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이 왜 이렇게 어려우니 알게 된 하루
주말에 미희 언니와 정미 언니를 만났다.
두 사람 모두 힘들다고 했다. 미희 언니는 1월 1일 자로 동주민센터 복지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세무직이라 복지 업무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전에는 다른 동주민센터에서 서무주임을 했다. 그때도 일이 많아 매일 야근을 했고 일을 몰라 늘 불안했다고 했다. 팀장을 맡으면 조금 나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새로 발령받은 동주민센터의 동장은 모든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실수가 반복되자 직원들 앞에서 면박을 주었다. 언니는 점점 작아졌고 직원들 눈치까지 보게 되었다고 했다.
그 와중에 자신보다 늦게 승진한 여직원이 세무과 영치팀장으로 발령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니는 왜 자기 인생은 이렇게 힘들게만 굴러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동주민센터에 가서 고생하면 보직을 준다더니 결국 복지팀장이 되었고 이번에는 동장의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했다. 앞으로도 삶이 계속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정미 언니의 이야기도 무거웠다. 집에는 대학생 아들과 딸이 있다. 그중 아들이 학교도 안가고 집에만 있으려고 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부족한 것 없이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은 늘 자신이 모자라고 부족하다고만 말한다고 했다. 아마도 자신이 자식을 잘못 키운 것 같다는 말까지 꺼냈다.
남편 이야기도 나왔다. 자기 몸만 챙기고 집안일이나 아이들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 말에 언니의 지친 얼굴이 오래 남았다.
우리는 오전 11시에 만나 저녁 6시가 넘어서 헤어졌다. 직장 이야기. 가족 이야기. 건강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언니들의 말을 들으며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숫자 하나 제대로 보지 못했냐며 상사에게 면박을 들으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집에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가족에게 ’엄마 언제 와. 저녁 뭐 먹어? ‘라는 말을 매일 듣는다면 숨이 막혔을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이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책을 썼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으니, 뭔가 말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다르게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들은 나에게 조언을 구한 것도 아니고 답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말했다. 그 동장도 집에 가면 자신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할 거라고 했다. 아이들은 컸으니, 밥은 알아서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잠시 떨어져 지내보는 건 어떻겠냐고도 했다. 정미 언니는 나를 멀뚱히 바라보더니 다른 말을 꺼냈다.
후배 하나를 떠올리며 말했다. 일은 잘하는데 근평을 못 받는 것 같아 자기 팀으로 데려와 일을 시켰다고 했다. 조례 개정은 거의 언니 몫이었지만 후배도 가점받고 싶다고 말했다. 언니는 그도 가점받을 수 있도록 기여도를 나누었다고 했다. 그 후배가 승진했는데 고맙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게 서운했다고 했다.
정미 언니는 조용히 말했다. 기획될 때 서운했다고 말해보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해 주었으면 그만이지 왜 꼭 고맙다는 말을 들어야 하나요.”라고 말했다.
그 사람을 밉게만 보면 언니 마음만 괴롭다고 했다. 나는 또 앞서갔다.
정미 언니는 또 말했다. 자기 생일 때 다른 언니들은 커피 쿠폰이라도 보내는데 셋째 언니는 받기만 하지 나에게 해주는 것이 없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가족을 챙기는 언니가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들어주고 피드백을 해주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니들의 마음은 가벼워졌을까.
나는 딸과의 관계를 떠올렸다. 문제가 많았던 이유를 알고 있다. 내가 딸을 가르치려 했기 때문이다. 내가 배우거나 좋다고 생각한 방법을 알려주면 그게 딸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 가르치지 말자고 책까지 써 놓고도 오늘 나는 또 가르치고 있었다.
오늘도 같은 실수를 한 것 같았다. 그러면서 반복적으로 내가 실수하는 이유는 뭔가 생각해 보았다. 나는 대화와 강의를 헷갈리고 있었다. 언니들은 해결책을 원한 게 아니었다. 그저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해도 나는 듣고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나에게 있어 경청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말하지 않는 일이 말을 잘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오늘 다시 알게 되었다.
저녁 8시 줌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 오늘의 경험을 반추하다 보니 질문이 생겼다. 받은 만큼 받지 못했을 때 어떤 마음이 드는지 물었다.
70대 부귀 작가님이 나의 질문에 말했다. “나도 언니들이 많아. 내가 설 명절로 선물을 보냈지요, 젊었을 때는 그게 참 서운하더라고. 지금은 언니들이 나이가 많잖아. 내가 챙기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하고 말했다.
중학생 현우에게도 물었다. “현우야 자기 것 주지 않고 현우 과자만 얻어먹는 친구가 있으면 어떨 것 같아?”라고 물었다. 현우는 그 친구와 놀지 않겠다고 했다.
베푼 만크면 받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인간이 가지는 본능처럼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빠서 아니라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누군가는 인색한 사람이 되기 싫어서 베푸는 것일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몰라서 베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삶의 지혜는 누가 알려줘서가 아니라 살아가며 직접 겪고 느끼며 알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