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통과한 문장이 명언이 된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 나는 졸렸고, 누군가는 눈이 번쩍 뜨였다고 했다.
일요일 저녁이면 천무 독서 모임이 열린다. 자이언트에서 2주에 한 번 줌으로 모인다. 이번 책은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였다. 제목부터 묘했다. 어떻게 한 사람이 모든 말을 할 수 있을까. 시작부터 약간 비꼬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첫 장을 넘기자마자 헷갈렸다. 인물은 많지 않은데도 도이치의 아내 이름과 딸 이름이 자꾸 섞였다. 포스트잇에 ‘노리카는 도이치의 딸’이라고 적어 두고 다시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책 제목과 음악 제목이 쏟아졌다. 나는 그 책도, 그 음악도 잘 모른다. 작가는 친절하게 설명하지만 왜 이 장면에 이 음악이 나오는지 선뜻 와닿지 않았다. 문장은 읽히는데 머리에 남지 않았다. 집중이 흐트러지자 졸음이 밀려왔다. 내가 지금 줄거리를 따라가고 있는지도 확신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유튜브를 열었다. 줄거리라도 알고 읽으면 좀 낫지 않을까 싶었다. 검색창에 제목을 치니 가장 위에 이동진의 리뷰가 나왔다. 그는 KTX에서 졸다가 이 책을 읽자 눈이 번쩍 뜨였다고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고 했다.
같은 책을 두고 누구는 눈이 번쩍 뜨였다고 말한다. 나는 졸음이 쏟아졌다. 같은 책을 읽고도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책을 이해하는 능력도 재능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더 보면 더 작아질 것 같았다.
책 뒤표지에는 신형철과 은유의 추천사가 실려 있었다. 추천사는 그들의 이름만큼이나 화려했지만 나에게 와 닿지 않았다.
네이버에 다시 제목을 검색했다. 이 책이 요즘 20~30대 여성들에게 인기라는 기사를 보았다. 순간, 내가 뭘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상한 걸까. 아니면 나는 이미 젊은 세대의 감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걸까?
직장에서도 가끔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후배들이 열광하는 드라마, 유튜브, 밈을 나는 잘 모른다. 요즘 점심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 중에 “그게 뭔데?”라고 묻는 경우가 늘었다.
책 하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세상에서 밀려난 건 아닌데, 괜히 뒤처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처음부터 다시 책을 펼쳤다. 설 연휴 동안 ‘마음에 드는 문장 세 개만 건지자’라는 생각으로 책을 붙잡았다. 읽다가 세 문장을 골랐다.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고 우리는 다른 형식으로 되풀이할 뿐이다.”
“창조란 무수한 색이 뒤섞인 양동이에서 색 하나를 건져 올리는 일이다.”
“모든 것이 이미 말해졌어도 내가 말하지 않으면 재미없다.”
책을 덮고 수첩에 써 놓은 문장을 읽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말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유는 문자로 기록되었기 때문만은 아닐지 모른다. 그 말이 누군가의 삶에 실제로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전해진 것이 아닐까. 누군가 그 말대로 살아보았고, 도움이 되었고, 그래서 다시 다른 사람에게 건넨 것이 아닐까.
올해 초 나는 책을 출간했다. 초고를 쓰던 때 딸과의 갈등이 깊었다. 내가 말을 꺼내면 딸은 자주 짜증을 냈다. 나는 그런 딸을 철없다고 여겼다. 그러다 딸은 캐나다로 떠났다.
딸은 “엄마는 내 말을 듣지 않아!”라고 했다. 나는 조언이라고 생각했지만 딸에게는 지적처럼 들렸던 모양이다.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딸이 내 마음을 왜 모를까, 싶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먼 곳에 홀로 있는 딸과 전화 통화에서까지 다투고 싶지 않았다. 나는 딸의 말보다 먼저 내 말부터 돌아보게 되었다. 꼭 해야 할 말인지, 아니면 내가 답답해서 쏟아내는 말인지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내 생각이 맞다고 전제하고 말했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자 실수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면서 나는 나를 알았던 것이다.
떠오른 말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장이다. 수없이 들어온 말이지만 그 뜻을 몸으로 이해한 건 최근의 일이다. 정말 내 생각이 옳은지 스스로 묻는 순간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그래서 이 말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을 바꾸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명언은 넘쳐난다. 하지만 말로만 소비하면 금방 사라진다. 내 삶에서 부딪히고 깨지고 돌아본 끝에 붙잡은 문장만이 오래 남는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느꼈다. 책 속의 문장을 옮겨 적는다. 그 문장과 닿아 있는 내 경험을 떠올린다. 그 경험이 선명해지면 문장은 더 이상 남의 말이 아니다. 내 삶을 통과한 문장이 된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의 줄거리는 지금도 또렷하지 않다. 인물 관계도 여전히 헷갈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책은 내게 오래 남는다. ‘이미 말해진 것이라도 내가 다시 말해야 한다’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독서의 기쁨은 책을 완벽히 이해하는 데 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알쏭달쏭한 문장 사이에서 나만의 답을 건져 올리는 일, 그리고 그것을 내 말로 다시 적어 보는 일. 어쩌면 그 순간 우리는 괴테가 아니라, 나자신의 말을 시작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