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나를 붙잡아 주던 시간들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에게 그 신앙은 글쓰기였다.
독서 길라잡이 대면모임이 있었다. 독서 길라잡이 모임은 하루 읽을 분량을 정해 책을 읽고, 그날의 단상을 단톡방에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점심을 먹으면서 신앙 이야기가 나왔다. 다섯 명이 모였는데 나만 종교가 없었다. 신앙이 삶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묻는 말들이 오갔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신앙이 주는 좋은 점과 글쓰기가 주는 좋은 점이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가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에 가자고 찾아왔다.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닐 때는 피아노 원장님이 우리 집에 와서 나를 데리고 교회에 가려고 했다. 나는 싫었다. 일요일 아침은 집에서 만화영화를 보며 쉬고 싶었다. 그 끈질긴 설득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더 반발심이 생겼던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교회는 한 번가면 계속 가야할 곳이라고 생각했다. 자유가 없는 절제와 규칙이 부담스러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교회는 신도를 늘리고 헌금을 받아 교회를 운영하려는 이익집단이라고 생각도했다. 이해하려 하기보다 의심부터 했다.
그러다 작년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준비하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자격증을 따려면 160시간의 실습이 필요했다. 동네 심리상담센터에서 주말 실습이 가능했다. 센터장은 교회 목사였다. 실습 자격은 주말 예배에 참여하는 일이었다.
두 달 동안 매주 예배에 참석했다. 예배 진행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예배 오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고 가는 지 서서히 알게 외었다. 나는 찬송가를 불렀고 설교를 들었다. 예배에 오는 사람들 중에는 돌아가면서 단상에 나와 기도문을 적어와서 기도를 했다. 돌아가면서 피아노 반주를 하는 사람도 있았다. 헌금, 반주, 아이들 돌봄까지 역할이 자연스럽게 나뉘어 있었고, 교회는 하나의 공동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처음으로 교회의 문화를 가까이에서 보았다. 목사의 설교를 통하여 역사 공부도 하고 성경 구절을 통해 삶의 태도도 배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교회를 꾸준히 다닌다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력도 키우고, 기도문을 외우면서 암기력도 좋아지고 공동체 속에서 리더십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삶을 대하는 태도도 안정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가 교과서를 통해 지식을 가르친다면 교회는 삶의 태도와 마음의 안정을 줄 수 있다는걸 느꼈다.
길라잡이 모임에서 신앙이 있어서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은 없는지도 물었다. 윤정 님은 예수님에게 마음을 의지해서 살면 힘든 일이 생겼을때 버티는 힘이 생긴다고 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란느 믿음이 생긴다는것이다. 또한, 종교가 같은 사람들과의 공동체에 참여하며 지내면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불편한 점은 가기 싫어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강제성이 있다는 점이 불편하지만 그것도 그런 강제성이 더 결속력을 높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확신하게 됐다. 나에게도 신앙 같은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글쓰기였다. 글을 쓰면 문해력, 논리력, 표현력을 늘릴 수 있다.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흔들리는 나를 다시 제자리에 앉힐 수 있었다. 하기 싫은 날에도 글을 쓴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나아진 나를 만난다. 신앙이 신을 섬기는 일이라면 글쓰기는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