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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상 May 14. 2023

대륙을 횡단하다 (2)

  가띠노에서 밴쿠버까지 <김밥>을 타고

세째날이 밝았다.

창 밖을 보니 주차장에 눈이 제법 쌓여있다.

우리가 열심히 도망쳐왔지만 결국 눈폭풍이 여기까지 쫓아와서 따라잡았다.

가띠노부터 우리가 어제 지나온 지역에는 눈이 엄청 왔다는데 주차장을 보니 그래도 여긴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어서 한숨 놓았다.

눈 때문에 도로사정이 어떨지 몰라 천천히 출발하기로 하고 호텔에서 주는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와~" 기분 좋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미국식 풍성한 아침식사가 긴 테이블에 쌓여있다. 식당 분위기도 뜨내기 여행객을 상대하는 호텔 뷔페가 아니라 예쁘게 정돈된 동네 레스토랑 같다.

(이런 여행기를 쓰게 될 줄 알았으면 사진을 좀 많이 찍어 두었을 텐데 아쉽다.)

디카페인 커피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웨이트리스가 친절하게도 직접 따라준다.

토스트와 베이컨, 소시지, 햄, 스크램블에그, 과일 샐러드...

접시에 가득 담아와서 맛있게 먹었다. 어제저녁의 형편없던 햄버거를 보충이라도 하듯이.

나오는 길에 요거트와 삶은 달걀, 컵케익도 챙겼다.

간식까지 든든히 챙긴 우리는 9시에 호텔을 떠났다.

오늘은 미국 국경을 넘어야 한다. 캐나다 쪽 길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귀찮은 국경을 넘기로 한 것은 날씨와 김밥의 상태를 고려해 좀 더 안전한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시내 도로는 이미 눈이 다 치워져 운전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캐나다와 미국의 두 수생마리시는 생마리강과 운하 위에 놓인 다리로 연결이 된다. 다리를 건너 얼마 되지 않아 미국 세관이 보이는데 진입도로가 둘로 나뉘어 있다. 잠시 망설이던 토마가 아래쪽 진입로로 들어서 100여 미터 전방에 보이는 세관 게이트를 향해 액셀을 밟는 순간 진입로 왼편에 작은 초소 같은 사무실 창문이 열리면서 직원이 소리친다.

"워~ 워 ~워~  지금 뭐 하는 거여?"

급브레이크를 밟은 토마가 길을 잘못 들은 거냐, 후진해서 윗길로 다시 갈까 묻는데 대꾸는 않고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그렇게 속도를 내며 달리느냐고 거의 시빗조다. 결국 우리는 그곳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차를 검사할 장소로 옮기고 사무실 안에 들어가 기다리라고 하는데 한숨이 나왔다. 자동차에 피난 보따리처럼 잔뜩 구겨 넣은 살림살이며 옷 가방들을 다 꺼내어 검사하고 다시 실으려면 족히 한 시간은 걸릴 텐데... 오늘 우리는 10시간을 달려야 한다.

그런데 뜻밖에 한 15분쯤 지나자 다 됐다고 가라고 한다.

나와 보니 짐을 건드린 흔적이 없다. 그냥 혼을 좀 내주려고 시비를 건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빨리 끝나 다행이었다.

수생마리에서 10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곳은 허바드Hubbard 카운티의 파크래피드시Park Rapids City 이다. 이 도시는 미네소타주에 속하고 시간 변경선을 넘기 때문에 우리는 1시간을 번 셈이다. 인구 4천 명이 조금 넘는 작은 마을이다.

수생마리에서 파크래피드까지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슈피리어호 북쪽 길을 택하면 무료인 대신 4시간이 더 걸린다. 우리는 돈 대신 시간을 택했다.

남쪽 슈피리어호를 가까이에서 끼고 가기 때문에 그 호수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다. 호수의 동에서 서로 9시간을 달렸는데 여전히 슈피리어호가 있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지역으로 느껴졌다.

겨울이 길고 추운 탓인지 혹은 주정부 예산이 넉넉지 않은 탓인지 미시간에서 미네소타에 이르는 고속도로 사정이 가띠노 못지않은 것 같았다. (가띠노 도로는 추위 때문에 갈라지고 움푹 파인 구멍으로 유명하다.)

길 가 작은 매점이나 창고 건물 지붕 밑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것도 보았다. 어떤 플래카드에는 [조와 그의 xx를 탄핵하라 Impeach Joe and the Hoe]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Hoe라는 단어는 창녀를 뜻하는 슬랭이다. whore라는 단어를 남부식으로 발음한 것이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를 뜻하는 것.)

마침내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다음날 일찍 출발하기 위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7시에 출발하기로 한 우리는 6시 반쯤 호텔이 제공하는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핫케익과 맛없는 시럽, 토스트, 잼과 버터, 오트밀...

어제의 호텔식에 비해 매우 실망스러웠지만 어쩌랴... 양으로 보상하고 서둘러 출발!

넷째 날, 우리의 목적지는 몬태나주 빌링스Billings에 있는 민박집이다. 11시간이 걸리는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미네소타에서 출발해 노스 다코다를 거쳐 몬태나까지 세 주를 가로지를 예정이다. 몬태나에서 타임존 변경으로 1시간을 벌게 되니 7시 전에는 도착할 것으로 기대했다.

출발한 지 두 시간, 노스 다코다주 경계를 넘자마자 파고Fargo라는 도시가 나온다. 아무리 갈 길이 바빠도  노스 다코다에서 제일 큰 도시라니 시내를 잠깐 돌아보기로 했다. 파고는 바로 주 경계선 옆에 붙어 있는 미네소타주의 무어헤드와 함께 미국 중서부 북쪽 지역의 교통과 경제, 문화의 중심지라고 한다.

예술가들이 많이 들어와 산다고 하더니 시내 분위기가 산촌 사람들 같지 않게 힙한 옷차림도 눈에 띄고 건물들도 예술적 터치가 느껴졌다.

 길거리 가게들 중에는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안락한 소파에 앉아 기도하는 <기도의 집>이라는 곳도 있고, 피아노 연주실 겸 교습소도 있었다. 모두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큰 유리로 지어진 건물들... 기도는 좀 은밀한 곳에서 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했고 피아노 연주실도 아무나 들어가서 연주하고 감상도 할 수 있게 소파가 준비되어 있다. 남의눈을 신경 안 쓰는 자유로움이 인상적이었다.


파고에서 5시간 정도를 더 달리면 테오도르 루즈벨트 국립공원에 도착한다. 루즈벨트가 청년시절 이곳에 사냥을 하러 왔다가 바위와 들판에 깊은 인상을 받아 후에 대통령이 된 뒤 국유림 보존 정책을 수립하게 되는 동기를 준 장소라고 한다.

입장하려면 한 사람당 15$를 내야 한다. 노인 우대로 80$를 내면 1년 동안 미국 내 모든 국립공원에 들어갈 수 있단다. 내가 한 달 후 그랜드캐년에 갈 예정인 걸 알고 있는 토마가 그걸 사는 게 어떠냐고 권한다. 그러다 지나치게 사교성을 발휘한 토마가 우리는 캐네디언이라고 안 해도 좋을 말을 하는 바람에 시니어 회원권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못내 아쉬워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어차피 안 될 일이었다.

만들 때도 그렇고 출입할 때마다 신분증을 같이 제시해야 한다고…

자동차로 한 바퀴 돌고 높은 곳에서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이곳에 오면 만나야 하는 미국 들소bison도 보고 야생 말과 산 염소도 만났다. 무엇보다 이 들판에는 프레이리 독prairie dog이 많은데 개처럼 생기지는 않았고 크기는 청설모와 비슷하다. 노스 다코다로 넘어오면서부터 들판이나 언덕에 눈이 사라졌는데 이 공원의 들판도 봄을 맞으러 나온 프레이리 독들이 파놓은 구멍이 가득했다.

 

나즈막하고 모나지 않은 붉은 산들과 아직 마른풀들로 덮인 들판을 끝없이 달려 저녁 7시쯤 빌링스에 도착했다.  들판에는 군데군데 검은 소 떼가 한가로이 건초더미를 헤치고 있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빌링스에서 유명한 수제 버거가게에 들렀다.

맛있기로 소문난 블랙 앵거스 소를 키우는

동네가 아니던가.

고기가 부드럽고 맛이 있었다.

며칠 째 운전하느라 고생하는 토마에게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쏘았다.


멀리 몬태나의 바위 산들이 보이는 빌링스의

시가지는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안정되고 아름다운 거리풍경이 마음에 들었는지

토마가 여기에서 한번 살아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토마에게 매력적인 모양이다.

햄버거를 사들고 찾아간 숙소는 상당히 넓은 집에 어머니와 자매가 산다고 했는데 자매 중 언니가 우리를 맞이했다. 나이 60은 족히 되어 보이는 씩씩하고 훤칠한 키의 카우 걸(?)같은 인상이다.

실내가 편안하면서도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이미 묵고 간 사람들의 방명록이 비치되어 있는데 시간이 되면 주인 가족들이랑 저녁식사도 같이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우리는 너무 늦게 도착해 햄버거를 먹은 뒤 산책도 못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나흘째 여정을 마무리했다.

                          빌링스 시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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