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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Jun 30. 2023

Herstories,

다시 만난 코리안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삶이야기

디아스포라Diaspora는 특정민족이 자의적으로나 타의에 의해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 또 그렇게 형성된 집단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이 책은 멀게는 구한말부터 일제치하, 해방 후 냉전기, 구소련 해체와 개방 이후, 가깝게는 구 소련 국가들과의 관계 정상화 이후까지 중국과 사할린, 중앙아시아의 구소련 국가들, 일본 등에 형성된 디아스포라에서 용감하고 끈질기게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간 조선인(해방 후 남북으로 나뉘기 전의 한민족의 통칭으로 표현함) 여성들의 이야기 그리고 목숨을 걸고 탈북해서 남한에 정착한 탈북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북한과 중국, 사할린, 일본,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에서 살았거나 살고 있는 12명의 여성들의 삶이야기가 들어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어떤 영화나 소설 보다 더 극적이고 감동적이다.

또한 지난 역사의 격동시기에 국가의 마땅한 보호를 받지 못했던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수난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국가 차원에서 혹은 공동체 차원에서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다시 묻고 성찰하게 만든다.


이 책에 실린 삶이야기는 <사단법인 조각보: 공동대표:김숙임,김영임,장올가>라는 단체에서 10여 년 동안 진행한 <코리안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삶이야기>라는 대화모임에 참석한 여성들이 스스로 발표한 이야기 중 일부를 추려 정리한 것이다.

2012년부터 시작해 10년 동안 한 기에 6명씩 1년에 3-4회 진행해서 약 200명 정도가 참가했다.

처음 여섯 기는 <남과 북 여성의 삶이야기>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후 중국과 사할린 등에 살고 있는 동포여성들도 민족의 정체성을 이루는 일부이며 평화적 통일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7기부터는 <다시 만난 코리안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삶이야기>로 확장되어 이들 지역의 여성동포들도 참여하게 되었다.


<조각보>는 2011년 창립된 단체로 창립자인 김숙임 현 공동대표겸 이사장은 오랫동안 한국의 여성운동과 평화운동, 통일운동에 헌신한 분이다. 그래서 그가 한국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속한 탈북여성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자활을 돕기 위한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 것이다. 또 김숙임 선생이 지원활동을 하면서 단지 구호사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성들의 주체적인 삶을 세우고 평화적인 통일운동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채우는 활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도 선생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성찰이 있기에 가능한 것인 것 같다.

이념과 체제를 둘러싼 통일운동의 흐름과 논쟁의 한계, 서로 다른 체제에서 이미 두 세대가 넘게 살아오면서 형성된 남북 동포들의 이질적 정서와 가치관의 충돌을 보며 다른 차원의 평화적 통일운동의 필요를 느꼈다고 한다. 


<조각보>가 실천한 <삶이야기 운동>은 독일 사민당 산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에서 실시한 <생애사 대화Autography Converation 프로그램>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동독과 서독 주민 각 10명씩이 한 장소에 모여 2박 3일 동안 자신들의 삶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점교환Perspective Change'이다. 

통일 후 독일이 당면한 문제들-동 서 주민들 간의 갈등, 차별, 반동화 과정-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서로 다른 사회에서 살면서 형성된 가치관, 성격 등을 삶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한다.

사실 '시점교환'이라는 개념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고 영어로는 'Be in my shoes'라는 표현이 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브라이언 헤라는 타인종, 종교, 소수자들에 대한 증오, 사회적 편견을 제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백신은 직접적인 만남과 대화를 통해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비록 <삶이야기 운동>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더라도 간접적으로나마 이제는 한국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 이주민들의 처지에 대해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조각보>에서 '삶이야기'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의 원칙은 '편견극복', '경청하기', '역사수업'의 세 가지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때 끼어들지 않기, 논쟁하지 않기 등이다. 이 원칙은 남북 남성 참가자들과 함께 했던 첫 시험 프로그램에서 무참히 깨졌다고 한다. 참가자들끼리 이념논쟁으로 번졌고 무엇보다 남자들은 개인사나 가정사들을 얘기하지 않고 정치적 사건들 중심으로 얘기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역사수업'은 참가자들의 삶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필수과정으로 중국과 사할린, 중앙아시아 동포들이 참여하면서 그 중요성이 더해져 갔다고 한다. 

이들은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살아남았고 개혁 개방의 시기, 그 변화를 몸소 체험했으며 남한에 들어와 남한 사회의 빛과 어둠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1세대가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무국적자로 남았던 사람들의 2세들은 그 사회에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따라서 이들의 경험과 관점,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과 바람은 보다 나은 사회, 보다 인간적인 세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청할 가치가 있다.


여기, 몇 분의 이야기 중 한 조각들을 전한다.


배안젤라씨는 사할린에 사는 동포이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아니바시가 전남 보성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는 무국적자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이 싫어서 러시아인이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로부터 "너는 피가 

'까레이스키'이기 때문에 '로스키'는 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에 나와 식당에서 일할 때는 그 핏줄이 부정당하고 멸시당하는 경험을 했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DNA 코드가 한민족임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아리랑 노래를 할 때, 사물놀이를 할 때 뛰는 심장이 그렇다고 한다.

그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랜 세월 바다 앞에 서서 고향 가는 배가 오기를 기다리던 모습을 기억한다.

한국에서 방문한 사람들에게 그 바닷가에 있는 망향동상을 설명해 주면 그 사람들은 그저 옛날 얘기, 지나간 역사라고 치부해 버린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건 남의 얘기, 그냥 역사가 아니라 자신의 가족사이며 지금도 안고 사는 아픔이다.

그 바닷가에서 배를 타고 나올 때마다 자신의 얼굴을 스치는 바람과 바닷소리가 50년 전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을 매만졌을 똑같은 바람, 똑같은 바닷소리라는 생각에 눈물짓는다고 한다.

그녀는 사할린 한인회에서 일하는데 전남 보성의 학생들을 사할린에 초청해 그곳 학생들과 교류하는 프로그램도 한다.

그녀는 이 아이들이 서로 친해지고 인스타도 주고받고 하는 것을 보면서 이 프로그램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 이 아이들이 나이 들면 서로서로 전쟁도 막고 그럴 수 있는 관계가 될 거라고 희망한다.

그녀가 진짜 마음 아픈 것은 1세대가 거의 다 한국으로 이주해 갔지만 2세들은 사할린에 남아야 하는 현실이다. 2세대들은 또 자녀가 있기 때문에 러시아로도 들어갈 수가 없다. 2세대들도 이제 나이를 많이 먹었는데 한국에서도 사할린 한인회에서도 정작 2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사할린 동포는 일제 강점기에 강제징용노동자 등으로 이주했다가 2차 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국적을 

       박탈하고 그곳에 남겨둔 채 철수한 탓에 무국적자로 남게 된 사람들이다.

       사할린 동포들은 전쟁이 끝날 무렵 일본으로 재징용을 당해 가기도 했고, 스탈린 시대에는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하거나 일본의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박해를 당하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50년대 중반 사할린 동포에게 북한 국적을 부여했으나 소련은 이들 역시 외국인이라고 

       해서 모스크바 대학 등 보다 나은 교육기관에 입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남한은 사할린이 소련의 영토였기 때문에 동포들을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사할린 고려인들에게 소련국적 취득이 허락된 것은 1976년이다.

       30년 한 세대를 나라 없는 백성으로 살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음식과 문화를 지키고

       자녀들에게 최대한의 고등교육을 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사할린 동포의 영주귀국사업은 1994년 한-일 정부 간 합의로 시작되어 양국 적십자 간 협정을 통해 

       인도주의 사업으로 진행하다가 2016년부터 비로소 국가의 책무로 설정되고 한국정부 단독으로

       진행하기에 이른다. 

       30년 동안 4408명(2021)이 영주귀국했다. 2020년 제정된 사할린동포법안에 의해 

       그동안 1세대와 배우자, 장애인 자녀로 한정되었던 자격이 직계비속 1인과 배우자로 확대되었으나

       여전히 또 다른 형태의 이산가족을 만들고 있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


장올가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고 2001년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들어왔다.

소련에서 태어났으나 1991년 소련이 15개 나라로 해체되어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에 살게 되었다.

살던 곳이 우즈베키스탄이 되자 러시아말만 알고 우즈베키스탄 말을 모르는 고려인들은 러시아로 많이 이주했는데 올가 씨는 어머니가 우즈베크 말을 알아서 그냥 남았다고 한다.

외모가 다르니까 항상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갖고 살았는데 할머니가 타슈켄트 지방의 고려인 거주지에 살아서 그 집에 가면 모두 비슷하게 생겨서 편안하고 좋았다고 한다. 

할머니 댁은 올가 씨가 온돌과 고구마, 간장, 된장등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곳이다. 더불어 아들 손자에 대한 편애도 처음 경험한 곳이다.

국가 간 교류가 이뤄지면서 교포 청소년들을 초청하는 프로그램에 신청해서 1998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한국에서 유학할 길을 찾다가 아는 사람 소개로 한국 남자와 결혼하게 되어 2001년 한국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러시아에 양파 농사를 지으러 갔는데 딸의 결혼 소식을 듣고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한국에 와서 다문화센터에 다니며 여러 가지 강의도 듣고 비슷한 처지의 이주민들을 만나며 친분도 쌓고 나름 잘 살고 있다.

그녀를 아프게 하는 것은 결혼 이주민들을 보는 주변의 시선이다. 

  ' 너희는 돈 주고 사 왔어.'

심지어 이주민과의 간담회에서 어떤 정치인에게 우리나라에 와서 애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렇게 표현한다.

   '외국인 같은데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 같은데 한국인이 아닌'

소련에서도 그랬고 우즈베키스탄에서도 그랬고 지금 한국에서도 그렇다.

그녀의 정체성-그녀의 고향은 어릴 적 행복하게 놀던 할머니집이다.


김세연 씨는 재일교포 출신이다.

아버지가 조총련계 일을 했고 중학교까지 조총련계 학교에 다녔다.

그 무렵 일본사회에서 조총련게 여학생들의 교복치마에 대한 칼질 테러가 있었다.

학교 분위기는 어수선하고 논쟁적이고 불편했다고 한다.

1997년 북한에 수학여행을 가서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는 것을 목격하고 돌아와 일본 사회의 풍요와 낭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미국으로 유학을 하면서 미술 쪽에 재능을 발견하고 캘리포니아에서 대학 영상영화과에 입학한다.

작품이 인정을 받고 초대도 되었지만 북한 국적으로는 국제적인 활동이 어려워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일본예술대학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했고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Hate Speech'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었다. 

박사과정 2학년 때 서울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 주변에서 '조총련 아가씨'라고 자신에 대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고 한다. 

      

         어디서 들었는지 "조총련 학교에 다녔냐?", "한복 입고 다녔냐?" 등 여러 가지 질문을 해왔어요.

         대답을 안 하자 더 이상 안 물어봤는데 소문거리가 된 거 같아요.

         한국에서는 '조총련 아가씨'라고 놀림을 받았던 적이 여러 번 있어요.

         일본에서 내 나라에 들어간다는 마음으로 기쁘게 한국에 왔는데 또 다른 차별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미국에서 유학할 때 한국인 식당에서 알바를 했는데 한국인들이 자신을 한국말을 잘 못한다고 멸시하고, 엄청난 중노동을 시키고, 같이 일하는 버스 보이Bus Boy라고 불리는 멕시코인들을 차별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에선 조선사람은 차별받는 존재라고 알고 있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대놓고 멕시코 사람들을 

         무시하고 괴롭히고 착취하고... 그런 모습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그녀는 목숨을 걸고 탈북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차별받은 자신의 경험으로 차별받는 존재를 달래는 예술을 하고 싶다고 한다.

  

           제가 하고 싶은 예술은 영혼을 달래는,....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 그리고 억울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는 예술을 하고 싶어요. 서로서로가 친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조금 더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치유가 되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운 조건에서 작업을 하며 마음도 예술도 지쳐갈 때 한국사람들에게서 "너도 어려운데 뭘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고 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이 하는 작업을 이해해 주고 좋다고 하는 사람은 <조각보>의 김숙임선생님 한분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한국에서 살며 만든 작품이 7년이 지나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인정을 받아 어떤 문화예술재단의 2회 수상자로 지명되어 지원금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의 예술계가 사회적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열리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가진다고 한다.


<삶이야기 운동>은 한번 모여서 이야기하고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졸업생 모임도 갖고 참가한 여성들이 다음 참가자를 연결하며 이제는 국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운동이 발전하고 있다.

<삶이야기 운동>은 '여성과 남성의 삶이야기 운동'이 될 수도 있으며 '진보와 보수의 삶이야기 운동'이 될 수도 있다. 사회적 갈등이 폭력적 방법이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한국사회 다층적인 차원에서 대화와 이해의 노력이 절실한데 묵묵히 꾸준히 그 일을 해오고 있는 <조각보> 같은 단체가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각보>의 김숙임선생은 동포여성들과 직접 만나 삶이야기를 나누면서 발견한 국가적, 사회적 의제들을 정책화해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책임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일본과 중국, 사할린과 중앙아시아에서 동포들이 겪은 방치와 차별, 정치적 수난과 지독한 혐오로 인해 입은 상처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그로 인한 자신의 정체성, 민족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뿌리가 깊다. '삶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동포들의 현실과 국내이주동포여성들의 목소리를 모아 사회화해야 할 책임이 한민족의 후손 모두에게 있다고 한다.

그는 <삶이야기 운동>을 이끌어 온 힘은 동포여성들의 뛰어난 감지능력, 센서Sensor의 덕이라고 한다. 그들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스스로 조직하고 연결하며 운동의 확대를 이끌었다고 한다.

또한 말만 번지르한 어떤 사람들과 달리 "말이 찬란하지 않고 오히려 어눌할 때도 있지만, 늘 겸손하고 늘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모습에서 그분들의 진정성을 느낀다"라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가자와 진행자 모두가 보여준 정성과 환대가 서로를 더욱 존중하고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정성이 세상을 움직인다 [중용 23장]

모든 일이 그렇듯이 운동도 그렇게 해야 하며, 정성을 다하면 사람이 변하고, 세상이 변한다는 신념으로 이 운동을 계속한다고 한다. 


최근에 어느 기사에서 국민의 힘이 영주권자의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는 내용을 보았다.

영주권자의 지방선거 투표권을 제한해야 하는데 그 이유로 중국이 중국거주 우리 국민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기 때문에 호혜주의 원칙에 따라 우리도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주권자들 중에서도 중국계를 딱 꼬집어서 그들에게 투표권을 주면 중국이 내정간섭할 힘을 주게 될 것이라고 얘기하는 어느 정치인의 천박하고 얄팍한 계산에 낮이 뜨거워진다.

중국이 일당 독재 국가라는 점에서 한국이 그 나라를 따라가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영주권자를 바라보는 국민의힘 관계자들의 왜곡된 시각이다.


2022년 법무부 외국인등록 자료에 의하면 외국국적동포가 59.6%로 가장 많다.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상 '외국국국적동포'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전 국외로 이주한 동포를 포함해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나 그 직계비속으로 외국국적을 취득했던 자를 뜻한다. 

일본, 중국, 사할린,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다가 영구귀국한 동포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대다수이다.

두 번째로 많은 유형은 외국국적을 가진 한국국민의 배우자와 그 자녀들로 18.4%를 차지하며, 오래전 대만이나 중국본토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화교들이 5.4%를 차지한다. 

즉 영주권자의 83.4%가 한국과 뿌리 깊은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며 낯선 외국인 이주민이 아니다.

그나마도 한국은 영주권을 취득한 지 3년이 지나야만 지방선거에 한해 투표권을 준다.

정동재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2021년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전 세계 30개국 이상이 자국의 선거법을 개정해 지역에 거주하는 이민자들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에 장기체류하는 외국인들에게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민주주의 시스템에 참여와 소통이라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주민들에게도 정체성과 소속감을 형성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영주권을 얻어 살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우리 역사의 조각들이다.

또한 한국사회의 눈부신 발전과 경제적 부흥이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구성하는 조각들이기도 하다.

이 하나하나의 조각도 모두 조화롭게 제자리를 찾아 맞춰져야 비로소 아름다운 조각보는 완성되고 쓸모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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