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게 읽을 때 비로소 개어나는 역사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책먹는 하마 독서모임에서 읽었다. 책 뒤편에는 2014년에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해 2021년에 완성했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그 앞에는 참고 문헌 목록이 길게 이어진다.
이 소설이 오랜 시간 조사와 증언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한강의 다른 작품을 떠올리게 된다. 『소년이 온다』가 광주 시민 항쟁을 다뤘다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을 다룬다. 광주는 비교적 많이 알려진 역사다. 하지만 제주 4·3사건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에게도 낯선 사건이었다. 해방 이후 ‘빨갱이 척결’이라는 명목 아래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국가 권력이 폭력을 허용했고 인간의 삶은 손쉽게 지워졌다. 책을 통해 그 시절의 역사를 다시 마주했다.
『소년이 온다』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은 죽은 사람보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을 보여준다. 사라진 이들보다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시간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더욱 또렷하게 남는다.
『작별하지 않는다』. 윤리에 어긋난 폭력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끝내 잊히지 않는다는 선언처럼 느껴진다.
이 소설에는 한강 작가만이 쓸 수 있는 문장들이 있다. 가슴을 파고드는 증언 같은 묘사들이다.
나는 바닷고기를 안 먹어요 ~우리 아들만한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도 봤고, 산달인지 배가 불러 허리를 짚고 서 있는 여자도 있었어요. 어둑어둑해지는데 총소기가 멈춰서 문구멍으로 내다 봤더니 피투성이로 모래밭에 엎어져 있는 사람들을 군인들이 바다에 던지고 있었습니다. ~총살 했던 자리는 밤사이 썰물에 쓸려가서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습니다. 이렇게 하려고 모래 밭에서 죽였구나, 생각 들었어요 (223p)
출처 : 작별하지 않는다.
무슨 병을 앓았는지 배에서 숨이 끊어진 젖먹이를 젖은 부두에 놓고 가라고 경찰이 명령한 겁니다. 그렇게 못하겠고 여자가 몸부림을 치는데, 경찰 둘이 강보째 빼앗아 바닥에 내려놓고 여자를 앞으로 끌고 가 호송차에 실었어요~억울하게 징역 산 것보다 그 여자 목소리가 가끔 생각납니다. 그때 줄 맞춰 걷던 천 명 넘는 사람들이 모두 그 강보를 돌아보던 것도(267p)
출처 :작별하지 않느다.
여러 날에 걸쳐 군용 트럭이 광산으로 들어갔어, 새벽부터 밤까지 총소리가 들렸다는 주민의 증언이 있어. 갱도가 시체로 가득 찬 다음엔 근처 골짜기로 장소를 옮겨서 총살하고 매장 했어 (274p)
출처 : 작별하지 않는다.
이 문장들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준다. 그래서 더 견디기 어렵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런 생각이 들었다. 12.3. 만약 계엄이 성공했다면 나 역시 저 장면 속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헌법에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적혀 있어도 그 주권을 지켜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는 생각 들었다.
나는 제대로 판단하는 사람인가. 나는 침묵하지 않는 사람인가. 우리가 함께 모여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넘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기 위해서다. 그 질문을 함께 품는 시간이 소중하다고 느꼈다.
독서는 세상을 단번에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한 사건이 마음 안으로 들어오게 만든다. 그 작은 균열이 생각을 바꾼다. 그 힘이 바로 독서라고 믿는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읽고 나면 쉽게 작별할 수 없는 책이다. 역사와 인간, 그리고 지금의 나 자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