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써보라는 말로 여기까지 왔다.
오후 3시만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그 시간이 유난히 길다. 나는 책을 썼다. 출판을 기념하기 위해서 내가 직원들에게 떡을 돌리기로 했다. 주문한 떡이 3시에 오기로 했다.
오늘 출판사에서 내 원고가 인쇄에 들어간다고 했다. 아직 종이에 찍히지는 않았지만 온라인 서점에서 예약 판매가 며칠 전부터 시작되었다. 네이버 검색창에 책 제목을 치면 내 책이 검색된다. 화면에 뜬 표지가 낯설다. 연두색과 진분홍이 눈에 확 들어왔다.
처음 이은대 작가로부터 제목을 받았을 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얌전하고 고상한 제목으로 바꿀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 제목을 붙잡고 글을 썼다. 제목도 이제는 마음에 든다. 내가 제목을 말하면 사람들은 단번에 기억했다. 확실히 전문가의 시선은 달랐다.
예약판매가 시작되고 며칠 후 메일이 왔다. 지금까지 15부가 팔렸다는 내용이었다. 계약 조건은 단순했다. 예약 판매가 부족하면 남은 책은 내가 사야 했다. 안 팔리면 내가 다 사면 된다고 생각했다. 가족들에게는 사 달라고 말했다. 나의 직장동료이자 입사 동기인 종환 언니와 향아 언니에게 말했다. 독서 모임 사람들에게 출간 소식을 전하고 나니 더 이상 말할 때가 없었다.
처음 목차를 받고 초고를 쓸 때는 이게 정말 책이 될 수 있을까 싶었다. 과거를 더듬어 여덟 편을 썼다. 그다음부터는 막막했다. 무엇을 더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사이 다른 작가들의 출간 소식이 계속 들려왔다. 강의를 듣거나 잠실 교보 저지 사인회에 갔다 오는 날은 다짐했다. 내일부터는 쓰자고. 하지만 하루가 지나면 다시 생각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은대 작가의 요약 독서법 대면 강의에 갔다. 사인을 받으려고 작가 옆에 앉았다. 이은대 작가가 사인을 하는 동안 나는 작은 소리로 물었다. “나도 책을 낼 수 있을까요?” 강의할 때는 무서운 선배 같던 작가가 대구 사투리를 섞어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한 번 써 봐라.”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다시 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기존 목차와 초고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정말 쓰고 싶은 주제로 다시 정리해 제출했다. 처음 주제는 워킹맘으로 살아온 이야기였다. 그 경험으로도 40편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30년 공무원으로 일하며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로 주제를 바꿨다. 작가의 답장은 짧았다.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냥 원래 것 가지고 쓰세요.’라는 답장이 왔다. 머리가 하얘졌다. 주제문 쓰는 데 며칠 걸렸다. 다르지 않다는 말은 표현이 다를 뿐 내 삶은 그대로 드러난다는 뜻이었다.
머릿속에서 목차의 제목을 보며 글을 쓰려니 더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나에게 일어나는 일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매주 강의 들으면서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어제 있었던 일과 마음에 걸린 일을 적었다. 길게 써진 날은 그 글을 초고에 옮겨 놓았다. 가정에서의 일과 직장에서의 일, 마음속의 일이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그렇게 쌓인 일상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40편의 마지막 초고를 보내는 날, 기쁘기보다는 의심이 앞섰다. ‘이게 책이 될까?’ 며칠 후 1차 퇴고 안내가 왔다. ‘출간 가능한 글이니 퇴고에 전력을 다해 주십시오.’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덧붙여 각 꼭지 말미에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다시 써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때부터 다시 읽고 다시 썼다. 출근시간은 당기고 퇴근 시간은 늦추었다. 근무 중에도 틈이 나면 원고를 봤다.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왔다. 퇴고를 마치고 수정본을 보내고 다시 퇴고 안내를 받기를 3차례 반복했다. 드디어 투고 안내 문자를 받았다.
100여 곳의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단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출판사 편집자와 퇴고 작업이 다시 두 달 넘게 이어졌다. 마지막이라는 말과 함께 수정 요청 사항이 메일을 통해 끊임없이 왔다. 수정 기한은 늘 빠듯했고, 마지막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선물을’에서 ‘을’자 빼 주세요.‘라는 말을 끝으로 원고는 인쇄에 들어갔다.
내가 책을 냈다고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초보 작가의 책을 사 달라는 말이 동료에게 부담을 줄까 봐 걱정됐다.
나도 서점에 가면 유명한 작가의 책에 먼저 손이 간다. 눈에 익지 않은 작가의 책은 제목만 보고 지나친다. 잠실 교보문고 저자 사인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인을 받기 위해 책을 사고 지하철에서 몇 쪽 넘겨보는 게 전부였다.
주말에 사무실에 나왔다. 현주 계장이 다가와 물었다. “팀장님 책 내셨다면서요. 여직원 단톡방에 올릴까요?” 책을 냈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미리 알고 말해주니 고맙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단톡방에 올리면 책을 사 달라고 조르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경험 하나 쌓는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하지만 내가 써 놓은 글을 다시 읽으며 내 마음을 알게 됐다. 그다음에는 글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보였다. 지금은 이 글을 읽고 용기를 내는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오후 3시 헬멧을 쓴 퀵 기사님이 상자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내가 주문한 떡이 도착했다. 상자를 여니 소포장 된 떡 70개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일일이 라벨지에 책 표지 그림을 인쇄해 두었던 스티커를 붙였다. 직원들에게 책을 냈다며 떡을 나눠 주었다. “아니 언제 책을 낸 거야. 대단한데.”라며 직원들은 의아해했다. 공무원 중에 책을 낸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청아이 뜻이 뭐야라고 했다. 나의 중국 이름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필명에 예쁘다고 했다. “푸른 마음을 가진 아이”라는 의미일 줄 알았다고 했다. 난 의미 없이 만든 필명인데 이름에 의미가 입혀지니, 정말 청량한 마음으로 살고 싶어졌다. 직원들은 책 제목보다 ‘청아이’라는 작가에 더 관심이 있는 듯했다.
책에는 직원과의 갈등과 가족과의 갈등, 내 일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들이 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할까. 거기까지 살피지는 않기로 했다. 한 사람이라도 내 글에서 ‘공감받고 나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발견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 역시 작가의 한마디에 기대여 여기까지 왔다. 이제 내 책이 누군가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