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기로 했다

책임질 수 있는 자유가 기준이 되었다

by 청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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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렛뎀 이론』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책에는 “내버려 두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온다. 남을 바꾸려 애쓰지 말고, 그 에너지를 나에게 쓰라고 한다. 남은 바꿀 수 없지만 나는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읽을 때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맞는 말 같다. 나도 그렇게 사고방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면 의문이 남았다. 정말 내버려 두기만 해도 될까. 모두가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 조직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래서 작가는 다시 “내가 하자”라는 말을 꺼낸다. 남을 바꿀 수는 없어도 나는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그게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말 역시 쉽지 않다. 그럼 결국 모든 걸 내가 해야 한다는 뜻일까? 라는 의문이 또 들었다.

1월 초, 직장에서 대대적인 인사 발령이 있었다. 나도 징수팀에서 자동차세팀으로 옮겼다. 자동차세팀에서는 자동차세 부과 업무 뿐만아니라 차량 취득세 신고 업무도 하고 있다. 년초 연납자동차세 고지서가 나가면 문의 전화가 쏟아진다. 자동차 취득세 신고 창구는 1층에 있다. 신고 창구도 년초면 사람이 몰린다고 했다.

내가 오기 전부터 1층 차량취득세 신고창구 대직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창구 직원이 휴가를 내면 자동차세 수시분 담당이 신고창구 대직을 했다고 했다. 한 사람이 자진 신고 창구 직원 두 명의 대직을 했다. 창구 직원도 휴가를 내기 어려운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팀에서 서로 도우면서 일을 해야하는 건 맞다. 하지만 각자의 업무에 방해가 될만큼 대직의 업무 비중이 커지면 귀찮고 힘들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했다. 나도 창구 업무를 배우겠다고 했다. 돌아가면서 하자고 했다. 그리고 1월 연납 기간과 6월, 12월 정기분 기간에는 민원창구 휴가를 자제해 달라고 말했다. 팀이 굴러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었다.

새로운 직원 앞에서 나는 당당하게 말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책상 위에 있는 달력에 작은 메모가 눈에 들어 왔다. 1월 23일 숫자 밑에 ‘자이언트 라이팅 코치 수료식’이라고 쓰여 있었다. 순간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은대 작가는 두 달 전에 라이팅 코치 수료식이 있다고 공지했다. 이렇게까지 일찍 얘기를 했으니 다른 핑계되지 말고 참석하라고 요청했다. 나는 가고 싶었다. 코레일 앱에서 예매가 시작되자 마자 기차표 예매를 했다. 같이 가는 작가들 자리까지 한꺼번에 가족석으로 왕복 8좌석을 예매를 해 둔 상태였다. 나에게 글을 쓰는 작가들의 모임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신규 라이팅 코치로서 역할을 배우고 동료 작가들을 격려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직원들에게 휴가를 자제해 달라고 말한 뒤였다. 나는 휴가를 내도 되는 걸까.

직원들이 나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내버려 두면 되는 걸까. 책에서 말한 대로 말이다. 만약 직원 중 누군가가 1월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휴가를 내겠다고 하면,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가면서 직원은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직원에게 1월에는 휴가를 가지 말라고 말했는데도 가야 한다고 한다면 나는 휴가를 보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업무는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전화를 더 받던지. 아니면 차량취득세 창구 업무를 익혀야 한다는 결론이다. 내가 직원들의 사정과 건의를 받아 들일 수 있으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 나는 이것을 책임질 수 있는 자유라고 생각한다.

예전 징수팀에 있을 때 신규직원이 우리팀으로 발령 받았다. 민원 창구 업무를 맡았다. 두 달 후에 4주간 교육을 갔다. 민원창구 대직을 하던 직원은 혼자서 두사람 몫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민원창구직원의 업무를 쪼개 나눴다. 이후에도 신규 직원 발령과 교육은 반복됐다.

팀직원은 민원창구직원이 휴가를 가거나 교육을 가면 으래 직원들이 업무를 쪼개서 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나도 민원 창구 업무를 배웠다.
그러면서 난 창구직원이 휴가를 내도 결재를 해야되나 말아야 되나를 고민하지 않았다. 누가 휴가를 내든 창구는 내가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직원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내가 그 자리를 메꿀 수 있다면 그 시간이 귀찮아지고 힘들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져 더 자유로울 수 있느 것 아닐까.

그때 깨달았다. 내가 “내가 하자”라고 말한 건 남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 선택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였다. 배워 두면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게 내가 원하는 기준이었다.내가

물론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직원들이 “우리팀장은 우릴 도와주려고 해”라는 말한마디면 내가 이 팀을 잘 이끌고 있다는 생각이다.

『렛 뎀 이론』을 읽으며 나는 이 말을 이렇게 이해하게 되었다. 내버려 두라는 말은 무책임해지라는 뜻이 아니었다.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영역을 내려놓으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영역에서는, 도망치지 말고 내가 하라는 말이었다.

책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하지만 결국 판단은 내 몫이다. 나는 자유롭게 선택하기 위해 배운다. 그래야 결정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그게 지금 내가 세운 나의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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