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은 없다

싫어도 학교 가듯 인생을 가는 사람에 대하여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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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경제국 송년회를 마치고 엄마 집에 들렀다. 엄마는 저번 주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갔다왔다. 잘 다녀왔는지 궁금했다. 엄마는 진형 중·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다. 엄마는 작년에 입학을 했다. 반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늦깎이 학생이라고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엄마는 소파에 누웠다가 일어났다. 주무셨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안 잤다고 했다. 하지만 한쪽으로 눌린 머리는 괘 오랜 시간 엄마가 소파에 누워 있던 것 같다. 엄마 머리맡에 있는 핸드폰 유튜브 동영상이 돌아가며 여성의 말소리가 계속 들렸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리모컨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텔레비전을 끌 수 없어서 텔레비전 전원을 뽑았다고 말했다.

겉옷을 벗자마자 리모컨을 들고 전원 버튼을 눌러보았다. 엄지에 힘을 주어야 버튼이 눌렸다. 엄마는 건전지가 다 된 것 같다며 내일 사서 갈아 끼워야겠다고 했다.


우리 집 건전지는 남편이 다 간다. 건전지를 사가지고 오는 사람도 남편이고 교체하는 사람도 남편이다. 리모컨을 돌려 건전지가 들어 있는 뚜껑을 열었다. 중간 정도 크기의 건전지 두 개가 들어 있었다. 한개도 아니고 두 개인데 세 달 밖에 못 쓰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비전 뒤로 가서 엄마가 빼 놓은 텔레비전 연결 코드를 콘센트에 꽂았다. 텔레비전이 켜졌다. 리모컨을 이용하여 전원을 눌러보았다. 속도는 느렸지만 다시 텔레비전이 꺼졌다.

엄마는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엄마에게 리모컨을 주고 전원을 눌러보라고 했다. 텔레비전은 켜고 끄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말을 안듣던 리모컨이었다며 겸연쩍어 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어딜 갔다 왔냐고 물었다. 엄마는 모르겠다고 했다. 가보니 예전에 갔던 곳이었는데 거기가 어딘지 이름을 모르겠다고 했다. 엄마는 핸드폰 사진을 한 참 살피더니 생각이 났는지 새만금 갔다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사진에는 같은 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활짝 웃고 있었다. 늦은 나이에 학교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나이는 60대에서 부터 80대까지 안경 쓰고 모자 쓰고 목에는 스카프를 두른 여성들이 많았다. 나이가 들면 얼굴이 비슷하게 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엄마의 얼굴을 확대해 보이며 말했다. “내가 제일 미워 나이도 제일 많고 왜 사진만 찍으면 이렇게 밉게 나오는지 모르겠어.” 나는 핸드폰 속 사진 속에서 엄마의 모습을 다시 보았다.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얼굴에 주름도 있고 피부도 팽팽하지 않은 동네 아주머니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엄마보다 젊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누가 더 예쁘다고는 말하기는 어려웠다. 도리어 엄마가 엄마 나이보다 덜 들어보였다. 엄마는 자신보다 어리면 다 예뻐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가 제일 이쁘구만 80대 같이 안 보여.” 라고 말했다. 엄마는 배시시 웃었다. 그 다음은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동영상의 배경은 관광버스 안에서 아주머니들이 일어나서 음악에 맞추어 뛰는 모습이었다. 엄마도 사람들 사이에서 몸을 흔들고 있었다. 관광버스에서 위험하다고 못하게 되어 있는데 이게 가능했냐고 물었다. 엄마는 이제 규제가 풀렸다더라 하며 그날 그 버스에서 춤추고 놀았더니 아프던 다리가 다시 멀쩡해졌다며 병원 가서 주사 안 맞아도 될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영상 속 아주머니들은 좁은 버스 공간에 서서 음악에 몸을 흔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엄마는 가는 내내 버스가 들썩들썩 했다며 관광버스의 묘미는 버스 안에서 뛰고 노는 춤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학교에 다닌다. 학교에서 동기생을 만난다. 제일 못생겼고 제일 나이가 많고 공부 따라가기 힘들다고 했다. 학교에서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수업 따라가기 힘들다고 했다. 나이 많다고 무시할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런 말을 하면서도 웃고 있고 안 간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중학교 3년은 마치고 싶다고 한다. 분명 엄마는 학교 다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좋기만 하다고 다는 것 같지 않았다. 자신보다 젊고 똑똑한 사람들이라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려면 힘들다. 그래도 엄마는 학교에 간다. 싫어도 간다. 엄마는 학교 가듯 그의 인생을 가고 있다.

과장 퇴임식이 있었다. 한 직원이 “과장님 퇴직 후에도 꽃길만 걸으세요. 라고 말했다. 어떻게 인생이 꽃길만 걸을 수 있는가. 80세 노인도 가시밭도 가고 진흙탕을 구르면서도 가고 있다. 인생은 꽃길이 아니다. 고통과 어려움을 나만의 방식으로 헤치며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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