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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Jul 29. 2023

삼체문제_지구의 과거 시리즈 1부

       외계 세력의 위협

중국의 대표적인 공상과학 소설가 류츠신의 과학적 지식과 문학적 상상력이 눈부시게 펼쳐진 삼부작 소설의 1부이다.  무덥고 긴 여름밤, 시간을 잊게 해 줄 만한 책으로 이만한 작품이 없을 것 같다.

류츠신은 원래 엔지니어 출신인데 어느 날 밤에 도박으로 돈을 잃은 후 밤에 돈을 버는 일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소설을 써 보았는데 반응이 좋아서 계속 그 일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읽었다. 천재적인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그의 소설을 보면 엔지니어이지만 인문학적 소양도 상당히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글을 쓸 만한 준비가 되어 있었던 사람이라고나 할까. 어느 날 갑자기 천재성이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지 싶다.  

나는 거의 모든 분야의 책에 관심이 있지만, 픽션 중에서는 로맨스 종류보다는 SF소설이나 탐정소설류를 더 좋아하는 편이다. 잘 쓴 SF소설은 대하 역사소설 못지않은 서사가 있고 등장인물들에 대한 깊은 심리적, 정서적 통찰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 역시 역사소설을 읽는 것 같은 대서사가 몇 백 년에 걸쳐 펼쳐진다. 그 과정에서 중국을 주 무대로 하면서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주요 인물들의 인생행로에 영향을 미치고 또 그들의 선택이 인류의 운명을 결정짓는 역동적인 서사가 펼쳐진다. 또한 이 소설에서는 현대 사회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주는 사회. 정치적 논리와 쟁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1부는 여러 과학자들의 수상한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파헤쳐가는 과정으로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삼체인이라는 외계문명의 존재를 지구인이 인식하고 지구에서 일어나는 여러 기이한 사건을 통해 이 외계존재의 위험성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다.


세 개의 태양이 빚어낸 가혹한 자연 현상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삼체인들이 자신들의 행성이 결국 폭발을 피할 수 없으며 그날이 머지않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들은 우주의 다른 태양계에서 살 만한 행성을 찾는 중, 지구에서 우주에 쏘아 올린 전파를 탐지하고 지구를 이주 대상 지역으로 삼아 침략 계획을 면밀하게 세운다.

지구에서는 ETO(The Earth-Trisolaris Organization)라는 조직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삼체인을 지구로 받아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지구인들이 만든 일종의 하수인 조직이다. 지구인의 입장에서 보면 배신자 집단인 셈이다. 이 조직의 명목 상의 수장은 예웬지라는 천재적인 여자 물리학자이다. 이 사람이 ‘Red Coast Base’ 라는 중국의 우주 전파탐색 기지에서 삼체인이 보낸 전파를 처음 수신한다.


예웬지는 중국의 유명한 과학자의 딸이었지만 문화혁명기에 어머니의 배신과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하면서 인간에 대한 깊은 배신감과 상처를 갖게 된다. 그녀 자신도 거의 유배지나 다름없는 깊은 산속의 우주전파탐지 기지에서 근무하도록 명령받는다. 그곳에서 조금씩 삶의 희망을 찾아가던 중 가장 신뢰했던 사람으로부터 또 한 번 배신을 당한다.

그녀가 이런 절망의 한가운데서 받은 외계인의 전파는 응답을 하면 지구가 멸망당할 터이니 절대 응답하면 안 된다는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웬지는 지구의 위치를 알리는 답신 전파를 삼체인에게 보낸다. 그가 왜 지구를 배신하고 삼체문명을 끌어들여 인류를 위험에 빠트렸는지 그 역사적, 개인적 과정을 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롭다.


지구를 배신하고 삼체인을 위해 활동하는 ETO에 가입하는 지구인은 세 부류로 구분한다.

첫째는 ‘종말론자(Adventist)’들이다. 이들은 인류가 지구별과 인간 사회에 끼친 해악들을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린 사람들이다. 교수, 학자, 환경운동가 등 엘리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이끄는 실질적인 지도자는 에반스라는 사람인데 그는 석유재벌 집안 출신으로 지구의 멸종위기 생물들을 살리기 위해 생물학을 공부하고 후에 ‘범-생명 평등주의자(pan-species communism)’가 되지만 자신의 헌신적인 노력을 끊임없이 배신하는 인간들의 행위에 완전히 절망한다. 그런 그에게 예웬지가 외계의 선진문명의 도움을 얻어 인류문명을 개혁하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얘기한다. 자신이 상속한 막대한 재력으로 ‘제2의 Red Coast Base’를 건설하고 삼체문명의 실재를 확인한 에반스는 예웬지를 제치고 삼체인들과의 통신을 독점해 왜곡되고 선별된 정보만을 조직에 전달한다. 이들은 인류는 개조할 수 없는 악한 존재, 욕망에 휘둘려 어떤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 이기적 존재이기 때문에 멸망 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ETO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부류는 ‘구원론자(redemptionist)’들이다. 이들은 삼체인의 발전된 과학기술에 의해 교묘하게 조작된 초자연적 현상들을 ‘기적’이라 보고 삼체문명을 종교적으로 숭배하게 된 집단이다. 이처럼 고도의 과학문명을 가지고 있다면 윤리적으로도 그만큼 높은 수준에 도달한 문명일 것이라고 믿고 그들의 인도에 따라 인류문명도 보다 높은 수준으로 개조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 두 그룹이 주로 조직을 이끌어 가고 세 번째 부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기회주의자 혹은 생존주의자(survivalist)들이다. 이들은 삼체인이 지구를 멸망시킬 때 자신들의 후손들만은 구제받을 수 있게 하려고 조직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살면서 대부분 크든 작든 인간에 대한 실망과 배신을 경험하게 된다. 거의 절망에 이를 정도로 깊은 실망, 배신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헤어 나올 수 없는 우울감 속에 살았던 사람들을 보거나 듣기도 했을 것이다. 종교에 기대어 절망을 극복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끝내 절망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행동을 하고 마는 사람들도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조절되지 못한 욕망이나 배신, 증오등이 집단적 린치나 광기 어린 공격성으로 표출되어 피로 얼룩진 역사를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그런 행위들이 결국 지구멸망-인류의 멸종 위기를 불러왔다는 설정인데 여러분은 어떤가요? 그럴듯한가요?


이런 서사를 담고 있으며 철학적 윤리적 논쟁거리도 제공하지만 이 책은 엄청난 과학이론과 과학적 상상력을 펼쳐 보이는 거의 전대미문의 하드코어 과학소설이다. 지구별과 몇 개의 우주공간을 넘어야 도달할 수 있는 삼체별 사이의 전파 통신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삼체별에 뜨는 세 개의 태양이 불러오는 치명적인 재해들을 극복하기 위해 수없이 되풀이되는 삼체문명의 끈질긴 노력, 그 과정에서 이룩한 과학적 발견과 발전의 결과물들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이 책을 명실상부한 과학소설로 인정받게 한다. 특히 실제 공간에서 세 물질의 상호운동에 대한 규칙을 정리하기 위한 물리학계의 역사적 노력들을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삼체인들이 자신들의 행성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지구인과 삼체인 문명이 각기 그들이 속한 자연환경의 영향 아래 서로 아주 다르게 발전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설명한다. 지구는 하나의 태양 덕분에 온화하고 예측 가능하며 단절되지 않는 문명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문학과 음악, 미술 등의 예술과 철학, 다양한 학문적 발전을 꽃피웠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권리나 욕망, 감정, 사랑,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심성 등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문명을 만들었다. 특히 단절이 거의 없는 과학의 지속적 발전이 축적된 결과 시간이 흐를수록 인류의 과학의 발전은 가속도가 붙어 머지않은 미래에 삼체문명의 과학의 수준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

반면 삼체문명에서는 개인은 오직 전체문명의 생존을 위해서만 의미가 있는 존재이다. 문학이나 예술 등은 오래전에 쇠퇴했고 아름다움이나 사랑, 존재의 의미 같은 철학적 질문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각박하고 전체주의적인 사회로 묘사된다. 극단적인 예가 부부가 되고 자손을 생산하는 과정 자체가 그저 두 성체가 하나로 합체되었다가 네 개의 성체로 분리되는 형태로 묘사된다. 가족이라는 집단 안에서 개개인이 서로의 사랑에 의해 결속되는 경험이 없는 단순한 생물학적 결합과 성체분열로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이기 때문에 개인은 그저 집단을 구성하는 한 부분일 뿐이다. 또한 세 개의 태양의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에 의해 끊임없이 파괴되는 문명의 폐허 위에서 매번 다시 출발해야 했던 삼체문명은 재앙의 규모와 정도가 심해짐에 따라 과학발전의 정체 혹은 퇴락을 예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래서 세 태양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이를 통제하고자 ‘세 물질의 공간에서의 운동법칙 문제(Three body problem) ‘를 푸는데 그들의 모든 자원을 쏟아붓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삶의 질, 다른 문화적 발전은 모두 희생해야 했다. 그러나 결국 규칙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과 함께 세 태양이 일렬로 서는 시기가 되면 엄청난 중력의 힘으로 가까이에 있던 행성을 빨아들이며 폭발시켜 버린 대재앙의 시기가 자신들의 태양계에 여러 번 있었음을 역사적 기록에서 찾아낸다. 그들 태양계의 10개 행성들이 순차적으로 겪은 종말의 시간이 마지막 남은 행성인 자신들의 행성에도 가까워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세 별의 문제를 푸는 데에 집중했던 모든 자원과 노력을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데 필요한 과학적 연구와 기술개발에 쏟아붓는다. 그 결과 ‘소폰sophon’ 이라는 양성자 사이즈의 슈퍼컴퓨터를 개발한다. 이 물체는 양성자와 같이 빛의 속도로 우주를 여행할 수 있고 지구에 도착해 지구인의 과학 특히 기초물리학의 연구토대를 뒤흔드는 방해활동을 하고 기이한 현상들을 일으켜 많은 과학자들을 자살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이 고차원의 양성자 컴퓨터의 방해로 미립자 가속기 실험 자체가 불가능해진 지구인은 과학의 발전 수준이 한계에 다다르게 되어 삼체문명과 맞설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 봉쇄당하게 된다. 이로써 빛의 속도의 십 분의 일의 속도로 다가오는 삼체인의 본함대가 지구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400년의 기간 동안 지구에서 벌어지는 우주전쟁의 대비 전략과 그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2부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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