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의 기다림을 받으며 산다
구내식당이 문을 닫았다. 한 달에 한 번 회사 밖으로 나가 밥을 먹어야 한다.
점심시간이 되자 직원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건물을 빠져나갔다. 나도 혜영 언니, 보리 언니와 함께 삼계탕집으로 향했다.
식당 안은 점심 손님으로 붐볐다. 예약을 해두길 잘했다. 테이블에는 숟가락과 젓가락, 김치와 양배추절임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뚝배기가 놓였다. 닭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앉은 탕 위로 검은깨와 파채가 올려져 있었다. 언니들은 오랜만에 먹는 삼계탕이라며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으며 환하게 웃었다. 보리 언니가 물었다.
"캐나다에 딸 보러 간다며? 언제 가?"
"3월 7일요. 딸이 엄청나게 좋아해요. 저도 좋기는 한데 돌아오면 다시 일상에 적응해야 할 생각하면 좀 부담스럽기도 해요."라고 대답했다.
닭고기에 김치를 얹어놓다 말고 혜영 언니가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딸이 같이 있어 달라고 할 때가 진짜 좋은 때야. 그 시기 생각보다 얼마 안 가."라고 하며 배시시 웃었다.
혜영 언니 첫째딸은 결혼했다고 했다. 딸 집은 혜영 언니 집을 지나쳐 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딸은 자주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둘째 딸은 학교 졸업하고 취업하더니 아침에 일찍 나가고 저녁에 늦게 들어온단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날이 많아서 한집에 살아도 얼굴 한번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 말에 보리 언니도 한마디 거든다. 둘째 딸이 방 얻어 나가더니 이제는 엄마 집도 불편하다며 자고 가라는 말에도 자기 집 가서 잔다고 한단다. 보리 언니는 서운한 듯 들었던 젓가락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딸이 커갈수록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든다. 언젠가는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딸은 자기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가 원해도 붙잡을 수 없는 날이 온다. 언니들의 경험담은 그 시기를 이미 지나온 사람들의 말이라 나에게 더 울림을 주었다. 나의 미래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몇 년 전 딸과 함께 갔던 베트남 여행이 떠올랐다.
딸이 여행 일정을 다 짰다. 나는 몸만 따라가면 되는 여행이었다. 불행히도 나는 떠나기 전날 전화금융사기범들에게 걸려들었다. 여행을 가서도 나는 딸보다 휴대폰과 더 많은 통화를 했고 밥을 먹다가도 배가 아프다며 객실로 먼저 돌아왔고, 딸은 호자 밥을 먹어야 했다. 딸이 “엄마 뭐해?”라고, 물으면 “회사 전화야”라고 얼버무렸다. 딸을 몰 시간도 나를 볼 시간도 없었다. 당시 난 문가에 홀린 사람처럼 누군가의 지시에만 곤두서 있었다. 딸이 옆에 있었지만 나는 그녀 곁에 없었다.
나중에 딸에게 물었다. 그때 엄마가 이상하지 않았냐고. 딸은 짧게 말하다 뒷말을 흐렸다.
"엄마가 회사 일 때문에 바쁜 줄 알았지…."
그 말이 오래 마음에 걸렸다. 딸은 그 여행 내내 '엄마는 나와 있어도 즐겁지 않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여행은 딸이 엄마를 기다려 만든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다른 일에 붙잡혀 그 시간을 온전히 함께하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에 딸이 캐나다로 오라고 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갈게"라고 했다.
퇴근길에는 삼계탕을 포장해 엄마 집에 들렀다. 내가 딸을 만나러 캐나다 간다고 하자 엄마는 잘 결정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외손녀 좋아하는 무말랭이무침이랑 깻잎무침 만들어 놓겠다며 가져가라고 했다.
엄마에게 삼계탕을 식탁에 두고 뒤돌아서 나오는데 엄마는 내 등에 대고
"야야. 2주나 너를 못 보는구나. 저녁마다 난 적적하겠다."라고 말했다.
엄마의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일주일에 겨우 한 번 엄마 집에 들른다. 어떨 땐 엄가가 전화해서 아쉬운 말을 해야 겨우 엄마 집에 간다.
평소에도 자주 오지 않는데.
’엄마에게 나는 그런 존재구나. 일주일에 한 번, 그 한 번이 엄마에겐 기다림의 전부였구나.‘
나는 늘 누군가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을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언니들의 말이 다시 맴돌았다.
"딸이 같이 있어 달라고 할 때가 진짜 좋은 때야. 그 시기 생각보다 얼마 안 가."
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것들의 의미를 잊고 살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찍힌 사진 속의 나는 무표정했다. 사랑은 있었지만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제는 현재에 충실하고 싶다.
딸은 3월에 나를 기다리고 있다. 엄마는 매주 저녁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렇게 누군가의 기다림 속에서 산다. 지금 이 순간이 언젠가 그리워질 ‘그때’라는 걸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