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받는 삶에서 선택하는 삶으로
승진은 능력의 결과일까, 관계의 결과일까.
나는 그 질문을 국장실 문 앞에서 다시 떠올렸다.
나는 세무직 팀장이다. 함께 근무하던 세무직 직원 중에 과장을 거쳐 국장으로 승진한 사람이 있다. 축하 인사 가자는 직원들을 따라 그를 찾아갔다.
나는 그와 오래 함께 근무했다. 행정직 중심의 경쟁 속에서 세무직이 국장까지 승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과장까지는 직원들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한다. 국장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별도의 공간이 생긴다. 직원들이 사무실 구경도 할 겸 올라가서 축하 인사를 드리자고 했다. 내가 빈손으로 가기 민망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김 팀장은 내가 오후에 책 출판 기념으로 직원들에게 돌린 떡을 들어 보였다. 국장에게 이 떡을 주면 된다고 했다. 자랑도 하고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나는 국장에게까지 알리고 싶지 않았다. 축하하러 가는 자리이지 축하받으러 가는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김 팀장은 좋은 일인데 왜 숨기느냐며 떡을 주머니에 넣었다.
다른 국장실은 대부분 5층에 모여 있다. 박 국장의 사무실은 9층에 홀로 있었다. 팀장 셋과 서무 주임까지 네 명이 함께 올라갔다. 문 앞에서 국장은 전화를 받으며 나오고 있었다. 순간 멈춰 섰다. 문을 사이에 두고 직급도 위치도 달라진 것 같았다. 그가 손짓으로 들어오라고 했을 때 나는 발을 옮겼다.
문 옆에는 비서가 앉을 책상이 있었다. 그 안쪽 문으로 들어가니 큰 탁자와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뒤쪽 책상 위에는 ‘미래 환경국장’이라는 명패가 놓여 있었다. 나무색 바탕에 금색 글자였다. 예전 명패는 검은 바탕에 은색 글자였다. 서무 주임이 세련됐다고 말했다. 창가 쪽에는 난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리본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이 달려 있었다. 창문으로 따스한 햇살이 들어왔다. 국장실은 아늑했다. 그 아늑함이 나를 편하게 하지는 않았다. 같은 건물인데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축하보다는 먼저 거리감이 느껴졌다.
국장은 나를 보자마자 책을 냈다는 소문이 있던데 대단하다고 말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직원들에게 떡을 돌렸을 뿐이다. 그 짧은 시간에 9층까지 소문이 올라간 것이 신기했다. 김 팀장은 그때 떡을 가져왔다며 국장 앞에 내밀었다. 사무실을 채운 꽃바구니와 난을 보니 손바닥 반만 한 떡 상자가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현재 세무직에서 과장으로 승진한 사람은 두 명 있다. 국장은 그들에게 윗사람을 자주 만나라고 조언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장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질문이 생겼다.
‘국장 승진하려면 윗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 많구나 능력일까, 눈치일까.’ 그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없었다. 노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눈치만으로 버틸 수 있는 자리도 아니었다.
그의 말의 뉘앙스는 일만 잘해서는 국장까지 오를 수 없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물론 윗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그 말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릴 필요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아는 박 국장은 일을 잘하고 말도 능숙하다. 그런데 윗사람과 친해져야 한다는 조언은 듣는 사람의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능력을 어떻게 발휘할지 보다 마음을 어떻게 맞출지를 먼저 고민하게 만든다.
인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았다.
승진은 능력을 인정받는 일이다. 인정은 기분 좋은 일이다. 동시에 더 큰 책임을 요구한다. 그 자리에 맞게 성장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승진보다 글쓰기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느낀다. 승진은 누군가의 선택에 달려 있다.
글쓰기는 다르다. 글은 그저 쓰면 된다. 내 글을 싫어하는 사람은 읽지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말려도 읽을 것이다. 선택은 독자가 한다. 나는 쓰기만 하면 된다.
누군가의 마음에 나를 맞추려 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 마음대로 쓰는 글은 나의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공무원에게 승진은 중요하다. 하지만 승진은 나를 평가받게 만든다. 글쓰기는 나를 설명하게 만든다.
사람들에게 선택받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선택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느라 너무 오래 멈춰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