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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May 10. 2023

대륙을 횡단하다 (1)

가띠노에서 밴쿠버까지 <김밥>을 타고...

밴쿠버를 향해 대륙 횡단 자동차 여행을 떠나기로 한 전 날이다. 

마지막 빨래며 청소를 하려고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어머니, 우리 오늘 출발해요"

   " 응? 아니 왜요?"

    "내일 아침부터 우리가 가야 하는 지역에 눈폭풍 경보가 내렸어요."

토마(사위)의 말로는 오늘 오후 일찍 출발해서 눈폭풍이 시작되기 전에 최대한 진도를 빼야 다음날 눈 때문에 늦어져도 다음 일정에 지장이 없을 것이란다. 직장 근무시간이 끝나자마자 출발하겠다고 했다.


갑자기 바빠진 나는 냉장고 남은 음식을 처리하고, 남은 달걀 5개는 간식용으로 삶았다. 냅킨에 소금과 후추도 쌌다. 빨래를 건조대에 널고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것들을 정리했다. 다음 날이 우리 동네 쓰레기 가져가는 날이어서 음식물 쓰레기 통과 일반 쓰레기 통을 주차장 입구에 가져다 놓고 이웃에게 내일 빈 통 좀 안 쪽으로 들여다 놓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내가 없는 동안 집도 가끔 살펴달라고 부탁하고 연락처도 주고받았다.

토마가 3시 반쯤 집에 도착했다. 다행히 대부분 짐을 이미 차에 실어놓은 터라 마지막 짐들을 싣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본격적으로 길을 떠나기 전에 내가 집을 비운 동안 우리 집에 가끔 들러 식물들에 물도 주고 우편물도 관리해 주기로 하신 사돈 댁에 들러 집 열쇠를 맡겼다. 그곳에서 토마는 안 그래도 온갖 살림살이로 가득 찬 김밥의 꽁무니에 자신의 자전거 두 대를 매달았다. 김밥이 이 여행을 견뎌낼 수 있을까 조금 불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며칠 전에 무려 1500$가 넘는 돈을 들여 정비를 했으니 별일 없기를 빌었다.

   


드디어 출발! 4월 4일 오후 4시, 5박 6일의 대(?) 장정이 시작되었다. 

원래는 4박 5일로 계획을 잡았었다. 이미 밴쿠버에 가 있던 토마가 부활절 휴가를 이용해 우리 집에 있던 자신의 차와 필수 살림살이를 옮기려고 잡은 계획이었기 때문에 다른데 구경하러 들르지도 않고 제일 짧은 길로 오직 앞만 보며 달려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다. 딸은 작은 자동차 안에서 하루 10시간 안팎을 꼬박 앉아있어야 하는 자동차 여행이 너무 힘들까 봐 엄마는 그냥 비행기를 타고 오시라는 걸 내가 자동차로 가겠다고 했다. 너무 짧은 기간이라 여기저기 구경하는 여행이라기보다 그냥 차 타고 대륙을 이동하는 것이지만 오타와에서 밴쿠버에 이르는 넓은 대륙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어찌 놓치겠는가.

 

토마의 차는 산지 10여 년이 훌쩍 넘은 현대 엑센트로 마일리지가 20만 킬로미터도 넘었고 수동기어를 달고 있다. 파스텔 그린 색이라 사위가 <김밥>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사랑한 자동차다. 사실 수리비가 더 많이 들어가는데도 토마는 그 차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내 딸과도 고등학교 졸업 파티에 동반한 뒤 변함없이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요즘 보기 드물게 사랑에 진심인 청년이다. 


여하튼 김밥은 이미 여름 타이어로 바꿔 끼웠기 때문에 눈길은 절대 피해야 했다. 

오후 4시쯤 출발한 우리는 5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그레이터 서드버리Greater Sudbery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주로 알공퀸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길이기 때문에 창밖 풍경은 아름다웠다. 하늘은 파랗게 밝고 햇볕이 숲 사이로 반짝였다. 눈폭풍이 다가오고 있는 낌새는 조금도 느낄 수 없는, 여행하기에 완벽한 날이었다. 아직 눈이 덮인 땅이 군데군데 남아있고 나무들은 새 잎을 내지 못해 벌거벗은 채이지만 겨울의 나목도 그들대로 아름답고 정취 있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첫날밤에 묵을 서드버리는 노던 온타리오주에서 가장 큰 도시로 인구가 16만 6천 명 정도(2021)라고 한다. 땅 면적으로는 온타리오에서 제일 넓고 캐나다에서는 다섯 번째로 넓은 도시다. 이 도시는 오래전에 우주에서 날아온 암석 덕분에 생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고(크레이터의 지름이 200킬로미터)  가장 오래된 분지 위에 세워졌다. 그 덕에 니켈과 구리 등의 금속이 풍부해 이 도시의 주요 산업은 광산과 그에 관련된 업종들이다.

날이 춥고 어두워지고 있긴 했지만 몇 시간 동안 앉아만 있어 굳은 다리와 허리도 풀 겸 숙소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한적한 주택가 골목을 걷는데 그다지 크지 않은 소박한 이층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한눈에 꽤 오래된 건물들로 보였다. 오래된 동네의 집들은 나름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요즘 새로 짓는 건물들처럼 개발회사가 동일한 설계도를 활용해 지으면서 그저 창문 모양이나 지붕 모양에 약간의 변형을 준, 다른 듯 같은 집들이 늘어 선 거리와는 다르다. 우리가 묵는 동네가 꽤 오래된 서민들 동네인 건 확실했다. 건물은 오래되고 낡았지만 개성 있는 장식과 한 집 한 집 서로 다른 모양으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찾아간 이탈리아 식료품 가게에서 토마토소스와 미트볼, 치즈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사위가 만든 스파게티는 아주 맛있었다. 특히 그 가게에서 직접 만든다는 토마토소스가 일품이었다. 

첫날, 저녁도 만족스럽게 먹고 낡았지만 예쁘고 세심하게 관리된 집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7시에 기상했다. 이날 가야 할 길은 짧았기 때문에 대충 8시쯤에 출발하기로 했다.

나는 김치찌개 컵라면으로, 토마는 어제저녁에 남은 샐러드와 치즈, 미트볼로 아침을 때웠다.

커피까지 내려 텀블러에 담고 짐을 싣고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마지막 점검을 하러 집에 들어간 토마가 내 여행용 목베개와 커피 텀블러를 들고 나왔다. 빈틈 투성이 내 정체가 여지없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항상 뭔가를 빼놓거나 잃어버려 딸에게 핀잔을 듣는 토마 앞에 더 강적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의미를 담아 하하 웃었다.


수생마리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있는 도시인데 강 건너편 미국 미시간 주에도 같은 이름의 도시가 있는 이색적인 도시다. 수생마리까지 가는 길은 숲이 울창하고 왼쪽으로 엘리엇 호수와 만나 호수의 풍경도 간간이 볼 수 있어 아름다웠다. 3시간 반 정도를 달려 슈피리어 호수 동쪽 끝 근처에 위치한 수생마리시에 도착했다.

우리는 캐나다 쪽 마을에 묵고 다음날 국경을 넘을 계획이다. 


인구 7만 3천(2016) 정도, 이름에서 눈치챘겠지만 17세기 프랑스인들이 건설한 도시다. 생마리강 연안에 위치해 있는데 슈피리어호와 휴런호를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해 도시가 번창했다고 한다. 온타리오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답게 시내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제법 눈에 띈다.

            슈피리어 호수                                                                                    수생마리 시내                 

호텔에 도착할 무렵부터 눈이 뿌리기 시작하더니  본격적으로 눈이 오기 시작해 시내 구경을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저녁을 때우려고 버거 킹을 찾아갔더니 픽업만 된다고 한다. 햄버거를 들고 와 먹으려니 온기도 없이 다 식은 상태. 애초 제대로 굽기나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세상에 제일 맛없는 햄버거였다. 두 번째 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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