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버티고 있는 아이의 하루
“엄마, 화장실에서 쥐를 봤어. 나 여기서 못 살 것 같아. 왜 나한테만 안 좋은 일만 생기는 거야. 나 한국 가고 싶어.”
낮에 근무 중인데 딸이 보이스톡으로 전화를 했다.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나도 순간 놀랐다. 나의 어릴 적 기억이 함께 떠올랐다. 자고 있던 방에 쥐가 들어왔다는 말을 잠결에 들었다. 불을 끄면 쥐가 내 얼굴을 지나갈까봐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을 설쳤던 기억이 났다. 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 장면이 겹쳤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말하라고 했다. 방문을 잘 닫고 다니라고 했다. 그 말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밤마다 달가닥거리는 소리에 무서워할 딸을 떠올리니 내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며칠 뒤 딸이 말했다. “엄마, 내가 헛것을 본 걸까?” 나는 네가 본 건 맞을 거라고 했다. 다만 다른 데로 갔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났다. 과자 봉지가 갈아진 사진이 왔다. 이제는 증거까지 생겼다.
사진을 보는 순간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부엌 딸린 단칸방에 살던 시절이다. 세수를 하려고 비누를 찾았다. 비누에 쥐가 갈아먹은 이빨 자국이 선명했다. 그 자국만 봐도 쥐가 비누를 갉아먹는 모습이 떠올랐다. 징그럽고 무서워서 비누갑을 발로 멀찍이 밀었다. 그날은 물로만 세수를 했다. 비누에 깊게 새겨진 이빨 자국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비누가 닳아갈 즈음 또 이빨 자국이 생겼다. 비누를 안 쓸 수 없어서 이빨 자국을 피해 비누를 문질러 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딸에게 갈아진 과자 봉지 사진을 집주인에게 보내라고 했다. 딸은 싫다고 했다. 집주인은 이미 이 집에 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딸은 무서움을 지나 자포자기한 상태처럼 보였다. 가능한 한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다니는 직장에서는 계약 기간이 올해 6월까지라고 했다. 딸은 더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 다니던 병원 진단서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봐 달라고 했다. 몸이 아프면 일을 조금 더 일찍 그만둘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는 한국에 없는 상태라 진단서 발급은 어렵다고 했다.
며칠 뒤 또 카카오톡 문자가 왔다. 신용카드가 해킹돼 정지하고 다시 발급 신청을 했다다. 왜 자기에게만 이런 일들이 계속 생기냐고 했다. 캐나다에 온 이후 편한 날이 없다고 했다.
딸은 2024년 4월, 동기 세 명과 함께 캐나다로 떠났다. 캐나다에서 유아교사가 되겠다고 했다. 그곳에서도 취업은 쉽지 않았다. 집은 두 번이나 옮겼다. 집 열쇠와 유치원 열쇠를 자주 잃어버렸다. 같이 간 동료와 갈등도 있었다. 비자 연장 문제로 한 달을 마음 졸이며 보내기도 했다. 잠잠한 날이 없었다.
딸은 늘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몸이 아프다고 했다. 외롭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이 가장 아팠다. 고생을 해야 성장한다는 말이 있지만, 지켜보는 나로서도 힘든 나날이었다. 당장 돌아오라고 해야 할지, 조금 더 견뎌보라고 해야 할지, 나는 그 사이에서 계속 흔들렸다.
딸이 캐나다를 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한국의 유치원 임용고사 채용 인원이 너무 적었다. 왜 졸업할 때 이런 일이 생기냐고 했다. 나쁜 운이 자기만 따라다닌다고 했다. 캐나다는 좀 다르지 않을까 해서 떠났지만, 나쁜 운은 캐나다까지 따라간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문득 다시 생각했다. 정말 안 좋은 일만 있었을까. 딸의 인생은 정말 하나도 풀리지 않은 걸까. 캐나다에 간 지 1년이 넘었다. 딸은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다. 그 시간 동안 벌어진 모든 일을 딸은 혼자 해결했다. 나는 그 과정을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이미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였기에 해결했고, 그였기에 견뎠다.
나는 딸이 한국에 돌아오면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아질 거라 생각한다. 혼자 밥을 해 먹고, 빨래를 하고, 도시락을 챙기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그 힘이면 한국에서 무엇을 못 하겠는가. 딸의 마음 안에는 분명 이전보다 더 큰 힘이 생겼다.
어제 오후, 딸이 쥐를 잡았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쥐덫에 걸린 생쥐였다. 딸은 막상 쥐를 보니 귀엽다고 했다. 나는 이제 편안해지겠다고 말했다. 딸은 엄마 쥐가 아직 살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제는 쥐와 같이 산다고 생각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빨리 가고 싶다고 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상으로 들어오면 누구나 짜증이 난다. 두렵다. 화가 난다. 나는 늘 딸에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안 좋은 일은 생긴다고 했다.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맞는 말이라, 딸이 오히려 더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전화를 끊으며 딸이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가족이 있어서, 난 한국에 가고 싶은 것 같아.”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딸은 고생한 만큼 분명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