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이 앞설때 공감은 멈춘다
민원인의 전화를 받기 전, 은희 주임과 희정 계장이 나누는 얘기를 먼저 들었다.
장애인 차량은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다. 대신 기존 감면 차량을 60일 안에 이전하거나 폐차해야 한다. 그 조건을 지키지 않아 추징이 발생했다고 했다.
내가 2008년 자동차세 팀에서 근무할 때도 이 부분에서 문제가 자주 발생했다. 우리는 감면 조건을 안내하는데, 민원인은 안내받지 못했다며 펄쩍 뛰곤 했다. 이럴 때는 법을 들이밀어도 설득이 잘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안내를 했다고 해도 분쟁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신고서에 감면 조건을 명시하고 서명을 받는다. 이후 감면 차량 소유자에게 등기로 감면조건 안내문을 발송한다.
이번 민원인에게도 등기 안내문이 발송되었다. 하지만 안내문이 반송되었다. 당시 담당자는 직접 전화해서 60일 전 감면 차량을 이전하라고 전달했다. 전화 통화 내용이 메모가 되어 있었다.
민원인은 장애인 차량 등록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고 알고 있었다. 주민센터에 가서 새로 산 차를 장애인 차량으로 등록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거기서 등록이 됐다면 이 차도 감면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신고 당시 60일 이내 기존 감면 차량을 처분해야 하는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도 불만스러워했다.
나는 반박할 말이 많았다. 세제 감면은 복지 등록과 다르다고. 등록한 구청에서도 안내했을 거라고. 안내를 못 받았다는 이유로 추징세액을 취소할 수는 없다고. 안내문을 등기도 보냈다고.
하지만 내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대행사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네요" 한마디였다. 민원인은 "대행사가 그럴 수도 있지요"라고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말에 나는 더 감정이 상했다. 대행사는 수수료를 주면서 일을 맞긴다. 공무원은 수수료를 받지 않고 일을 처리 한다. 그래도 공무원의 업무처리 실수는 이해받지 못한다.
나와의 통화 이후에도 민원인은 전화를 했고 직원과 돌아가며 통화를 이어갔다. 현종 주임의 통화에서 내일 방문하겠다는 말을 남기고서야 한바탕 소통이 끝났다.
민원인이 찾아온다고 하면 오라고 말은 하지만 솔직히 우리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를 두고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한다. 민원인은 만족하지 못한 채 돌아간다. 그렇다고 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직접 왔을까 싶다.
다음 날, 50대 중년 남성과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함께 부서를 방문했다. 은희 주임에게 왔다는 말을 듣고 내가 민원실로 나갔다. 희정 계장이 민원인과 대화하고 있었다. 나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민원인 앞에 앉았다. 남성의 귀에는 보청기가 끼워져 있었고, 손을 약간 떨었다.
남성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알았으면 차를 이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안내를 제대로 한 겁니까?"
”규정상 바로 팔 수 없으니 법도 60일 유예기간을 주는 것 아닙니까?“
”60일을 몰랐다니까요? 마포구청에 신고했어도 동대문구청에서 안내를 제대로 했어야지요.“
서로 말을 했지만, 민원인은 안내받지 못했다고 우겼고 우리는 규정만 말했다. 옆에 있던 민원인의 아내는 300만 원이 넘는 납부서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이렇게 세금을 추징해야 하는 분들이 오시면 저도 마음이 좋지 않아요. 그래서 신고받을 때 감면 조건을 읽고 서명을 받거든요."
"내가 직접 가지 않으면 안내를 못 받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저희 직원이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고 하던데요?"
"소리를 질렀던 기억은 나는데, 오는 전화 내용을 어떻게 다 기억해요? 문자로 남겨줬어야죠."
그 말에 희정 계장이 ”등기로 보냈는데 반송되었어요”라고 하자 민원인은 "요즘 누가 집에서 등기를 받아요?"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작은 한숨이 나왓다. 어디까지 민원인의 편의에 맞쳐 일을 해야할까. 문자를 보내면 전화해야 한다고 하고, 일반 우편으로 보내며 받지 못 했다고 한다. 등기로 보내면 집에 누가 있냐고 한다.
우리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아내가 물었다.
"방법이 없다는 거죠. 이런 사람이 많나요?"
"적지는 않아요. 안내를 하는데도 늘 있어요."
민원인은 억울함을 쏟아내고 돌아갔다. 그들이 나간 뒤 희정계장은 "통화기록 적어두지 않았더라면 더 난리 쳤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민원인이 전화를 받은 걸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단정했다. 나는 내가 옳다고 확신한 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그 민원인의 귀에 보청기가 있었다는 걸, 그 자리에서 나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전화가 왔는데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 듣지 못했을 수도 있고, 문자가 그 사람에게는 훨씬 확실한 안내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물론 모든 민원인에게 맞춤형 안내를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를 거짓말쟁이로 단정 짓는 건 섣부른 판단이었다. 아내는 남편이 귀가 좋지 않다며 깎아주는 방법은 없냐고 물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복지 혜택이 있다. 나도 한때는 혜택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혜택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온전히 누리는 건 아니라는 걸 이번에 알았다. 그래서 그 민원인이 더 억울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온전히 공감한다는 말은 어렵다. 나를 돌아볼 때 비로소 공감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