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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여행기 2-신트라/나자레

건축물로 남은 과거의 영화/ 생동하는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움

by 다정한 세상

리스본에 도착한 지 나흘 째 되는 날 렌터카에 짐을 싣고 신트라를 향해 출발했다. 신트라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 경관으로 지정되어 있고 우리가 방문할 페나성과 레갈레이라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만큼 도시 전체가 동화 속 그림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약 1시간쯤 걸려 페나궁이 자리한 산 중턱 마을에 도착했다. 주차할 만한 곳을 찾다가 일방통행로 좁은 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올라갔던 산을 다 내려와 고속도로를 타고 다시 페나성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찾아 올라와야 했다. 포르투갈은 도로가 다 좁아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시내 관광은 걷거나 트램,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기차나 버스를 이용해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지만 나이 많은 두 여인네와 짐이 많은 우리는 렌터카를 이용해야 했다. 도시 내에서는 주차장에 알 박기를 해두고 걷거나 택시를 이용했다. 우리가 차를 세운 곳은 숙소가 있는 마을 근처 주차장. 넓은 공용 주차장은 우리가 머무는 동안 계속 세워두기에는 너무 비싸 주차 가능한 공간을 찾아 헤맨 뒤 산 중턱에 있는 좁은 주차장에 겨우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출처: https://www.airbnb.ca/rooms/5279647


짐을 끌고 찾아간 숙소는 1층에 기념품 가게가 있고 위층들을 여행자에게 내어주는 에어비앤비로 운영되고 있는데 오래된 건물이지만 내부는 보수를 해서 비교적 깨끗했다. 침실 밖 풍경이 그림엽서 같고 침실 내부도 오래된 파스텔 색 가구와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며져 있어 리스본의 현대식 숙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리스본의 숙소는 오래된 건물이지만 내부는 완전히 현대식으로 개조해 방마다 욕실이 비치되어 있어서 편리했다. 신트라의 숙소도 욕실이 두 개여서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약간 외풍이 있어서 추웠다. 산 중턱에 있어서 창밖으로 오렌지색 지붕의 주택들과 멀리 궁전이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아름다웠다. 숙소 주변에 작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미로처럼 구불거리며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골목을 따라 영업 중이었다. 기념품 가게도 많다. 이 작은 동네는 오롯이 관광객들로 먹고사는 동네인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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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창 밖 풍경들
페나성 입구 툭툭들

신트라 산 꼭대기에 우뚝 서있는 페나궁전Palacio da Pena은 노랗고 빨갛게 단장한 디즈니 동화 속 건물들 같다. 마을에서 성 입구까지 운행되는 미니버스가 자주 있다. 우리는 올라갈 때는 이 미니버스를 이용하고 내려올 때는 전기골프차를 개조한 툭툭을 이용했다. .

페나성은 중세시대에 페나의 성녀Our Lady of Pena에게 바치는 교회당으로 처음 지어졌다. 전해져 오는 얘기로는 성모 마리아가 현신한 것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15세기에 이곳을 사랑하여 순례지로 방문하던 마누엘 1세의 명령으로 수도원이 덧붙여졌고 수 세기동안 최대 18명의 수도승이 거주하며 명상생활을 하는 작고 조용한 수도원이었다. 18세기 리스본에서 일어난 번개와 지진으로 폐허가 된 이 성은 19세기 페르난드 국왕에 의해 재건축되면서 크게 확장되었다. 20세기 초까지 왕가의 여름별장으로 사용되었다. 수도원이 거의 초토화된 상태에서도 대리석과 설화석고alabaster를 결합한 건축 덕분에 교회당은 살아남았다고 한다. 1919년 공화주의 혁명에 의해 왕실이 망명한 후 국가 기념 건축물로 지정되었다. 포르투갈의 마지막 퀸 아멜리아Amelia가 추방되기 전날 이 궁전에서 마지막 밤을 지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제국의 흥망성쇠를 목격한 궁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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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나성 입구/겨울이라 입장객이 많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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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낭만주의와 고딕식, 무어식등 다양한 건축양식을 채택해서 건설되었고 내부와 외부의 화려한 조각, 장식들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설계를 맡은 사람은 독일인 건축가였는데 페르디난도왕과 왕비 마리아 2세가 그의 설계도에 중세적 아치와 무어식 상징이 포함되도록 요구했다고 한다.

비치된 가구들이나 소품들, 금으로 장식된 집기들에서 포르투갈이 건설한 제국시대의 영화와 이 영화를 가능케 한 식민지 주민들의 고난을 짐작할 수 있다.

궁전 주변의 성벽에서 신트라 전체를 조망할 수 있고 산책길을 따라 아름다운 숲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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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갈레이라 별장Quinta da Regaleira은 포르투갈의 백만장자 안토니오 몬테이로가 지은 개인 궁전이다. 이 별장은 궁전과 예배당, 동굴, 이니시에이션 우물Initiation Well, 그밖에 공원 곳곳에 설치된 장식 건축물로 유명하다. 커다란 바위들을 옮겨다 지은 우물과 이에 연결된 지하 통로의 규모가 놀랍기만 하다. 이 우물은 실제 우물이 아니고 일종의 예식행위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졌는데 지하 통로를 여기저기 걷다 보면 죽음과 환생의 길로 갈리는 길이 나온다. 그 갈림길에서 환생을 선택하여 걸으면 환한 빛이 쏟아지는 밖으로 나오게 된다. 동굴 입구에서는 인공 폭포가 쏟아지고 정원 여기저기에 연못과 분수도 설치되어 있어 산책하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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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용 건축물/ 이니시에이션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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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욕망과 재화가 만들어 낼 수 있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며 느낀 감탄과 당황스러운 질투심, 왜 우리는 이런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들을 소유하지 못했을까 하는, 또한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기도 한, 약간은 복잡하고 답답한 느낌을 가지고 신트라를 떠나 시원한 바다를 품고 있는 나자레로 향했다. 신트라에서 나자레까지는 자동차로 약 1시간 반 정도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간다. 신트라 구경하느라 늦게 출발하다 보니 나자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후였다.

우리가 나자레에서 묵은 숙소는 신축 콘도였다. 침실 3개에 욕실 3개인 신축 콘도. 이런 신축 콘도가 주변에 많았다. 아직 짓고 있는 콘도들도 제법 있었다. 포르투갈에 와서 처음 본 풍경이다. 이곳은 왜 건축붐이 일어나고 있을까? 현대식 시멘트로 지은 블록 같은 건물들이 줄지어 세워지고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이 그렇게 많은 걸까? 바캉스철이면 서퍼들이 많이 찾아서 그런 모양인가 싶다.

짐을 풀고 해변가 식당가를 찾아 나섰다. 식당들이 해변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유명한 맛집이라고 줄을 서서 기다리다 들어갔다. 해산물 요리가 맛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근처 시장에서 싱싱한 문어와 오징어, 새우를 사 와 이탈리아식 볶음밥(리소토)을 해 먹었다. 역시 싱싱하고 값이 싸다. 다만 문어를 오븐에 천천히 오랫동안 구었는데 그 냄새가 세탁해서 널어놓은 옷에 다 베어 낭패를 보았다. 바닷가라서 습도가 높아 벽에 걸린 난방기 바로 밑에서 말렸는데 아마도 공기가 밖으로 빠지지 않고 집안에서 순환되었던 모양이다.


나자레는 파도가 서핑하기에 일품이라 많은 서핑 애호가들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때로는 파도가 30m까지 높기도 한다는데 우리가 갔던 날은 비교적 잔잔한 편이었다. 그래도 서핑 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해변 언덕에서는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이 하늘을 점점이 수놓고 있다. 바로 눈앞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연습하는 모습을 본 것도 처음이다. 해변가 모래사장이 제법 넓다. 한국의 해변가 모래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고운 모래가 넓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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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 내려가 오랜만에 작은 돌멩이들을 주우며 시간을 보냈다. 모래 위를 걷느라고 숨은 찼지만 마음은 동심으로 돌아간 듯 평화로워졌다. 딸이 왜 그렇게 열심히 돌멩이를 찾느냐고 물었다. 멋쩍어져서 웃었다. 그러게... 아직도 버릴 게 많고 미련이 많은 사람인 모양이다. 나라는 사람은. 예쁜 돌멩이들을 그냥 놔두지 못하고 집어 들고 있으니...

파도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물가물하다.

패러 글라이딩은 물론이고 수영도 잘 못하는 내게 파도는 그저 바라보고 듣는 존재, 바람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존재인데 이 파도와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즐기는 저 사람들은 차원이 다른 자연을 느끼겠구나 생각했다. 얼마나 생명력 넘치는 광경인가.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 뒤로 황홀한 노을이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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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 후 나자레 마을 전망대로 향했다. 역시 예쁜 예배당과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둘러싸인 작은 광장이 있고 간식거리를 파는 간이 상점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광장 끝 돌담에 가까이 가니 멀리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어제저녁에 들렀던 식당가의 불빛이 해안선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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