아이들도 글을 썼으면 좋겠다. 글로 써보면 마음이 조금은 정리된다.
요즘 나는 조금 흔들린다. 책을 내고 나니 내가 책에 쓴 대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혹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마음이 무겁다. 작가로서 좋은 말을 해 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도 있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다. 이 고민 또한 써야 한다. 그래야 나처럼 망설이는 누군가가 다시 펜을 들지 않을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며 산다. 휴직을 고민하는 오빠도, 외국에서 혼자 설을 보내는 딸도, 군대에서 명절을 보내는 아들도, 그리고 여전히 글 앞에서 망설이는 나도 그렇다.
“오늘 안에 미래가 있다.”
그 말을 해 놓고도 나는 한동안 어색했다. 하지만 그 말은 결국 내게로 돌아왔다. 그래서 오늘도 나에게 묻는다. 나는 오늘을 잘 살았나.
미래는 어쩌면 지금, 이 하루 속에 스며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오늘을 건너가며 또 하루를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