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포르투갈 여행기 3-포르투

시간이 멈춘 도시

by 다정한 세상

나자레의 시원한 바다를 뒤로하고 북쪽으로 2시간 정도 달려 포르투Porto에 도착했다. 도시 이름 자체가 항구라는 뜻으로 대서양 입구 도루강 하구에 위치해 있다. 대항해 시대에 해양무역의 거점이었고 포르투갈 국가 건설의 중심도시였고 현재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이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도시로 발전해서 중세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베리아 반도의 북서쪽 중심도시로 번창했다. 그래서 도시의 중심지역(포르투 역사지구Centro Historico do Porto )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을 만큼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축물과 예술품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도 역사지구 내 오래된 건물이었는데 내부는 깨끗이 리노베이션이 되어있고 ㄷ 자 모양 건물에 넓은 옥탑방까지 갖춘 큰 건물이었다. 아마도 가족이나 그룹 여행자들을 위해 리노베이션을 한 게 아닌가 싶었다. 숙소 가까이 운 좋게 발견한 주차공간에 렌터카를 세우고 하루에 한 번씩 주차료를 내면서 관광은 주로 걷거나 잠깐씩 우버를 이용했다.

포르투 역사지구는 정말 중세나 근대 도시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좁은 골목길, 돌을 깔아 만든 도로들, 곳곳에 보이는 오래된 교회 건물들과 조각으로 장식된 석조건물들, 파스텔 색의 벽과 다양한 문양의 발코니, 오렌지 색의 지붕들... 리스본의 골목들이 오히려 넓고 현대적이었다고 느낄 만큼 아기자기했다.

IMG_9781 (1).HEIC
IMG_9836.heic
IMG_9727.HEIC

특히 포르투의 유명한 아줄레주 벽화로 단장한 건물들이 아름답다.

아줄레주는 중국에서 유입된 코발트 염료를 이용해 무어인들이 특유의 기하학적 문양을 그린 타일로 건물을 장식했던 문화를 포르투에서 자기들 식의 기법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거대한 벽화의 밑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타일 사이즈로 구분해 뒷면에 번호를 매긴 후 타일 앞면에 코발트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다. 완성된 타일을 구워서 번호대로 붙여 모자이크 벽화를 완성한 것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의 한 구석이나 부서진 틈을 작은 타일 조각들로 모자이크를 만들어 작은 돛 단 배나 인물 같은 것으로 장식한 것을 볼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예술적 센스와 여유가 느껴져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IMG_2904.jpg 낡은 건물 벽을 장식한 아줄레주 배

아줄레주 제작과정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제작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우리 가족 외에도 8-9명이 더 참가했다. 30분 정도 아줄레주가 탄생하기까지의 역사와 코발트 물감 사용법, 벽화를 그리는 방법 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설명이 끝난 후 각자에게 두 장씩의 타일이 주어졌다. 첫 타일에는 동물이나 꽃 모양의 본을 타일 위에 놓고 색칠을 하면서 색의 강약과 그림의 가장자리 선을 깨끗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배웠다. 두 번째 타일에는 다양한 무늬의 본들을 사용해 자기 나름의 기하학적 무늬를 창조해 보도록 했다. 물론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작업이 끝난 후 타일 뒷면에 각자의 닉네임을 적고 다음 날 구워진 작품을 찾으러 오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포르투를 방문한 확실하고 소중한 기억을 챙기게 되어 흐뭇했다.





우리 가족이 만든 아줄레주.

위 오른쪽 기하학적 문양과 아래 왼쪽 산양 그림이 공방에서 준 그림본을 이용한 것이다.
















이 아줄레주 벽화로 유명한 곳이 생 벤투역이다. 역 내부 벽에 포르투갈과 스페인 간의 전쟁, 포르투갈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거대한 아줄레주 벽화가 있다. 아줄레주 작품을 보려면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이다.

기차역 내부전경.jpg
기차역 아줄레주3.jpg
기차역 아줄레주2.jpg

우리는 역사지구 관광을 위해 무료관광안내 회사의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씩씩한 젊은 여성이 우리 일행 8명을 이끌고 도보로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였지만 크게 젖을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2시간 반 정도 오르락내리락 시내 여기저기를 따라다니며 포르투갈의 역사 이야기며 건축물에 대한 소개를 들었다. 안내가 끝난 후 우리 가족은 한 사람 당 5유로씩을 모아 그녀에게 팁으로 건넸다.

그녀에게 들은 얘기 중 재미있었던 것 하나는 조엔 롤링이 해리포터의 기숙사 계단에 대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렐루서점에 대해 조엔이 자신은 가 본 적도 없고 그곳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부정했다는 것이다. 가이드는 조엔 롤링이 그 근처에서 영어를 가르쳤다는 사실을 얘기하며 조앤 롤랭이 그 서점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게다가 조엔은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벌어들인 이익의 일부를 서점 측에 요구했는데 서점 측에서 거부했다는 일화도 얘기했다. 렐루 서점은 입장료가 한 사람당 10유로, 서점에서 책을 사면 책값에서 10유로를 빼준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었다. 서점 구경하는데 10유로를 내기엔 아깝고 그 장삿속이 낯설어서 밖에서 구경만 했다. 근처에는 역시 오랜 역사와 화려한 장식으로 유명한 카페도 있다. 역시 차 한잔 마시기엔 좀 비싸서 내부구경은 사양하기로 했다.

IMG_2915.JPG
IMG_2901.jpg
카페와 서점의 입구

포르투를 포르투(항구)로 만든 도루강 주변에는 볼 것들, 할 것들이 많다.

도루강 주변을 따라 둑 위에 길게 늘어 선 알록달록한 건물과 그 밑 기다란 광장을 따라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야외 가페들,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다. 이 노점상에서 포르투갈의 유명한 펄프 생산품-어깨에 메는 작은 셀폰 주머니를 5유로를 주고 샀다. 아줄레주 기하학무늬가 인쇄된 것이다. 생각보다 부드럽고 착용감이 가볍다.

도루강 다리.jpg
펄프백.jpg
도루강변 주택들.jpg


강의 남북을 잇는 동 루이스 다리는 2단 다리이다. 우리는 첫날 윗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강 건너 모루공원에 가기 위해서였다. 윗 다리에는 모루 공원과 대성당을 오가는 전차길과 인도가 있다. 모루공원은 젊은이들이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며 석양을 즐기는 대표적인 장소다. 버스킹 하는 사람들, 낱개로 캔맥주나 물을 파는 사람들도 보인다. 맞은편에는 셀라 두 필라르 수도원도 있다. 모루공원에 앉아 비록 그다지 수준이 높지 않은 음악이긴 하지만 버스킹 음악을 즐기며 맥주를 마시는 젊은이들 틈에 끼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뜬다. 안타깝게도 구름이 잔뜩 끼어있어서 석양은 보지 못했다.

버스킹.jpg
도루강 언덕 선셋.jpg
수도원벽.jpg

다음날에는 강변 아랫다리를 건너서 유람선을 타는 선착장을 찾아갔다. 역시 이쪽에도 펄프로 만든 가방 등의 기념품을 파는 노포들, 카페와 레스토랑이 많았다. 선착장 주변에는 과거 포르투 와인을 실어 날랐다는 와인배들이 묶여 있다. 물론 지금도 사용되는 것은 아니고 그 역사를 보여주기 위한 전시용 배들이다. 우리가 탄 유람선은 강의 동쪽으로 조금 올라가며 강변의 풍경을 소개하다 뱃머리를 돌려 서쪽을 향해 내려간다. 넓은 해안선을 마주하는 곳까지 승객들을 데려간다. 강을 오르내리는 동안 강의 양쪽 둔덕에 위치한 유명한 건물들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해 지는 시간에 맞춰 서쪽 대서양을 향해 잠시 달릴 수 있다면 돈이 아깝지 않은 풍경이 펼쳐질 것 같다.

배 안에서2.jpg
배 안에서.jpg
유람선 2.jpg
저 끝에 대서양이 있다

가이드가 알려준 포르투 와인의 역사에 따르면 포르투 와인은 대항해시대 배에 싣고 간 포도주가 오랜 항해동안 맛이 상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첨가했던 데서 유래하였다. 포르투 와인은 포르투 와인 만의 독특한 제조 기법과 엄선된 포도로 만들어져 풍미가 깊고 단맛이 더 있으며 알코올 도수가 18-20도 정도로 높다고 한다. 식사와 함께 마시기도 하지만 특히 디저트 와인으로 좋다고 한다. 한 모금 입에 대 보았는데 맛이 진하고 달콤했다. 가족들이 와이너리 구경을 가는 동안 나는 숙소에서 쉬었다. 와인을 시음도 못하는데 비싼 입장료를 낼 필요가 있겠나.


포르투갈에서 유명한 또 하나의 생산품은 정어리 통조림이다. 사르디네Sardines라고 부르는 정어리 통조림은 스페인과 더불어 포르투갈에서 생산되는 고부가가치 가공품 중 하나이다.

내 기억에 정어리는 한국에서는 고양이 밥으로 취급되었고 사람들은 기피했던 생선이었다. 기름기가 너무 많은 탓으로 비슷하지만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을 가진 꽁치에 비해 좀 천대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포르투갈 사람들은 정어리를 고추, 당근 등 채소와 향신료, 올리브유에 절이고 고열로 숙성시켜 별미의 음식으로 만들었다. 100년의 전통이 있는 통조림 공장을 방문했다. 누리와 핀헤이NURI & Pinhais라는 곳이다. 토요일이라 일하는 사람들은 볼 수 없었지만 공장의 역사와 어부들의 생활, 정어리 가공 과정을 비디오로 볼 수 있었다. 상당히 흥미로웠다. 초창기부터 사용한 집기들, 사무실 등도 재현되어 있고 정어리 통조림에 양념들을 넣는 생산 라인에 앉아서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다. 정어리를 얹어 먹는 빵과 포도주, 치즈가 제공되는 밀 코스도 선택할 수 있다. 빵에 얹어 먹는 정어리는 양념에 따라 다 맛이 다르지만 정어리에 대한 내 선입견을 다 씻어내 버릴 정도로 맛있다. 리스본에는 이 정어리 간식을 먹을 수 있는 작은 가게들이 많은데 바이로 알토 거리의 솔 에 페스카Sol E Pesca 라는 가게가 유명하다. 무엇 보다 단백질과 지방 등 영양이 풍부한 정어리가 가난한 포르투갈 사람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먹거리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다만 현지인들은 주로 큰 정어리를 구워먹고 작은 정어리들은 캔으로 만들어 대부분 수출한다고 한다.

Copy of IMG_9810 (1).heic
IMG_9278 (2).HEIC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어리를 씻고 다듬고 내용물을 채우고 숙성기에 넣는 전 과정이 사람 손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100명의 종업원들-대부분 여자들-이 그 일을 하고 있다. 왜 기계화를 하지 않는가 물었더니(물론 인력으로 하기 힘든 몇 과정은 기계의 힘을 빌리고 있지만) 그것이 회사의 전통이라고 대답했다. 어부들이 바다에 나가 정어리를 잡는 동안 여자들이 공장에 나와 가공일을 하는 것으로 회사는 명실상부 가족 같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일을 하는 여성들을 위해 일찌감치 회사 내 탁아소등 육아와 교육기관을 설치하고 아이들을 교육했다고 자랑한다. 종업원과 아이들의 건강을 돌보는 출장의사도 매주 공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또 하나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정어리를 씻고 다듬는 수조가 두꺼운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더운 여름 날씨에도 대리석이 수조 내부의 온도를 차게 유지해 줘서 생선의 신선도를 지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포르투에서 난생처음으로 카타콤에도 가보았다. 카타콤조차도 부와 권력의 계급사회 질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장식된 무거운 관에 담긴 사람들은 지상의 방에 안치되어 있고 대리석 바닥 밑에 있는 관들, 아무 관조차 없이 그저 잿빛 두골과 뼈 조각으로 복도와 지하 알코브에 쌓여있는 사람들도 있다.

카타콤을 품고 있는 교회의 화려함이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천국에 이르는 확실한 길이며 영혼을 보호해 줄 성스러운 장소였겠지만 지금은 그저 잠깐 감탄하고 지나가는 박제된 아름다움으로 남아있다. 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죽은 자들의 뼈와 과 벌거벗은 채 노출된 뼈로 남은, 죽은 자들 사이의 간극이 그들의 삶에서의 간극만큼 먼 것처럼 보인다.

... 그러나 정말 그럴까.

누가 그들의 영혼의 가치가 그들이 입은 옷과 관의 치장에 따라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나.


포르투를 떠나 다시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포르투갈에서의 마지막 날 우리는 코메르시우광장을 다시 찾았다.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노을이 우리의 마지막 밤을 안타까운 듯 배웅해 주었다.

광장과 건물.jpg
리스본 개선문, 트램.jpg
리스본 항구 석양.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