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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Aug 19. 2023

헤일 메리 프로젝트와 마션

     앤디 위어의 유머 넘치고 가슴 따듯한 우주 이야기

앤디 위어Andy Weir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개인 웹사이트에 간간히 자신이 쓴 소설을 올렸다.

그가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한 <마션The Martian> 이 크게 인기를 얻자 2011년 전자책으로, 2014년 종이책으로 발행되었다. 그리고 2015년 리들리 스콧이 감독하고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한국에서도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감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앤디 위어는 이 <마션>으로 최고의 SF소설가의 한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두 번째 소설은 <아르테미스Artemis> 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는데 이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조금 실망스러운 측면도 있는 작품이었다.

세 번째 작품은 <헤일 메리 프로젝트Hail Mary Project>이다. 이 소설은 출간되자 "다음 세기까지 SF 고전으로 남을 대작"이라는 칭찬을 받았으며 세계 최초로 30개국에서 동시 출간되었다. 이 역시 영화화되고 있다고 하는데 2024년에 개봉될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영화를 보더라도 반드시 책을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책 보다 재미있게 만들기 어려운 소설들이 있다. 내 견해로는 댄 브라운의 소설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도 책의 재미를 반도 표현하지 못했는데 앤디 위어의 소설들도 그런 류다.


앤디 위어의 주인공들은 매우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하다. 삶과 죽음이 갈리는 순간에도 수시로 농담을 날려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의 세 작품 모두 주인공들은 끝내주는 입담을 누군가에게, 사실은 대부분의 경우 자기 자신에게 내뱉는다. 이 위트 넘치는 대사들을 모두 영화로 표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 보다 책이 훨씬 재미있는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로, 마션과 헤일 메리 프로젝트는 대부분의 액션이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일어난다. 살아남기 위해 풀어야 하는 모든 문제들의 해결방법은 화학과 수학과 식물학과 물리학의 지식을 총동원해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마크 와트니(마션의 주인공), 재즈(아르테미스), 라일랜드 그레이스(헤일 메리 프로젝트)의 '머릿속 액션'을 따라가며 그들이 어떻게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를 구할 방법을 찾아내는지에 몰입하게 된다. 영화가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영화가 가진 장점이라면 화성의 일몰 장면, 마크가 로버를 타고 크레이트를 탐사하는 장면이나 화성의 강력한 모래바람들을 영상화 함으로써 우주의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실감할 수 있게 한 것일 것이다.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에 헤일 메리 프로젝트에서 만나는 외계인과 그의 별을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앤디 위어의 소설들의 특징 중 하나는 매우 단순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류츠신의 삼체 시리즈가 대단히 많은 에피소드들을 엮어서 장대한 서사를 만들었다면 앤디 위어의 소설은 거의 정반대라고 할 만큼 단순하다. 그의 소설은 로빈슨 크루소의 생존기처럼 엄혹한 자연조건과 이를 극복하고 어떻게든 살아 남고자하는 주인공의 활약이 중심이다. 그의 소설에는 악의 세력도 없고 음모도 없다. 물론 아르테미스에는 악당이 있지만 악당과의 싸움이 소설의 중심틀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악당은 주인공 재즈가 액션에 들어가게 되는 동기의 일부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재즈의 액션의 중심은 악당과의 활극이 아니라 달의 도시 아르테미스를 구하기 위해 용광로와 산소 공급 시스템과 싸우는 데 있다. 

줄거리가 단순한 만큼 요약하는 것도 쉽다.


마션의 마크는 먼저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성에서 활동하는 동안 우주비행사들이 거주하도록 세워진 텐트 안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지구와 통신을 하기 위해 3400km의 장거리 여행을 계획한다. 이를 위해 단거리 탐사 자동차 로버를 장거리용으로 개조한다. 그리고 마침내 지구와의 교신에 성공하고, 화성 궤도에서 헤르메스호와 도킹할 수 있도록 나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화성 이착륙선을 개조한다. 

한편 지구에서는 지구로 귀환 중이던 헤르메스호에 마크의 생존 사실을 알리고 지구 궤도에서 다시 화성을 향해 날아가도록 한다. 그 과정에서 부족한 연료와 식량을 헤르메스호에 전달하기 위한 작전이 펼쳐지고,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감동적인 전 지구적 차원의 노력이 펼쳐진다. 그러나 마크가 탄 이륙선은 헤르메스호와 성공적인 도킹 거리에 도달하지 못하고 이 마지막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마크의 목숨을 건 기발한 작전이 시행된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이 책의 재미는 이 줄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수위가 높아가는 위기와 그것을 해결해 가는 주인공의 이성적인 두뇌와 유용하고 풍부한 지식, 엔지니어로서의 창의적인 발상과 손재주가 거침없이 발휘되는 것을 감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마다 내뱉는 그의 입담을 즐기는 것이다.


헤일 메리 프로젝트의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조금씩 회복되는 기억의 파편과 주변을 탐색하면서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는 과정을 보는 것이 도입부에서 독자들이 얻는 즐거움이다. 워싱턴 포스트 책비평 기사에서 어떤 비평가가 이 도입 부분이 절대적으로 불필요하고 낭비에 불과하며 하드코어 과학 소설에서 필요한 사실성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것을 보았다. 즉 어떤 우주 비행선에도 체크 리스트가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와 목적, 역할을 알기 위해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의 비판이 타당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저자가 일부러 체크 리스트를 빼먹었으면 어떤가? 그것이 도입부의 밋밋함을 즐거운 호기심으로 대신해 준다면 그 정도의 실수-고의든 아니든-는 용서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라일랜드가 깨달은 자신의 정체와 임무는 이렇다.

페트로바라는 천문학자가 기묘한 형태의 붉은 선이 태양에서 금성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발견자의 이름을 따라 페트로바선이라고 명명된 이 붉은 선은 점점 강해지고 태양 빛은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금성으로 보낸 탐사선이 이 물체를 채집해서 돌아오는데 그 작은 입자가 핵연료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공할 만한 에너지를 갖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 물체에 아스트로파지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아스트로파지는 태양 빛을 삼키고 엄청난 열량을 축적해 그 에너지로 분열. 번식하는, 이제까지의 지구인의 생명체의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주미생물이다. 이 미생물의 번식과 생애주기의 비밀을 밝혀낸 사람이 라일랜드이다. 어쨌든 지구에 닿는 태양 빛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줄어들면 지구는 약 20년 후면 다시 빙하기에 접어들고 세계는 식량 부족과 전쟁의 대혼란에 빠져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아스트로파지의 피해를 입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항성 타우세티를 발견한다. 그래서 12광년 떨어진 타우세티라는 별에 우주선을 보내어 이 미생물의 번식을 막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 지구로 그 정보를 보내는 임무를 맡을 우주 탐사선을 계획한다. 그 계획이 헤일 메리 프로젝트이다.


급격하게 조직된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모든 강대국들이 힘을 합하고 스트라트라는 네덜란드인 학자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어 책임자로 임명한다. 스트라트는 라일랜드가 아스파라지의 비밀을 밝혀내자마자 그를 강제로 납치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본부 함대에서 살게 하며 자신의 명령을 각 과학자에게 전달하고 수행하게 하는 임무를 맡긴다. 라일랜드는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계한 덕분에 우주 비행사들이 불의의 사고로 죽은 뒤 그들의 대타로 우주선에 탑승하게 된다. 다만 그 과정은 본인의 자발적 동의 없이 스트라트의 명령에 의해 강제로 이행되는데 그가 처음 깨어났을 때 겪은 기억상실증은 바로 그를 강제로 우주선에 태우기 위해 사용된 수면 마취제 때문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평범하고 외롭지만 조용한 삶을 살고 싶었던 그는 본인의 영웅심이나 희생정신과는 무관하게 이 어려운 임무를 떠맡았던 것이다. 지구를 구하는 여느 영웅들과는 그런 점에서 많이 다르다. 그래서 그의 끊임없는 투덜거림이 더 현실성을 얻는다.

라일랜드는 자신이 지구의 운명이 달린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 우주선에 유일하게 남은 생존자이며 그 임무를 완성하더라도 우주선에 실을 수 있는 연료의 한계 때문에 지구로 돌아갈 수는 없는 자살 프로젝트를 책임진 마지막 생존자임을 깨닫는다.


이 소설의 진짜 재미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같은 문제로부터 자신의 행성 '40에리드'를 구하기 위해 타우세티까지 우주를 여행해 온 에리디언을 만나 그와 조심스러운 관계를 맺고 서로를 알아가며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정말 흥미진진하다.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 해결 방법을 찾아내 각자 자신의 별로 돌아가는 도중, 그레이스의 미션은 결정적인 장애를 만난다. 

아스파라지를 먹는 타모에바를 지구와 40에리드 별에 필요한 만큼 배양하는 과정에서 이 미생물은 다이아몬드 보다 더 밀집도가 높은 제노나이트라는 에드리안 합성금속의 세포 구조를 통과할 수 있도록 진화한다.  

그레이스는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생명체를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기술을 사용해서 변형하면서도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던 어리석음을 한탄한다. 


자연은 무수한 미지의 요소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마지막 결말에 이르면 가슴 찡한 감동을 느낄 것이다. 해피 엔딩이지만 한편으로는 페이소스 짙은 결말이 준비되어 있다.


앤디 위어의 작품세계가 보여주는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그의 세계관 내지 우주관이다.

어디선가 그가 인터뷰에서 당신의 작품에는 악인이 없다고들 한다고 말하자, 소설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다음 작품에서는 악당을 등장시키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르테미스에 악당이 등장한 것 같다. 문제는 그 악당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일차원적이어서 공상과학소설의 악당으로서는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악당은 그냥 인간이다. 그의 소설에는 공상과학물에 흔한 소재로 등장하는 외계인과의 전쟁 같은 것이 없다. 내 생각으로는 쓸데없는 악당을 등장시켜 앤디 위어는 자신의 세계관과 맞지도 않고 순수한 과학소설만으로도 충분하고 넘치는 재미를 주는 다른 작품과의 일관성도 훼손시켰다. 세 번째 책에서 본래의 주제로 돌아가 훨씬 재미있는 소설을 내놓아서 반가웠다.


그에게 우주는 미지의 자연이며 인간은, 그리고 에리디언으로 대표되는 외계 생명체는 살아남기 위해 서로 협력하여 그 자연을 보다 더 잘 이해하고 대처해야 하는 '친구'이다. 우주는 류츠신이 보는 것처럼  언제 서로를 공격할지 모르는 위험이 숨어있는 암흑의 숲이라기보다 함께 지식과 헌신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생명체들이 존재하는 아름답고 비밀이 가득 찬 미지의 세계이다. 마션에서 보여준 '인류애'(중국이 마크를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비밀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헤르메스에 식량과 연료를 전달하는 계획에 위성을 사용하도록 허락한다)는 헤일 메리 프로젝트에서는 '우주애'로 확장된다.  


진화인류학자들이 최근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인류가 살아남은 것은 서로 협력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뇌과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뇌가 의식, 자아를 갖도록 진화한 것은 모든 생명체 중에서 인간만이 발달시킨 신비한 능력이다. 이 의식에서 모든 문명이, 철학과 윤리가, 사랑과 헌신 같은 개념이 나왔다. 우주에 또 다른 '의식'을 가진 생명체가 있다면 그들도 인간과 같은 윤리나 철학, 우정과 헌신 같은 의식을 발전시키지 않았을까? 앤디 위어는 확실히 그런 상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헤일 메리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외계 생물체는 지구의 생명과학이 밝혀낸 생명의 조건들을 하나도 갖추지 않은 새로운 유형의 생명체로 그려진다. 40에리드 별은 생명을 탄생시키고 성장시키는데 필요한 광합성 작용을 할 수 없는 별이다. 의식이 없는 단세포 상태의 아스파라지는 지구의 박테리아 같은 단계의 생명체라고 볼 수 있는데 생명의 기본구성 요소인 물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생명체이다. 그레이스와 로키(에리드인의 이름, 그레이스가 지어줌)는 아스파라지가 자신들의 별에 처음 뿌려진 생명의 씨앗이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렇다면 타우세티 주변의 우주에 더 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어둡고 웅장하고 무거운 류츠신의 삼체 시리즈를 읽은 뒤 앤디 위어의 밝고 희망적이고 낙천적인 우주 이야기를 읽는 것도 기분전환이 될 듯하다. 두 작가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우주에 대해 펼쳐낸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은 하드코어 소설을 통해 얻는 과학적 발견과 상상의 재미와 별도로 존재와 의식의 의미에 대힌 철학적 성찰을 할 기회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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