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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Aug 12. 2023

사신의 영생-지구의 과거 시리즈 3

      혹은 죽음의 끝

제 3부는 1,2부 보다 훨씬 확대된 공간과 시간을 배경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등장인물들은 동면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몇 백년의 세월을 뛰어넘고 궁극에는 빛의 속도로 공간을 이동하며 우리 태양계의 마지막을 목도하기도 한다. 빛의 속도로 항성간 우주공간을 넘나들 때에는 시간에 대한 개념도 달라진다. 엄청난 스케일의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인류가 현재까지 발견한 우주에 대한 여러 물리학적 개념들을 상상력으로 구체화 시킨다. 우주공간을 떠돌며 살아가는 지구인의 우주함대, 그들이 우주 공간에서 만나는 사차원 세계의 모습, 미래에 인류가 지구에 건설하는 지하도시의 모습, 태양계 위성들 주변에 세워지는 위성도시,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삼차원의 세계가 사차원이나 이차원의 우주와 만났을 때 일어나는 일 등 과학소설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흥미진진한 내용들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넘치게 쏟아내고 있다.  


3부의 주요한 인물은 청신이라는 여성이다. 2부에서 뤄지는 ‘암흑의 숲’ 이론을 정립하고 특정한 별의 좌표를 알리는 전파(그는 이를 '저주'라고 불렀다)를 우주에 쏘아 올리고 동면에 들어갔다. 동면에서 깨어난 그가 처음 한 질문은 그 별이 파괴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 별이 원인 모르게 사라진 것을 확인한 뤄지는 우주에 지구와 삼체인 이외의 또 다른 암흑 속의 사냥꾼이 있을 수 있다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확신한다. 삼체인이 아닌 또 다른 외계문명이 존재하며 그들이 암흑의 숲 이론에 따라 잠재적 위험을 공격해 파괴한 것을 확인한 것이다. 뤄지는 이제 삼체별의 좌표를 우주공간에 쏘아 올려 삼체별을 미지의 우주세력의 공격에 노출시키겠다는 전략으로 삼체인의 지구 공격을 아슬아슬한 순간에 저지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전략은 근본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지구가 속한 태양계와 삼체별의 좌표가 우주 속에서는 마치 같은 건물의 1,2층과 같은 형태로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삼체별의 좌표가 쏘아지면 그걸 쏜 지구의 위치도 필연적으로 발견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그 스위치는 자살 폭탄 조끼와 같은 것으로 삼체인과 지구인의 공멸을 가져올 전략이었다. 그는 그 이후 전파를 쏘아 올릴 수 있는 기지에서 그 스위치를 관리하는 지구의 수호신 같은 존재가 된다. 사람들은 그를 칼잡이라고 불렀다. 


청신은 뤄지가 100세가 되는 날 그의 뒤를 이어 지구가 삼체인의 공격을 받는 순간 그 전파 스위치를 누를 책임을 진 2대 칼잡이로 선출된다. 지구의 생존을 위해 개인의 삶을 모두 포기한 뤄지, 그가 자신의 임무를 선택한 동기는 아내와 딸에 대한 사랑이었지만 그 임무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면벽자 칼잡이의 곁을 가족들은 떠났다. 혹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보통의 삶을 위해 그가 떠나 보냈다고도 한다. 어쨌든 고독한 칼잡이 뤄지는 대중들의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두려움과 위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지구의 멸망도 함께 가져올 수 있는 스위치가 강경하고 호전적인 사람의 손에 넘어갈 것을 두려워한 대중은 어머니 같은 혹은 성모 마리아 같은 자애롭고 평화 지향적 품성을 가진 젊고 아름다운 여성, 청신을 2대 칼잡이로 선택했다.


이 선택이 그 이후 지구인과 궁극적으로는 우주의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 암흑의 숲 원칙이 지배하는 깜깜하고 위험한 우주에서 청신으로 대표되는 인류애, 사랑은 과연 설 자리가 있을까? 

간단히 말하면 지구인을 구하기 위한 청신의 모든 노력은 실패한다. 뤄지의 스위치를 넘겨받는 순간 삼체인의 지구공격은 시작되고 청신은 스위치를 누르지 못한다. 삼체인은 이미 청신이 선택될 가능성을 높게 보았고 그럴 경우 스위치를 작동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무엇 보다 그들의 행성은 세개의 태양이 언제 니란히 서서 폭발할 지 모르는 다급한 상황이었다. 지구인들의 문화에 크게 감명받고 배우는 것처럼 철저한 가면을 쓰고 행동했지만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별을 버리고 지구로 이주하기 위해 대우주여행을 시작한 뒤였다. 그런데 우주를 떠돌던 지구인의 우주함대에서 그 사실을 알고 청신 대신에 삼체별의 좌표를 쏘아 올린다. 그 결과 삼체인은 지구인을 멸망시키고 지구를 차지하려던 계획을 중도에 포기하고 위험에 노출된 지구를 떠나 망망한 우주에서 새로 정착할 별을 찾아 떠돌게 된다. 


삼체인의 직접적 공격이라는 첫 위기가 지나고 지구에는 일시적으로 평화와 번영이 찾아온다. 뤄지 덕에 가능했던 삼체인과의 평화협정 기간 동안 그들이 제공한 일부 과학 지식의 도움으로 과학적 발전도 가속화 된다. 지구인은 미래에 오게 될 미지의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몇가지 프로젝트를 수립한다. 그 계획을 세우는데 필요한 중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청신이 우주로 떠난 보낸 윈텐밍의 ‘뇌’이다. 윈텐밍의 뇌를 우주로 보낼 때 지구연합기구에서는 삼체인이 윈텐밍의 뇌를 가로채 지구인에 대한 그들의 연구자료로 쓰는 한편 그들의 발달된 기술로 그에게 적당한 몸과 안식처를 제공하리라는 일말의 희망을 걸었다. 그렇게 되면 윈텐밍이 삼체인의 발달된 지식과 기술에 대한 정보를 모아 어떤 식으로든 청신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윈텐밍은 대학생 시절 청신의 따뜻함과 밝은 햇볕 같은 기운에 반해 청신을 사랑하게 되었고 자신이 암으로 곧 죽게 될 것을 알자 안락사를 선택하는 댓가로 받은 보상금과 자신의 아이디어로 큰 돈을 벌게 된 친구가 선물로 준 거금을 전부 들여 별 하나를 사서 비밀리에 청신에게 선물한다. 청신의 별은 DX3906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지구에서 400광년이 떨어진 우주에 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청신은 윈텐밍의 프로젝트를 멈추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청신은 이 일로 큰 슬픔과 죄의식 속에 살며 언젠가 윈텐밍을 만나기를 바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 


윈텐밍의 뇌가 탄 우주선은 기계적 고장으로 길을 잃고 우주를 떠돌게 되었지만 삼체인의 우주선에 포착되어 그들의 기술로 새로운 몸을 얻고 그들 속에서 살면서 얻은 정보들을 청신에게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동화 같은 형태로 전달된 수수께끼 같은 정보를 부분적으로 해독한 지구인들은 그 정보를 이용해 생존을 위한 계획을 수립한다. 

첫째는 목성, 토성과 같은 거대 위성을 방패로 삼는 위치에 위성도시를 건설하여 그곳으로 이주하여 태양의 폭발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실현하기는 쉽지만 그 효과는 별로 기대할 수 없는 전략이다. 둘째는 빛의 속도를 줄여 태양계 바깥으로 빛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인류가 사는 태양계의 위치를 숨기는 방법이다. 셋째는 빛과 같은 속도로 태양계를 빠져나올 수 있는 항성간 우주비행선을 개발하는 것이다. 두번째 방법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지만 동시에 아무도 태양계를 떠날 수 없는, 고립된 섬에 스스로를 가두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도 하다. 세번째 방법은 우주라는 광대한 세계를 포기할 수 없는 비전을 가진 사람들, 인류의 특징 중의 하나인 개척 정신, 모험심, 욕망의 끝없는 추구 등을 충족시키는 방법이지만 한정된 시간과 물자로 인해 소수만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빛의 속도로 항해하는 우주선의 개발을 성공을 눈 앞에 두고 청신은 그 계획의 중단을 결정한다. 비행선 개발의 마지막 단계로 빛의 속도로 나는 엔진을 실제 실험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숲의 사냥꾼의 주의를 끌게 되어 태양계의 위치를 노출시키게 될 것이다. 이를 염려한 지구연합위원회는 무력으로 청신의 연구팀과 조직을 제압하려 하고, 실험을 계속하려면 전쟁을 불사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청신은 전쟁 대신에 지구에 남을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하기로 한다. 


중요한 결정의 순간 마다 청신은 이러한 ‘실패한 선택’을 한다. 그를 실패한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은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의무로 여기는 하나의 기준이다. 그 기준은 인류애, 윤리성, 혹은 사랑과 같은 가치이다. 이 가치는 사실 삼체문명과 인류문명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삼체문명에서는 경쟁이나 전쟁에서의 승리, 궁극적으로는 ‘나 혹은 우리’의 동물적 생존만이 목적이라면 지구인에게는 동물적 생존 뿐만 아니라 인류문명의 가치를 철학이나 예술로 표현되는 정신의 가치, 종교로 표현되는 보편적 사랑, 공동체 윤리 등이 오랜 역사를 통해 계승되고 발전되어 왔다. 청신은 그 가치를 대변하고 있으며 그녀를 선택한 것은 지구인 자신들이다. 그리고 청신으로 대표되는 인류의 가치와 선택은 암흑의 숲의 논리 대로 스스로를 구할 거의 모든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런데 이 소설의 서사에는 더 큰 맥락이 존재한다. 제 2부의 첫 장면과 3부 일부에 저자가 인간의 삶을 위한 노력을 개미의 행렬에 비유하는 대목이 나온다. 무덤 앞에 놓인 석판에 음각된 글자를 따라 앞장 선 개미의 뒤를 따라 다른 개미들이 열심히 그 길을 따라간다. 그들은 자신들의 길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자신들이 가고 있는 길이 어떤 목적이 있는지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앞장 서 이끄는 개미의 뒤를 하나가 되어 열심히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거대한 우주의 시간과 공간의 무대에서 보면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이들 개미 무리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런 것처럼 보인다. 


엄청난 과학적 발전을 이룬 삼체인이나 휴머니즘이라는 독특한 문명을 건설한 인류 모두 더 넓은 우주공간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하찮고 무력한 존재처럼 보인다. 우주에는 수없이 많은 고도의 문명세력들이 있었고 그들의 서로에 대한 공격으로 우주 자체가 죽음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단순히 하나의 태양계를 폭파시키는 ‘원시적인’ 공격만이 지구와 태양계를 위협한 것이 아니었다. 우주는 고차원에서 저차원으로 포섭되어 멸망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삼차원의 세계가 그림처럼 이차원의 세계로 압축된다. 우주의 시간- 빛의 속도도 느려지고 모든 것이 정지되는 죽음의 상태로 변한다. 이것이 윈텐밍이 그의 동화에서 벽화가 된 사람들을 통해 알려주고자 했던 미래의 위험이었다. 그리고 이 공격을 시작한 문명세력은 그 무기를 다른 문명의 발전을 미리 ‘싹을 자르기 위해’ 사용한다. 문제는 이 공격은 일단 개시되면 목표물에 한정되지 않고 주변 우주공간으로 계속 물결처럼 퍼져 나가 우주 전체가 이차원의 그림으로 포섭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 자신도 언젠가는 그 파장에 포섭되어 멸망 당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무기를 사용하는 결정을 말단의 ‘청소부’에게 맡겨 두고 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포착한 초기 우주의 모습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그런데 지구문명을 구하기 위한 모든 노력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인류는 오억 년 후에라도 누군가 다른 문명이 일어난다면 그들에게 인류문명의 유산을 알려주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그래서 인류문명박물관(거대한 암벽으로 이뤄진 인류문명의 무덤)을 명왕성에 건설한다. 수많은 물질에 대한 실험과 데이터를 종합해 내린 결론에 의하면, 가장 오래 보존될 수 있는 것은 결국 가장 원시적인 방법 즉 암벽에 기록을 새기는 것이었다. 보존해야 할 인류의 유산을 선별하고 그것을 지키는 책임을 맡은 이가 뤄지이다. 뤄지는 이제 지구의 운명을 쥔 칼잡이가 아니라 지구의 죽음을 준비하고 지키는 묘지기가 되었다. 뤄지와 청신은 우리 태양계가 소멸을 앞 둔 마지막 순간 짧은 시간 동안 서로 만나게 된다. 뤄지는 청신이 자신의 실패를 자책하고 죄의식에 괴로워하자 그 선택은 청신이 아니라 인류가 한 것이라고 위로한다. 그러면서 매 역사적 순간마다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고 자책하는 청신에게 자신은 놓치지 않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뤄지는 숨겨뒀던 단 한 대의 항성간 우주선에 청신과 그녀의 동료 AA를 태워 이차원의 그림으로 변해가는 태양계(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처럼)로부터 탈출시킨다. 지구문명을 지키기 위한 뤄지의 흔들림 없는 헌신은 태양계를 보이지 않는 적의 예측할 수 없는 공격으로부터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인류문명의 씨앗을 먼 우주로 내보내는 데는 성공했다. 그리고 그가 구한 것은 청신이라는 한 인간이 아니라 청신이 대표하는 인류의 정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대목에 이르면 왜 이 시리즈의 전체 제목이 '지구의 과거'라고 붙여졌는지 이해하게 된다.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지구문명의 과거에 대한  것이었다.


태양계가 그림으로 변하기 직전 탈출한 청신은 윈텐밍이 자신에게 선물한 별로 향한다. 그리고 먼저 착륙선을 타고 내려간 AA가 소망대로 윈텐밍이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 온다. 그러나 청신이 그 별에 착륙하려는 순간 운명이 그들을 다시 갈라 놓는다. 암흑물질의 벽에 부딪친 청신의 우주선은 그 별에 도착하지 못하고 시간을 알 수 없는 기간동안 다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우주를 떠돌다 다시 그 별에 도착해 착륙에 성공한  것은 태양계의 시간법으로 수천 년이 흐른 뒤이다. 그곳에서 청신이 발견한 것은 윈텐밍과 AA가 돌 위에 남긴 기록과 윈텐밍의 또 다른 선물이다. 윈텐밍은 2차원으로 소멸되어 가고 있는 우주의 죽음에서 청신을 구하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기획하고 해냈다.

삼차원 세계를 이차원 세계가 삼켜버리는 속수무책의 공격은 멈출 길이 없다. 거대한 우주에 지속적으로 퍼져 나간다. 이 공격무기를 실행한 문명도 점점 스스로조차 존재할 삼차원의 공간이 좁아져 가는 상황에 놓인다. 이 피할 수 없는 운명에서 살아 남고자 우주의 다양한 문명의 생존자들은 우주의 질량을 떼어내 여기저기에 그 파장을 피할 수 있는 작은 우주들을 만든다. 빛의 파장이 닿을 수 없는 절대적 어둠에 둘러싸여 파장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자신들만의 작은 섬 같은 소우주들-윈텐밍이 청신에게 선물한 사방 1킬로미터의 작은 우주도 그 중의 하나이다. 


십차원 이상의 다양한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던 우주는 점점 이차원의 세계로 편입되고 있으며 우주 전체가 일차원의 세계로 완전히 통합되어 계속 밀집되는 질량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순간(우주물질이 서로의 중력에 의해 끌어당겨져 계속 모이면 거대한 질량이 한 점에 이르는 대 함몰 Big crunch 상태가 된다)에 이르면 우주는 거대한 질량 덩어리의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그것이 빅뱅 혹은 Big bounce-새로운 우주의 탄생이며 모든 생명의 새로운 탄생이 시작된다. 모두들 안전한 자신의 소우주에 숨어 새 우주의 탄생과 새 삶을 기다리려 한 것이다.(그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그 상황에 우주지킴이 그룹에서 각각의 소우주에 보낸 긴급 정보가 도달한다. 소우주들이 떼어간 질량들 때문에 우주는 빅뱅의 길로 가지 못하고 영원한 팽창-Big freeze의 길로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우주의 영원한 팽창-그것은 우주의 죽음을 의미한다. 별과 별 사이, 우리 은하계와 안드로메다 은하계, 소우주와 소우주 사이는 점점 멀어지며 서로의 빛도 닿지 않고 소통도 할 수 없는 영원한 고립과 암흑의 세계로 우주가 변하는 것이다. (천체 물리학자들에 의하면 지금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으며 종국에는 모든 것이 해체되고 소립자들만이 골고루 퍼져 정지된 상태가 될 거라고 한다. 이 상태를 대팽창Big freeze 라고 부른다.) 곧 죽음만이 영생하는 우주가 된다.

청신은 우주의 죽음을 끝내고 새로운 우주의 탄생을 위해 칼잡이로서의 마지막 결정을 내린다. 삼체인이 지구침략을 위해 만들었지만 청신을 보호하기 위해 남겨진 인공지능 컴퓨터 소폰도 청신의 결정에 함께 한다. AI가 청신과 오랫동안 함께하면서 공감의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일까? 자신이 프로그램된 목적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결정에 토를 달지 않는다.

이 결정이 3부의 영어판 제목(THE END OF DEATH)이 시사하는 것이다. 사신의 영생이 청신에 의해, 그녀가 수천년에 걸쳐 우주를 떠돌면서도 놓지 않은 자신의 책임-휴머니즘의 현재라는 가치를 선택하는 것을 통해 저지될 수 있을까? 


우주를 지배하는 암흑의 숲 이론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인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것 같다. 인간 역사 속에서도 개인의 삶에서도 적자생존이나 내가 살기 위해 먼저 상대를 쳐야 한다는 암흑의 숲 사냥꾼의 논리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주라는 거대한 시간과 공간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우리의 삶은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인가? 삶이 단지 동물적 본능에 의해 지배당하는 생존을 목적으로 한다면 자신들의 틀에 갇힌 개미들의 행렬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뤄지는 암흑의 숲 이론을 수립하고 거기에 맞춰 자신의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했지만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또 다른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목적이 단지 살아남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살아남는 것에 근원적 이유를 부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면벽자로서 또 나중에는 칼잡이로서 고독하고 희생적인 삶을 산 그에게 지구인들은 배신과 질시로 응답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밑바닥까지 들여다 보고 선택하는 그의 삶을 더욱 깊은 경지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는 지구의 무덤지기가 되었다. 우주의 불확실한 위험 -암흑의 숲에서 항상 현재, 인류애 더 나아가 우주애를 선택했던 청신 역시 개미와 인간을 가르는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상징이 아닐까?


류츠신은 광대한 우주를 배경으로 인간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인간이 그동안 이룩한 모든 문화적, 과학적 업적이 얼마나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무런 목적도 지향도 없으며 신도 없고 윤리도 작동하지 않는 그저 물질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것이 우주이다. 생명체들 역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암흑의 숲 논리에 충실한 존재들로 그려진다. 그런데 그 관점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는 못한 것 같다. 뤄지와 청신과 윈텐밍의 스토리가 그 기본틀을 흔들면서 다시 휴머니즘으로 회귀하는 결과를 낳는다. 암흑의 숲 이론에서 이들 인물은 설 자리가 없는 것는 것으로 보인다. 그저 무력하고 실패가 예견될 수밖에 없는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광대한 우주공간, 그리고 영원한 시간 속에서 모든 문명과 생명이 너무나 작고 무력한 존재라는 걸 인식한 순간,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삶에 더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 순간이 영원이 된다는 종교적 각성 혹은 초인의 각성이 이뤄질 수도 있다. 자신의 거대한 서사를 바탕으로 각 인물들의 내면의 생각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는 저자의 노력까지 요구하는 것은 좀 무리일까? 


어쨌든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사회와 미래를 반추하고 예측하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우주공간 속에서 벌어질만한 온갖 진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이언스 픽션에서 느낄 수 있는 과학과 상상력의 극대화된 만남을 지구의 과거 3부작 시리즈를 통해 만날 수 있다. 

2024년 방영할 계획으로 넷플렉스에서 시리즈물로 제작 중이라고 하니 기대가 크다.


다음에는 류츠신의 삼체 시리즈와 거의 정반대의 분위기와 세계관 혹은 우주관을 가진, 또 다른 공상과학소설의 대가 <앤디 위어Andy Weir>의 작품을 소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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