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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May 06. 2023

노마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

   이제 곧 밴쿠버를 떠나 동생이 살고 있는 새크라멘토로 간다. 

이곳에서 한 달, 다음 장소에서 한 달, 마치 <노마드nomad>라도 된 듯 분위기를 잡지만 피곤해지면 언제라도 돌아갈 집이 있으니 삶의 뿌리가 뽑혀 새로 뿌리내릴 곳을 찾아 세상을 떠돌아야 하는 노마드들과는 처지가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민을 올 때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청춘을 바쳐 사랑했던 세상을 떠났으니 정서적으로는 유랑민과 다름이 없는 것 같다. 이곳에서 20년을 살았지만 속 깊은 얘기를 나눌만한 친구는 만들지 못했다. 적적할 때 차 한 잔 나누며 불꽃같은 젊은 시절에 함께 겪었던 추억담을 주고받을 나의 친구들은 모두 한국에 있다. 그래서 이곳은 여전히 이방의 땅일 수밖에 없고 나는 아직도 뿌리내릴 땅을 찾아 헤매는 노마드일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는 모두 유목민의 후손이고 특히 한국인의 핏줄에는 유목민의 피가 강하게 흐르고 있다는 어느 교수님 말이 기억난다. 파보Paabo라는 라이프치히Leipzig의 유인원 연구 학자에 의하면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사람 종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들이  '미쳤다madness'는 점이다. 

   그들은 대양 너머의 보이지 않는 땅을 상상하고 그 땅을 찾아 떠나기 위해 원시적인 배를 만들고 식량을 싣고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생명을 건 모험을 떠났다. 그리고 아마 셀 수 없는 실패와 죽음을 거듭한 끝에 5만 년 전 마침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도착했을 것이다. 물론 그때는 지금보다 바다가 훨씬 좁았지만 그들이 만든 배의 기술 수준을 생각하면 그들이 건넌 바다가 지금의 대양보다 좁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또 그들은 추위에 훨씬 강한 신체적 조건을 가진 네안데르탈인도 하지 못한 혹은 아마도 시도 조차 하지 않은 모험을 감행했다. 그들은 빙하기 말(2만 5천 년 전) 눈과 얼음으로 덮인 대륙을 걷고 걸어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다. 

   파보의 평생의 소원은 우리 조상들을 미치게 만든 호기심/상상력/열정을 주관하는 유전자 코드를 밝혀내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어떤 유전자가 작동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미친 짓'의 기저에는 '현재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꿈틀거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밴쿠버는 현대판 유목민-이주민이 캐나다라는 거대한 땅에 희망을 걸고 첫 발을 딛는 주요 관문 중의 하나이다. 사실 캐나다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이민자들의 땅이다. 다만 아직도  미국 보다는 이민자들에게 개방적이고 너그러운 편인 것 같다. 처음 이민자 교육을 받을 때 교수들이 캐나다는 '샐러드 볼'과 같고 미국은 '죽 냄비melting pot'와 같다고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것을 들었다. 캐나다의 정책이 이민자들에게 동질성을 강요하지 않고 그들이 가진 다양성을 인정하고 보존하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캐나다에서도 몇 년 전에 시크교도들의 터번과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전통적인 칼이 허용되는 것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다. 또 퀘벡주에서는 여성들이 운동을 할 때 히잡을 써서는 안 된다, 경찰, 지휘하는 위치의 공무원이나 교사들도 히잡 착용을 금지한다는 주 정부의 방침에 무슬림 공동체와 여성 그룹, 정부인사들 사이에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최근에 대구에서 주민들이 무슬림 교회 앞에서 그들이 금기시하는 돼지 머리를 갖다 놓고 법석을 떨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주민의 역사로 보자면 다른 어떤 민족에도 뒤지지 않을 오랜 역사와 가슴 아픈 사연을 많이 가진 한국인들이 이주민들에게 박하고 잔인하게 구는 것을 볼 때마다 내 가족이 이민 온 땅에서 그런 일을 당할까 겁나고 겁난다.


   지금 세계에는 수많은 노마드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내전, 시리아의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들, 남미의 경제적 불황과 불안한 치안, 폭력적 지배로부터 탈출한 난민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와 소련의 전쟁으로 발생한 난민들까지 모두 자기 땅을 버리고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난 현대판 유목민들이다.

   시야를 좀 더 넓게 보면 더 좋은 대우를 바라고 지방에서 도시로, 선진국의 연구소나 대기업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첨단 분야 연구자나 기술 인재들도 유목민의 대열에 낀 사람들이다.

사실 20만 년 인류 역사 중에서 정착생활이 시작된 것은 1만 년 전에 불과하고, 영주나 도시국가, 근대국가가 법으로 규제하지 않았다면 세계는 유목민의 행렬로 바빴을 것이다. 기득권자들에 의한 그런 규제가 없었다면 세상은 자연스럽게 지금보다 훨씬 평등하고 평화로운 형태로 토지와 자원과 기술이 재분배되었을지도 모른다. 

   20세기에 인류는 새로운 유목민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품의 교역과 기업 설립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세계화 시대를 출발시켰고 금융자본도 그 경계를 헐었다. 상품과 기업과 돈의 흐름을 따라 사람들도 이리저리 이동하는 시대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하층 노동력의 이동-이들은 주로 빈곤한 국가의 백성들이거나 위험과 절망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한 난민들로 구성되어 있다-을 온갖 법과 규제로 통제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다.


   21세기 가장 부자나라인 미국에서 새로운 노마드족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2021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노마드랜드>라는 영화가 있다. 아카데미 상만이 아니라 다른 유명 국제영화제의 상들도 휩쓸 만큼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은 영화이다. 더욱이 감독이 클로이 자오라는 중국계 이민자이며 젊은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더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는 2009년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기침체로 인해 도시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캠핑차RV-recreational vehicle-나 개조한 밴 등에서 살며 일자리를 찾아 미국대륙을 떠도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이다. 도시에서 밀려나 자연 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길 위에서 만난 다른 노마드들과 우정을 쌓고 서로 격려하며 희망을 만들어간다는 아름다운 얘기가 화이트 남성 위주였던 아카데미 시상식의 높은 벽을 깼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영화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들도 제법 있었다.

바로 전 해인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기생충>을 두고는 전혀 이견이 없었던 데 반해, <노마드랜드>의 수상에 대해 비판적인 문화비평가들이 있었고 심지어 감독의 부친이 막강한 철강기업가라는 배경까지 들먹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노마드들의 삶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길 위의 풍경과 캠핑장의 따뜻한 우정에만 초점을 맞추어 보여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오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 영감을 얻었다는 <노마드랜드Nomadland>라는 책이 있다. 

제시카 브루더Jessica Bruder라는 사람이 3년 동안 실제로 노마드처럼 살며 같이 일한 경험과  그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모아 쓴 다큐멘터리 기록이다. 책은 2017년에 발행되었고 2013-2015년 사이의 경험을 담았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2009년 미국의 금융위기로부터 비롯된 대침체로 집과 직업을 잃은  도시 변두리의 사람들이다. 이미 은퇴했지만 은퇴할 수 없는 60대 노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석사학위를 갖고 수백 군데 이력서를 냈어도 취업에 실패한 원주민 청년, 우버가 투입되면서 퇴출된 몇십 년 경력의 택시 운전사도 있다.. 모두 평생 일해 겨우 마련한 집이 모기지 때문에 은행에 넘어가거나 오르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길거리로 나앉아야 했던 사람들이다. 주거비를 감당할만한 지속적인 일자리와 수입이 어려워져 가진 것을 모두 팔아 형편껏 마련한 캠핑차에 의지해 길 위에서 생활하기로 한 사람들이다.


   저자는 인류 역사에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유랑자는 있었지만 21세기 미국에서 등장한 이들 유랑민은 새로운 종족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한 번도 길 위를 떠도는 유랑민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고 대체로 자신들이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비록 전통적인 집을 소유하지 못해 '바퀴 달린 자택wheel estate'으로 이사했지만 이들은 '마음가짐mind set'도 중산층이고 외양도 중산층처럼 보이려고 노력한다. 샤워를 하기 위해 운동시설의 회원권을 끊기도 하고 몸관리도 열심히 한다. 가끔은 영화도 보고 식당에도 간다. 반려동물들과 함께 살고 하룻밤에 15$를 내고 머무는 RV-캠핑장에서 샤워를 하고 세탁을 하고 쫓겨날 걱정 없이 한가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순간을 한껏 행복해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처음에 도시 한적한 주택가나 공원, 쇼핑센터의 주차장 등에 둥지를 틀었지만 전통적 자택에 사는 사람들이 '미풍양속moral'을 해칠까 우려하여 만든 각종 법안에 의해 그곳에서 조차 추방당한다. 2016년 뉴욕 타임스 기사에 의하면 미국의 100개 도시가 인도에 앉으면 범죄인 것으로 규정했다. 2011년에 비해 43%가 증가한 숫자이다. 같은 기간 자동차 안에서 잠자는 것을  금지한 도시도 37개에서 81개로 늘어났다. 차는 세워둘 수 있어도 사람은 안된다는 이 법들이 사람보다 재산을 우선시한 것 아니냐는 공동체적 논쟁조차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저자는 한탄한다.


   도시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은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도시에서 견뎌야 했던 이웃의 의심 서린 눈초리도 없고 혹시나 장기 캠핑족으로 찍혀 언제 퇴거명령을 받게 될지 몰라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던 어려움도 없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는 먹고 살 방법이 없다. 이들을 구원한 것이 아마존이라는 거대 유통회사이다. 

  

   아마존은 <CamperForce>라는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1년 중 가장 바쁜 11월과 12월에 네바다 사막이나 켄터키, 노스 다코타의 벌판에 세워진 물류창고에서 일할 계절노동자를 불러들인다. 대부분 60대가 넘은 노마드들이 이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일하는 캠핑족workamper>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노동은 만만치가 않다. 하루 10시간 일하는 동안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은 무보수 식사시간 30분, 15분씩 두 번의 휴식이 전부다. 로봇이 선반 열마다 쌓아놓는 할당량을 해치우기 위해 이들은 끊임없이 허리 굽혀 상자를 들어 올리고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선반에 물건들을 쌓는다. 또 상자가 가득 쌓인 카트를 콘크리트 바닥 위로 밀며 물건을 쌓아 올릴 빈 선반을 찾아 축구장 열몇 개가 넘는 물류창고 안을 헤매고 다닌다. 그리고 휴대용 스캐너로 상자를 스캔해서 어떤 물건이 어디에 쌓여있는지를 기록한다. 그런데 이 스캐너는 또한 이들이 정해진 시간 내에 얼마만큼의 물건을 처리했는지도 기록하고 기록이 그날의 평균기록에 뒤지면 독려와 질책을 받는다.

   

   단기 임시고용직인 이들은 의료보험이나 고용보험의 혜택도 못 받고 퇴직연금도 없다. 일하다 허리나 손목이라도 다치면 병원은커녕 당장 차를 움직일 기름도 살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료품과 자동차 기름값을 벌어야 하는 이들에게 이 일은 유목민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이다.  아마존은 물류창고 근처에 고용된 노마드들을 위한 캠핑장도 제공하는데 이 또한 안정적인 캠핑장소를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는 2-3달간의 이 기간이 놓칠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다. 그리고 아마존은 이 노마드들의 절박한 상황을 이용해 최대한의 이익을 취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아마존에서 일하는 노마드들의 어려운 생활이 그저 스쳐 지나가듯이 다뤄졌다고 한다. 

그보다는 노마드 생활에 들어 선 사람들 개개인의 이야기, 그들의 우정과 꿈, 미래에 대한 계획들을 보여준다고 한다. 책에도 저자가 함께 캠핑족으로 생활하면서 들은 이야기들, 그들의 과거와 미래, 꿈과 계획들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저자가 1년 정도 동행하며 기록한 린다라는 여성은 66세로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일하다 저혈압과 산소부족으로 극심한 어지럼증을 겪기도 하고 손목 힘줄이 늘어나는 고통도 당하지만 항상 활기차고 동료 캠퍼들에게 사랑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명랑한 사람이다. 린다에게는 마지막 꿈이 있다. 그 꿈은 어딘가에 노마드 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는, 뿌리내릴 땅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땅에 자급자족적인 환경생태시스템을 갖춘 집과 먹거리를 책임질 그린하우스를 짓는 것이다. 린다는 그 꿈을 그린 설계와 기획안이 담긴 공책을 늘 가지고 다니며 동료들에게 자신의 꿈을 얘기한다. 그리고 린다는 그 꿈을 실현시키기 시작했다. 첫 발은 애리조나의 더글라스 근처에 판다고 나온 5 에이커의 땅을 산 것이다. 비록 사막의 잡초와 덤불이 뒤덮이고 뱀들이 돌아다니는 황무지 땅이지만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노마드 생활에서 탈출해 돌아갈 '고향집'을 짓는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자신의 '양심moral'이 괴로운 노동-대량생산과 대량소비, 1년 안에 쓰레기로 쌓일 싸구려 물건들을 매일 허리가 휘게 처리해야 하는 반생태적 노동을 마지막 힘을 다해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린다를 보는 저자의 마음은 불안을 떨쳐낼 수 없다. 린다는 무사히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노마드들이 처한 경제적 사회적 배경은 암울하고 절망적이지만 이들에 대한 얘기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이들이 그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이들이 그렇게 자신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힘든 노동을 감수하며 자연 속에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게 한 힘의 한 축은 그들끼리의 관심과 동료애, 격려일 것이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경험자의 노하우를 초심자에게 알려주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정보나 도움을 주고받는다. 아마존 물류창고의 일이 끝나고 그곳의 캠핑장을 떠나야 하는 시기가 되면  애리조나의 캬르츠사이트Quartzsite라는 마을에 수십만 명의 노마드들의 행렬이 밀려들어 온다. 뜨거운 여름 동안 4천 명에 미치지 못했던 인구가 1월이 되어 날씨가 온화해질수록 더욱 많은 차량의 행렬이 줄을 잇는다. 나라 전체에서 심지어 캐나다에서 조차 찾아오는 차량들로 이 작은 마을은 졸지에 즉석 대도시pop-up metropolice로 변신한다. 이 장소는 <만남의 장Gathering Place>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곳은 1년 동안 미국 각지에 흩어져 생활한 노마드들이 지난 한 해를 서로 나누고 새로운 한 해를 설계하기 위한 정보와 격려와 응원을 나누는 장소이다. 명실상부한 노마드 부족Tribe의 전초기지이자 베이스캠프다. 이곳에서 노마드들은 길 위에서 살아남는 방법과 기술에 대한 강의도 듣고 음악회도 열고 시낭송회도 연다.

   

   이 책은 미국이 기존 사회제도로 품는데 실패한 <노마드 부족Nomad Tribe>이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을 위한 체제를 구축해 가는 모습을 미시적인 관점과 거시적 관점 모두에서 볼 수 있게 해 준 훌륭한 탐사-연구 기록이다. 우리가 거시적 관점을 놓친다면  그 속의 개개인의 고난과 꿈과 우정의 깊이를 정말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을까? 

   

   저자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들이 더 이상 노마드로 생활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노쇠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소수이지만 부모 혹은 조부모와 함께 노마드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월마트 주차장 한 구석에 혹은 캬르츠사이트 캠핑장 한 구석에 주차된 차 속에서  죽은 지 한 달도 더 지난 사람이 발견되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들이 캠핑차를 세워놓을 수 있는 자리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애리조나의 코코니노 국립공원에서는 경비경찰들이 주차된 밴이나 RV를 검문하고 집주소를 요구하고, 숲을 거주 목적으로 사용한 죄로 벌금을 물리거나 강제 추방을 시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삼림관리청이 사람들이 장기 주차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차량을 발견하면 그 위치를 신고하도록 하는 앱을 개발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들 노마드에게 허락될 장소가 얼마나 남게 될까?

   저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미 2015년에 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노마드 부족과 언제라도 그들의 행렬에 합류할 수 있는 경계선에 선 사람들의 숫자가 수천 만 명에 이르는 것이 지금 미국의 현실이다. 임금 격차는 더 커지고 있고 계층 간의 격차도 더 커져 저자는 그 벌어진 차이가 이제는 더 이상 '틈새gap'가 아니라 '단절chasm'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복지 시스템이나 공동체적 안전망이 취약한 미국사회에서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수백만의 새 노마드를 발생시키고 1억이 넘는 사람들을 길 위의 삶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한국의 대통령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기업활동과 무역, 자본활동의 자유화와 세계화를 힘을 통해 약한 나라에 강요했던 미국이 이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각종 규제법을 만들고 있는데 한국의 대통령은 자유라는 허상의 가치에 올인하며 미국을 찬양하고 좇는데 여념이 없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영화 <노마드랜드>를 보고 감동을 받은 분들에게 책 <노마드랜드>도 꼭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영화의 아름다움, 그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깊고 가슴저리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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