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은 결국 서로에게 기대는 일

나이들어가는 부모를 보며 배우는 돌봄의 마음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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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상하게도 작은 일들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리모컨 하나, 가스레인지 불 하나, 로봇청소기 전원 버튼 하나. 예전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일들이 이제는 어떤 신호처럼 느껴진다. 특히 엄마와 시어머니를 볼 때면 더 그렇다.


일요일에 코스트코에 들러 몇 가지 장을 봤다. 빵 두 박스와 자몽 한 상자, 어묵 두 봉지를 담았다. 간단히 먹기 좋아 골랐지만 계산대 앞에 서자 괜히 마음이 찜찜했다. 몸에는 크게 좋을 것 없는 음식이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드릴 것만 따로 챙겨 엄마 집으로 갔다. 엄마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셨다. 얼굴이 약간 부어 보였다. 저녁도 아직 드시지 않았다. 걱정이 됐지만 오래 함께 있지는 못했다. 집에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자꾸 간편한 음식만 사서 들고 갈까.’ 순간은 편하지만 엄마 몸에는 좋지 않은 선택일지 모르겠다.

그 마음을 안고 집에 들어섰는데 남편 전화가 울렸다. 시어머니였다.

“불이 안 켜져. 가스가 아예 안 나와.”

남편은 “금방 갈게요”라고 말하고 현관으로 향했다. 밥상은 막 차렸고 국도 데웠지만, 남편은 갔다와서 밥을 먹겠다며 나갔다. 나는 혼자 남은 카레에 밥을 비벼 먹었다.

그 순간 며칠 전 큰시누이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시어머니는 텔레비전을 켜 놓고 소리가 나지 않아 답답해했다. 결국 큰시누이에게 전화했다.

“수민엄마야, 소리가 안 나온다. 텔레비전이 고장 났나 보다. 얼른 와봐라.”

시누이는 김치를 담그느라 고무장갑을 낀 채였다. 추운 날씨였고 밤이 깊어가던 때라 당장 달려가고 싶지 않았다.

“엄마, 리모컨 앞쪽에 버튼 누르는 데 있지? 그걸 한 번 눌러봐.”

“앞? 버튼? 그게 어디야?”

“엄마, 리모컨 뒤집어 봐. 건전지 넣는 데 보이지? 그게 뒤야. 옆구리도 한번 찾아봐.”

“뒤가… 어디야?”

시누이는 한숨을 잠시 삼키고, 다시 침착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엄마, 리모컨의 옆구리 있지? 그 옆에 더하기 표시처럼 생긴 거.”

“아… 더하기? 십자가… 어, 있다.”

“그거 계속 눌러봐. 그거 볼륨이야.”

“어? 어? 소리 난다! 이제 들리네!”

전화를 끊은 뒤 시누이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고 했다. 시계를 보니 40분 넘게 통화를 했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자신이 오지 않고 해결이 되어 다행이라고 했다.


친정엄마 집에도 로봇청소기가 있다. 남동생이 집들이 선물로 사준 물건이다. 엄마는 전원을 켤줄도 끌 줄도 모른다. 파주에 있는 남동생이 로봇 청소기에게 청소를 하라고 명령을 한다고 했다. 작동이 멈추기라도 하면 엄마는 손댈 수가 없다. 엄마가 조작하거나 멈출 수도 없는 물건이다.

세상은 점점 편리해지는데 노인이 누릴 수 있는 편리함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나이가 들어도 내 일을 내가 해결하며 살 수 있을까?’

‘엄마와 시어머니 같은 상황이 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돌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가르쳐야 할 때도 있고 대신 해드려야 할 때도 있다. 어느 쪽이 맞는지 매번 흔들린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서로에게 기대며 사는 일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오늘은 그 사실을 조금 더 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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