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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Aug 05. 2023

암흑의 숲 - 지구의 과거 시리즈 2부

          침략과 방어의 논리

이 책은 중국 공상과학소설의 수준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 놓은 류츠신 작가가 쓴 ‘삼체’라는 3부작 소설의 두번째 책이다.

류츠신은 자신이 과학소설을 쓰게 된 계기로 자신의 특수한 능력을 꼽았다. 즉 자신은 과학적 혹은 수학적 공식이나 추상적 개념을 실재처럼 인식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공식을 상상력을 발휘해 실체화하고 묘사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하였다.

또 하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홀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 어두움과 무한한 공간에 대해 느낀 경이로움 못지않게 ‘홀로 있음’을 인식하는 존재의 궁극적 외로움, 두려움 등을 느꼈다고 한다. 사람들이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낭만과 경이로움을 얘기하고 어딘가에 있을 우주의 다른 문명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을 얘기할 때 그는 무한한 우주에서 한 조각 먼지 보다 작은 존재의 외로움과 무력함, 우주의 어딘가에 존재할 지도 모르는 다른 문명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구인들이 과거에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면서 침략군이 되어 원주민들을 말살하고 그들의 땅을 점령하고 그들의 문명을 지워버린 것을 예로 들며 이제 인간들 사이의 이런 행위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지구 대항해 시대’가 끝난 지 오래고 '우주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있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는 지구인은 하나로 통합되어 언제 만나게 될지 모르는 다른 외계인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우주관은 지구인끼리의 생존경쟁을 우주로 확장한 셈이다.


1부에서는 삼체인이라는 외계문명이 지구를 침략하기 위한 주도면밀한 계획을 실행하고 있음을 지구인들이 알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이에 지구인은 삼체인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면벽자 프로그램>을 가동시키고 네 명의 '면벽자'를 선정한다. 면벽자라는 명칭은 벽을 바라 보고 앉아서 명상을 하는 선자들을 연상시킨다. 이 중 세명이 선택하는 전술들은 인류의 가까운 역사 속의 사건들을 연상시킨다. 이를테면 한 면벽자는 수많은 소형 공습기를 양산해서 삼체인의 함대를 공격하는 ‘모기떼의 공습’ 작전을 기획한다. 또 다른 면벽자는 거대한 우주함대를 폭발시킬 수 있는 가공할 만한 위력의 폭탄을 개발하고 생산하고자 한다. 또 다른 면벽자는 인간의 기술발전을 최대한 촉진하기 위해 인간의 두뇌를 연구하고 그 두뇌의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두뇌신경 조작기술 개발에 집중한다.


인류 보다 월등한 기술력을 가진 삼체인은 인류의 모든 대화, 통신, 연구 자료를 탐지하고 무력화 할 수 있다. 인류의 기초과학 연구능력을 일정 수준 이상은 진전할 수 없게 묶어 놓기까지 했다. 삼체인에게는 단 하나의 약점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속 마음은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기만할 수 있는 능력’이 인류가 가진 유일한 무기이다. 이 무기의 힘을 확실히 사용하기 위해 면벽자들에게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특권을 부여한다. 또 면벽자들은 지구의 모든 자원을 무제한 사용할 수도 있고 인류를 해치는 행위만 아니면 어떤 계획에도 면책특권을 가진다. 이런 막강한 권력을 가진 네 사람이 선택한 전술의 내용은 앞에서 얘기한 대로 근 현대 역사의 여러 사건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모든 면벽자들의 계획에는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숨겨진 다른 계획이 있다. 그리고 삼체인은 이 숨겨진 계획을 탐지해 무력화하기 위한 <파괴자 프로젝트>를 가동시킨다. 면벽자들의 숨은 계획들은 현재 인류가 처한 상황을 둘러싼 많은 윤리적, 정치적 논쟁점 들을 연상시키며, 또한 이 면벽자들이 맞이하는 운명 역시 상당한 시사점이 있다.


네번째 면벽자 뤄지는 삼체 시리즈 두번째 책인 ‘암흑의 숲’의 주인공 격이다. 그는 시리즈 첫 책에서 인류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우주로 전파를 쏘아 올린 예웬지 박사가 죽기 얼마 전에 찾아 와 ‘우주사회학’을 연구하라는 제안과 함께 우주사회학의 대명제 두 개와 기본규칙 두 개를 힌트로 주고 간 사람이다. 그는 면벽자로 선정되자 그 책임을 거부하지만 통하지 않자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하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가족을 볼모로 위협당하자 면벽자 역할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하게 된다.


‘암흑의 숲’이론은 뤄지가 우주사회학의 연구 끝에 도달한 결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론이다.

뤄지에 의하면 우주는 암흑의 숲과 같다. 우주의 문명체들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숲에서 총을 든 사냥꾼과 같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숲에서 자신 외의 다른 존재의 기척을 느끼자 사냥꾼은 생각한다. 저 존재는 우호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위협적 존재인가? 내가 선한 의지를 갖고 있고 상대방도 그렇다면 공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답은 ‘아니다’이다. 즉 그가 선하다고 해도 그가 나를 악하다고 의심하면 어쩌지? 또 그가 선하고 나도 선하지만 그가 나를 악하다고 의심할 거라고 내가 의심할 거라고 그가 의심하면 어쩌지? 의심에 의심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 ‘의심의 연쇄고리’가 암흑의 숲과 같은 우주에서 인류의 멸망을 막고자 하는 뤄지의 방법의 기초가 된다. 지구를 방어할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뤄지의 우주사회학은 두 가지의 기본 명제를 가지고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모든 문명은 팽창을 지향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주의 물질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뤄지의 이론에 의하면, 즉 한정된 물질을 놓고 서로 팽창을 지향하는 문명들이 미지의 문명이 존재함을 알아 차렸을 때 우주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일은 암흑의 숲에서 사냥꾼이 맞이하는 것과 같은 운명이다. 즉 ‘상대방을 파괴하지 않으면 내가 살아남을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에 먼저 도달한 문명에 의해 다른 문명이 파괴되는 것이다.

평화공존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의심의 연쇄고리’ 못지않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것은 뤄지의 우주사회학의 또 다른 규칙인 ‘기술의 발전은 폭발적이다’라는 것이다. 현재는 미개한 수준의 문명이라 해도 그들이 외계 다른 문명의 존재를 인식한 순간 미지의 문명에 대한 두려움이 폭발적 기술력의 발전을 이끌어 내어 언젠가는 선진 문명을 파괴할 정도의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논리다. 따라서 미개한 문명 조차도 철저히 절멸시켜야만 미래의 내 문명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

뤄지의 우주 사회학에 의하면 결국 우주의 문명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모든 상대를 죽여야만 한다. 그는 이 깨달음에 따라 우주로 마법이 담긴 ‘저주’를 쏘아 올리고 약 200년 후 삼체인이 지구에 가까이 올 때까지 동면에 들어간다. 그가 쏘아 올린 이 마법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독자들도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알게 된다. 그러나 삼체인은 이미 그의 마법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하는데 그 수비벽을 뚫기 위한 뤄지의 마지막 승부수는 무엇이 될까? 과연 그것은 성공할 것인가? 끝까지 자신이 전혀 원하지 않고 동의하지 않았던 면벽자의 굴레를 거부하고 상상 속의 이상형 여인을 만나 딸과 행복하게 살다 인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함께 받아들이고 싶어 했던 뤄지가 면벽자로서의 의무를 시행하게 되는 계기, 또 인류에게 이용당할 만큼 이용당하고 버려진 그가 마지막으로 하는 선택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만 하다.


어때요? 우주를 암흑의 숲으로 상징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규칙들을 제시하는 류츠신의 세계관에 동의하나요?

사실 우리가 매일 접한 뉴스를 조금만 뜯어보면 국제관계나 정치적 세력, 기업 간의 세력 다툼 뿐만 아니라 우리의 학교, 직장 등 소소한 일상생활 속에서도 얼마나 이런 논리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진화의 법칙으로 배우고 사회생활에서 진리처럼 따르는 ‘적자생존의 논리’가 과연 인류 역사와 과학이 도달한 바른 결론일까? 이 책의 마지막에서 뤄지와 외계인이 나누는 대화가 나오는데 그는 지구에서 쏜 첫 우주전파를 접하고 지구에 위험을 알리는 경고의 답장을 보낸 ‘선한 삼체인’이다. 그는 남몰래 지구인의 문명을 동경한 삼체인이다. 외계인이 묻는다. 인류는 의심의 연쇄고리 규칙을 훨씬 일찍 알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늦어졌는가? 뤄지가 대답한다. ‘사랑’때문이라고. 그러자 삼체인이 말한다. 우리에게도 사랑의 씨앗은 있는데 가혹한 현실이 발아를 막고 있다고. 언젠가 그 씨앗이 꽃피우길 바란다고. 수수께끼 같은 말이다. 류츠신은 굳이 왜 이 장면을 넣었을까? 그의 세계관에 의하면 사랑은 지구를 위험에 빠트린 그야말로 순진한 감정인데. 그냥 좀 멋있는 마무리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궁금했다.


미지의 세계,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생존본능기제 중의 하나일 것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미지의 존재에 두려움을 갖고 탐색하고 방어자세를 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 생존을 위한 방어본능이 거기에 그치지 않고 타자에 대한 선제적 공격을 하거나, 단순한 제압에 그치지 않고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말살시키는 조직적 집단적 행위로까지 나아가는 것은 적어도 지구의 역사에서는 인간 만이 보여준 특성인 것 같다. 무엇이 인간을 그런 존재로 만드는가? 또 ‘우주 대항해 시대’에 우주문명들 사이의 생존을 건 대투쟁은 필연적인 것인가? 그렇다면 ‘지구 대항해 시대’에 지구의 문명들 간의 잔인한 전쟁도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살아 있는 존재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 그 중 가장 강한 자 만이 살아 남는다는 다윈의(사실은 허버트 스펜서의 말이다) ‘적자생존론’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인가? 암흑의 숲 이론에서 저자는 약간의 자기모순(이제 지구인 끼리는 하나다)이 있지만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사실 이제 지구인이 하나라는 논리는 한 단계 더 들여다 보면 모순이 아니다. 과거의 '우리편'이 내 나라, 내 민족에서 지구인 전체로 확대되고 '적'이 우주공간으로 확장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저자의 세계관이 2부 ‘암흑의 숲’에서 더 명확하게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얘기하고 싶은 장면이 하나 더 있는데 삼체인의 공격으로 지구에 귀환하지 못하고 우주에서 떠돌게 된 지구 우주함대 다섯 대 사이에 상대방의 식량과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난다. 뤄지의 분석대로 ‘의심의 연쇄고리’ 법칙에 의하면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예정된 전쟁이다. 그런데 이미 지구함대끼리의 싸움을 예견하고 그 순간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함대의 선장 베이가 찰나의 순간 인간에 대한 연민에 사로잡혀 버튼을 누르는 것을 망설이는 바람에 먼저 당하고 만다. 그는 처음부터 망명주의자 였지만 함대의 지휘권을 얻기 위해 저항주의자인척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엘리트 군인이다. 그는 인류문명을 존속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삼체인의 공격을 피해 함대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고 새로운 정착지를 찾는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사실 누가 살아남든 살아남는 존재가 있으면 그것으로 인류문명을 존속시키고자 했던 그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다. 이때 베이의 ‘나’는 ‘우리 함대’를 넘어 ‘인류’로 확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류츠신은 이 장면을 그저 적자생존의 엄혹한 법칙을 보여주기 위해 넣었을까? 인간은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을 때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일까? 사실 그런 가능성이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실제 사건에서도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위험을 무릅쓴 얘기들을 종종 듣거나 본다. 이런 사례들에서 적자생존의 법칙이 작동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나, 혹은 우리의 개념을 얼마나 확장 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삼체인이 가동시킨 파괴자 프로젝트에 의해 다른 면벽자들의 모든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고, 본함대에 앞서 도착한 삼체인의 선발대는 소폰이라는 가공할 무기로 지구의 방어함대를 거의 궤멸시킨다. 이제 남은 것은 일시적인 평화공존 체제를 이룩한 뤄지의 계획이 과연 언제까지 삼체인의 지구 공격과 상륙을 막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 얘기가 3부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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