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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Apr 25. 2023

다정한 사람이 살아남는 세상

인류진화의 희망

   얼마 전에 제목에 끌려 채 한 권을 읽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저자 :브라이언 헤어(Brian Hare) 버네사 우즈(Vanessa Woods)


   얼마나 마음 따뜻한 말인가. 우리가 학교에서, 사회에서 수없이 듣고 진리처럼 각인해 온 '강한 것이 살아남는다'가 아니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니.

이 책을 소개한 최재천 교수는 여러 가지 생태학의 연구성과를 대중적인 글쓰기로 한국사회에 소개한 학자로 나도 그의 책을 두세 권은 읽은 적이 있다. 그가 자신과 같은 관점을 가진 책을 소개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는 글을 보고 고민할 필요 없이 책을 구매했다. 책을 너무나 재미있게 단숨에 읽고 아무래도 주변 친구들에게도 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읽었다. 번역된 문장도 아름다워서 내용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미국 듀크 대학에서 진화인류학과 신경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자의 관심사는 현 인류[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를 지금처럼 지구상에서 번성하게 한 요인이 무엇인가를 진화학적 연구를 통해 찾아내는 것이다. 저자가 후기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이 책은 2016년에 초고가 완성되었는데 그 이후 미국의 총선 과정에서 벌어진 극단의 이념적 분열과 파괴적 증오를 보면서 진화인류학자로서 인류의 미래에 대한 경고에 그칠 것이 아니라 뭔가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뒷부분의 1/3을 다시 썼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정치학, 경제학, 역사학 그리고 사회심리학 분야의 여러 연구성과들을 섭렵했다고 한다.


   사실 나 자신 최근 몇 년 간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념적 양극화, 아니 많은 경우 이념의 차이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오직 진영 논리에 의한 편 가르기와 증오, 공격성 만이 남은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보며 대단히 마음이 불편했다. 누가 더 독한 말을 하는지, 누가 더 모욕적인 말을 하는지 경쟁하는 듯한 행태들이 빈번하게 뉴스를 타는 것을 보았다. 단지 일베들 같은 소수 극단적인 집단만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라는 자들, 목사라는 사람, 심지어 대통령까지 남부끄러운 줄 모르고 상스럽고 모욕적인 언사를 거침없이 내뱉는 것을 보며 공공의 자리가 주는 최소한의 격식이라도 지켜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집단 간의 분열과 불신의 틈이 너무 깊어 어떤 합리적인 합의나 타협도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저자의 미국사회에 대한 염려와 우려도 바로 그 지점에서 나의 고민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헤어교수는 먼저 우리가 흔히 다윈의 진화론의 명제로 알고 있는 "적자생존 혹은 가장 잘 적응한 것 만이 살아남는다"에서 "the fittest"는 다윈 자신의 말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스펜서라는 사람이 사용한 표현인데 후학들에 의해 다윈의 진화론의 금과옥조처럼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다윈 자신은 생물의 진화의 방향은 환경과 개체에 따라 매우 다양하며 그중 잘 적응한 개체들은 번성했고 그렇지 못한 개체들은 소멸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가장 강한 자 만이 살아남는다"는 식의 정글법칙을 인간 사회에 적용하면서 그것이 당연한 자연의 법칙인 양 받아들이도록 은연중 강요하고 있다.

    헤어교수는 생물의 진화의 역사를 보면 강한 것을 생존의 전략으로 택한 생물들은 사실 대부분 쇠퇴 혹은 멸종의 과정을 밟아 왔다고 한다. 그는 제목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다양한 진화의 방향 중에서 [친화력의 발전]을 진화의 방향으로 선택한 생물들이 가장 성공적으로 생존과 번성을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친화력의 계발을 [자기 가축화 self-domestic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자기 가축화]는 야생동물이 사람에게 길드는 과정에서 외모와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늑대에서 개가 진화해 나오는 과정이다. 우리는 그동안 아마도 인간이 정착하면서 어린 늑대를 데려다 길들여서 개로 변형시켰을 거라고 믿었는데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개들의 자기 가축화는 인간의 정착 생활  이전에 이미 이뤄졌다. 늑대 무리 중 특별히 인간에게 친화적인 성향을 가진 무리가 인간의 거주지 주변의 음식 쓰레기들을 처리하면서 그들 끼리의 짝짓기를 통해 친화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세대가 이어졌고 더욱 인간의 호감을 사는 방향으로 외모와 행동의 변화가 이뤄지고 함께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격성과 힘을 진화의 방향으로 선택한 야생의 늑대들이 소멸해 가고 있는 반면 친화력을 진화의 방향으로 선택한 개들은 인간과 함께 성공적으로 살아남았고 번성하고 있다.


    현 인류 역시 바로 이 친화력을 진화의 전략으로 선택해서 성공적으로 살아남고 융성한 생물이다. 사실 호모 일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 등의 사람 종은 현 인류 종[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오랫동안 지구 위에서 번성했다. 그들은 20만 년 전쯤에 현 인류종과 거의 비슷한 신체적 두뇌적 구조를 갖추었고 네안데르탈인은 오히려 더 우세한 신체와 더 큰 두뇌를 가졌었다. 그들은 모두 불을 다뤘고 도구를 사용했으며 익힌 음식을 먹었다. 현 인류 종은 최소 20만 년 동안의 대부분을 최소 4종 이상의 다른 인간 종과 공생했다. 그런데 5만 년 전쯤에 이르자 우리 종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2만 5천 년에 이르면 다른 사람 종이 멸종에 이르는 가운데 우리 종 만이 번성을 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 종의 번성을 추동한 힘을 저자는 우리 종의 [자기 가축화]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증거를 찾기 위해 사람종의 유골을 비교 분석해 보기로 한다.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은 우리 종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점인 5만 년 전보다 5-10만 년 전의 여러 사람종의 두개골이나 유골을 비교하는데 그 결과 8만 년 전쯤에 우리 종의 자기 가축화가 일어난 증거들을 발견했다. 

  

    그런데 우리 종이 자기 가축화를 통해 이룩한 여러 변화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협력적 의사소통의 능력]이 진화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와 99%의 두뇌와 DNA를 공유하고 있는 침팬지 나아가 다른 사람종과 우리 종을 궁극적으로 갈라놓은 차이점이다. 이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외모적 진화의 사례가 우리 종의 눈이다. 모든 유인원 중 우리 종만이 하얀 공막을 가졌다.  헤어교수는 이런 우리 종의 눈을 '광고형'눈이라고 부른다. 우리 종은 홍채의 색깔이 무엇이든 모두 공통적으로 흰 공막을 가지고 있다. 하얀 공막 위에 놓인 눈의 홍채는 우리가 눈을 움직일 때마다 상대방이 우리의 의도를 아주 쉽고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게 해 준다. 이는 협력적 의사소통을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돕는다. 반면 다른 모든 유인원들은 홍채와 비슷한 색의 공막을 가져 눈의 움직임을 숨기기 쉽게 해 준다. 이런 눈을 '은둔형'이라고 불렀는데 다른 사람종은 모두 이 은둔형 눈을 가졌을 거라고 보았다. 따라서 이 하얀 공막의 눈은 우리 종과 다른 사람종을 가장 쉽게 구별 짓는 기준이었을 것이다.

   또한 자기 가축화는 호르몬과 신경계에서도 변화를 일으키는데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들 또한 유골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종의 호르몬과 신경계의 변화는 사회화 과정에서 공격성 같은 동물적 본성이 억제되고 친화력을 더욱 높이는 방향으로 발달한다.

    

    [협력적 의사소통]의 진화는 우리 종의 사회적 연결망을 강화시켜 5만 년 전쯤에 이르면 급속한 사회연결망의 확장이 나타난다. 이 연결망의 확장은 정보의 교환과 획기적인 기술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이쯤에서 우리 종과 다른 사람종의 운명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흔히 동물계의 진화적 적응력을 설명할 때 인지능력의 발달 정도를 그 기준으로 삼는다. 진화학자들이 주로 침팬지 연구에 집중했던 것도 그들의 인지능력이 매우 높고 인간종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침팬지에 집중되었던 그 간의 연구는 어떻게 침팬지와 우리 종이 진화의 길에서 갈라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했다. 새 지평을 연 것은 헤어 교수의 개에 대한 연구였다. I.Q가 아니라 E.Q에 대한 연구 즉 상호 이해와 협력의 능력에 대한 진화학적 연구가 [자기 가축화] 이론의 토대가 된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상대를 조종하는 기술, 속이는 기술의 향상 등 똑똑하다는 것 만으로는 우리의 진화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인지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다시 말해 타인의 의도나 욕망, 감정 등 인간에 대한 이해와 기억력, 전략 능력이 아무리 고도로 발달해도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과 결합하지 않으면 집단적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는 것이 진화인류학자로서 저자의 주장이다. 개혁을 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타 당과의 대화와 협력을 거부하는 현 정부 당국자들, 정치인들에게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대목이다.


     그런데 이처럼 친화력과 협력적 의사소통을 진화의 전략으로 선택한 우리 종이 그간의 역사 속에서 저지른 수많은 전쟁, 제노사이드 같은 폭력적 행위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의 탁월한 친화력과 극악무도한 잔인성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우선 뇌신경학적 실험과 연구를 통해 [마음이론]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우리의 두뇌에는 [마음이론 신경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면 옥시토신이 분비되는데 이를 이 뇌신경 전달체가 내측 전전두엽 피질에 전달한다. 옥시토신은 협력적이고 신뢰와 같은 감정적 유대를 강화한다. 한편  이 신경망은 편도체로 연결된 신경망을 차단하여 편도체의 반응을 둔화시킨다. 편도체는 두려움이나 역겨움 같은 반응을 일으키는 부분으로 공격성을 관장한다. 그런데 여러 실험 결과 이 마음신경망을 작동시키는 것은 어떤 규칙이나 규범이 아니라 집단 정체성이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한다. 타 집단을 증오의 대상으로 삼을 때 가장 크게 작용하는 기준은 그들을 [우리]로 보느냐 아니냐이다. 그리고 [우리]가 아닌 다른 집단에게 어떤 폭력을 자행할 때 그들을 [비인간화]시킴으로써 그 폭력을 정당화하고 강화한다.

    

   우리 종은 자기 집단에 대한 친화력이 진화한 반면 위협으로 느끼는 타 집단에 대한 극단적 공격성도 발달시켰다. 제노사이드는 우리 종의 친화력 진화의 부산물인 셈이다. 이 둘은 같은 [마음신경 회로]가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결과이다. 그러므로 우리 종이 공격성. 폭력성을 강화하는 뇌의 신경회로를 제어하지 못하면 친화력의 진화라는 우리 종의 그간의 진화 방향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게 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우리 종의 번영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런 위험으로부터 우리 종을 구원하기 위해 저자는 여러 가지 대안을 모색한다. 인간의 잔인성을 억제할 수 있는 우생학적 형질변경? 행동형질은 수천 개의 관련 유전자가 상호작용하며 그들 사이에 어떤 연결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학기술의 발전? 그 자체만으로는 양날의 칼이다. 

   

   헤어교수는 사회적으로 야기된 문제에는 사회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한다. 인종통합적 교육, 서로 이데올로기, 문화, 인종이 다른 집단 간의 직접적 교류 활성화, 주택단지나 도시를 보다 개방적이고 교류 촉진형으로 건설하는 것, 다수에 의한 소수의 지배를 최대한 방지할 수 있는 정치적 민주주의 제도, 소수의 극단적 이념이 침묵하는 다수 대중을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폭력적 사회 의사소통망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 등등... 그는 특히 양 극단의 이념 집단이 그들 만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보았고 [자유]에도 일정한 제어가 필요하다고 한다. 극단적 자유는 사회를 불안정화해 독재자가 탄생할 명분과 토양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사회에서 대통령과 집권당에 의해 자주 언급되는 자유는 이런 이념적 동일성조차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면서 수시로 은행의 이자 정책에 명령을 내리고 노사 간 협약이나 노동쟁의에 개입하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대법원의 판결조차도 무위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무엇보다 우려가 되는 것은 상대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그 속에 뭔가 일부의 진실이라도 있는지 알아보려는 마음 자체가 완전히 닫혀버린 것처럼 보이는 양쪽 극단의 무리들이 너무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끼리]만 만나고 소통하면서 [자기 확증 편향]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희망이 있다면 한국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이 불과 5-6년 전 지극히 평화적인 방법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는 것이다. 서로 약간씩 의견이 다르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면서 [다정한]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로 나아갈 길을 찾아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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