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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여행기 1-리스본

대서양의 서쪽 끝에 서서

by 다정한 세상

새해 둘째 날 새벽, 우리 가족(아들과 딸, 사위, 사위의 모친)은 포르투갈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마음 한구석에는 한국의 계엄이며, 트럼프의 복귀로 세상이 어지러운 상황인데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켕기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도 몇 달 전에 휴가를 받아놓고 계획을 세운 딸의 마음씀이 고마워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리스본에서 3박, 신트라 1박, 나자레 2박 포르투 4박, 다시 리스본에서 1박 후 캐나다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오타와에서 출발해 몬트리올에서 리스본행 비행기로 갈아탄 후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12시간 남짓 걸렸다. 총 비행시간은 6시간 반 정도. 몬트리올에서 리스본행 비행기로 갈아타는데 오래 기다려야 했다. 리스본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 시간으로 아침 9시경… 미리 정해 놓은 숙박지에서 체크인 시간 전이지만 짐은 받아준다고 해서 일단 짐을 내려놓고 가벼운 몸으로 길거리 구경을 나섰다. 약간 낙엽이 지고 색이 바랜 나무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아직 푸르고 따듯한 날씨였다. 숙소 근처 공원에 동백나무가 활짝 피어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운 나라에서 갑자기 영상 5-6도의 날씨로 시공간 이동을 했다는 것이 실감 났다.


유럽 땅에는 처음인 나는 평생 책이나 영화, 역사적 사건들로부터 받은 영향 탓에 유럽인들에 대한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약소민족에 대한 가차 없는 폭력적 공격과 지배로 그들의 땅과 생명, 자원을 유린했던 사람들, 독선적인 종교와 문화적 우월감으로 다른 문명과 종교를 억압했던 사람들의 땅. 그 땅의 후손들은 과거의 영광을 어떻게 평가하며 어떤 현재를 살고 있을까?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울 광장시장을 연상시키는 먹거리 마트가 있었다. <타임 아웃>이라는 명칭을 가진 이 시장에서는 포르투갈의 모든 음식 종류가 판매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넓고 비교적 쾌적한 실내에 수많은 음식점이 영업을 하고 있고 사람들은 원하는 음식을 주문하고 공동 식탁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다 번호표에 울림이 오면 가서 음식을 받아와서 먹는다. 각종 해산물 요리와 고기 샌드위치, 수프류, 디저트류 등 음식 종류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이곳에서 포르투갈에서의 첫 식사를 했는데 포르투갈 여행이 적어도 음식에 관한 한 아주 즐거운 것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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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물가는 상당히 싼 편이었다. 보통 일인당 10유로 정도면 충분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고, 유명한 맛집에서 여러 가지 요리와 와인, 디저트까지 포함해서 제대로 먹는 식사는 일인당 25유로 남짓 된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음식은 상당히 맛이 있었다. 향신료를 쓰기는 하지만 한국인들에게도 별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정도로 크게 강하지 않고 특히 해산물과 채소를 이용한 요리가 아주 다양하다.


우리가 모두 좋아했던 것 중에 문어 샐러드와 바칼라우 브라스라는 요리가 있었다. 바칼라우는 포르투갈의 국민 음식인 대구 절임이다. 브라스는 절인 대구를 잘게 찢어 각종 야채와 올리브기름으로 찐 것 같은 요리인데 다양한 재료가 잘 섞여 있어서 먹는 즐거움이 있었다. 쫄깃한 바칼라우 스테이크도 괜찮지만 브라스 요리가 내 입맛에는 더 맞았던 것 같다. 생선이나 문어, 돼지고기나 소고기 따위를 다져 속에 넣고 패스트리처럼 구운 간식류도 정말 맛있다. 유명한 에그 타르트 맛집에서 같이 먹은 패스트리나 고기 샌드위치도 한결같이 맛이 있었다. 14일 동안 한식 생각이 별로 나지 않을 만큼. 정말 먹을거리가 다양하고 값이 그다지 비싸지 않아서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들이 선택하는 1순위 유럽 여행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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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도 유명하지만 나처럼 알코올을 몸이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샹글리에 라는 과일주도 있다. 와인에 사과, 배, 오렌지, 레몬, 딸기 등의 과일을 아낌없이 넣고 얼음을 띄워주는 과일 펀치인데 와인의 알코올을 약하게 희석시키고 각종 과일 맛을 함께 즐길 수 있으며 갈증을 해소하는데 최고였다. 우리 가족이 여행하는 내내 특히 즐겼던 것은 좀 큰 마켓마다 비치된 생 오렌지주스 즉석 착즙기였다. 착즙기 옆에는 주스를 담을 병이 크기대로 준비되어 있고 원하는 만큼 즉석에서 짜서 병에 담아 올 수 있었다.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오렌지가 얼마나 싱싱하고 맛이 있는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스를 샀다. 가격도 매우 싸다.


리스본 거리는 눈이 없는 대신 크리스마스와 새해 분위기를 한껏 즐기듯 저마다 개성 있고 예쁜 불빛 장식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작은 카페나 식당에서 만난 사람들은 친절하고 잘 웃고 쉽게 다가와 주고 우버 기사들도 우리에게 가볼 만한 곳이나 맛집들을 명랑하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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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사람들의 인종적 특징은 어느 인종인지를 뚜렷하게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종이 혼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해 오래전부터 아프리카와 중동지역과의 인적 문화적 교류가 많았고 7세기부터 12세기까지 무어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8세기 이후에는 신대륙으로 진출한 남자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돌아오지 못해 젊은 남자들이 부족했던 포르투갈에서는 다른 유럽 나라들과 달리 여자들이 아프리카 식민지 출신이거나 중동계 남자들과 혼인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그래서 포르투갈인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은 남유럽 다른 국가 보다 유럽계 유전자를 덜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대구를 잡기 위해 대서양 북쪽 험한 바닷길을 헤쳐 나갔던 선원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그렇게 떠난 어부들이 캐나다의 라브라도까지 와서 정착하기도 했다.

그들의 연인, 아내, 어머니, 누이들… 남겨진 여인들이 배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애끓는 마음으로 불렀다는 포르투갈의 유명한 민속 음악 파두를 들으며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시대의 큰 파도를 타고 넘으며 생명을 바친 사람들, 다행히 살아남아 낯선 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사람들, 평생을 한이 맺힌 노래를 부르며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을 기다렸던 사람들의 마음이 가슴에 사무쳤다. 우리의 아리랑이나 새야 새야 파랑새야 같은 노래가 겹쳐 들리는 듯했다. 파두를 즐길 수 있는 식당들이 많은데 유명한 음악가에게 집중해서 선택하다 보니 매우 좁은 식당에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 앉을자리가 없어 일행 중 몇은 서서 들어야 했다. 일단 입장하면 한 차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입장이나 퇴장을 할 수 없다. 들어온 사람은 공연을 즐기는 동안 일정 금액(1인 당 10유로) 이상의 음식이나 와인 등을 주문해야 한다.


이곳이 오래된 유럽의 도시라는 것을 인상 깊게 각인시켜 준 것은 도로가 대부분 우리에게 익숙한 시멘트 블록이나 아스팔트가 아니라 표면이 반질반질한 네모난 돌덩이들로 포장되어 있는 것이었다. 가로 세로 높이 4-5센티미터의 희고 검은 돌로 모자이크처럼 여러 가지 무늬를 그려 넣은 도로들이 주변의 오래된 석조 건물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도시를 꾸미고 있다. 넓은 자동차 전용도로 정도가 아스팔트 도로이고 보도나 좁은 골목길뿐만 아니라 시내 대부분의 이면도로도 돌조각 모자이크 도로이다. 겨울이라 습도가 높아 길이 미끄러워 조심해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보수가 쉽고 개성 있는 길을 연출하는 장점이 있다.

오래된 건물의 입구 아치나 천정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들, 유명한 코발트 물감으로 무늬를 그린 파란 타일로 장식된 건물 외벽의 아름다움이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경제가 뒤떨어져 있는 탓인지 현대식 시멘트와 유리로 이루어진 고층 빌딩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오히려 여행자의 마음을 더 흡족하게 했다.



코메루시오 광장과 개선문.jpg 코메르시우 광장/ 개선문
아우구스타거리.jpg 코메르시우 광장 개선문에 이르는 아우구스투스 거리

리스본은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항구의 하나로 그 당시의 영광의 흔적이 거리 곳곳에 남아있다.

대서양으로 나아가는 리스본의 관문 역할을 했던 타구스 강의 콜로나스 부두와 코메르시우 광장, 광장 가운데에 있는 아우구스타 개선문과 광장을 양쪽에서 둘러싸고 있는 긴 항구 건물이 리스본 관광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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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와 보트 체험

이 건물의 일부가 유명한 바칼라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구를 잡던 어부들의 복장과 생활 실태, 바칼라우 요리 정보 등을 영상이나 실물로 볼 수 있다. 일일 패스를 사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고 지하철도 탈 수 있다. 이 패스로 24시간 동안 지하철 탑승은 물론 모든 관광지에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박물관에서는 여러 가지 예쁜 기념품도 판매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전통 예술인 아줄레주를 이용한 접시들이 눈길을 끈다. 광장과 부두 주변에는 관광객들이 많다. 군밤을 파는 수레도 있다. 관광지 부근에서 이런 군밤장수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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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장의 아우구스타 개선문에서 호시우 광장에 이르는 아우구스타 거리는 리스본의 대표적 상업지구이다. 유명한 브랜드의 매장도 많고 기념품 가게도 많다. 보행자 전용거리여서 오후에는 춤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버스커들도 만날 수 있다. 흥이 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춤을 추기도 한다.

리스본에는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노란 트램도 있다.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탈 수 있다. 우리는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잠깐씩 우버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요금은 캐나다에 비해서 많이 싸고 한국과 비교해도 싼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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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칸타라 전망대로 오르는 언덕길과 트램

리스본 시내를 전망해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여러 곳 있는데 급경사길을 헉헉거리며 알칸타라 전망대에 올랐다. 트램을 이용할 수도 있는데 경사는 급하지만 거리가 크게 멀지 않아 우리는 천천히 골목길을 감상하며 걷기로 했다. 포르투갈에는 이런 급경사 골목길이 많다.

그 골목길 양 옆으로 옅은 파스텔 색의 개성 있는 건물들이 19세기쯤으로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느끼게 한다. 벽에 그려진 낙서와 우중충한 하늘 아래 베란다 밖에 걸려있는 빨래들이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그 오래된 건물에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도 만드는,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것 같은 거리 풍경이 눈 돌리는 곳마다 펼쳐진다. 헉헉거리며 알칸타라 전망대에 오르자 눈 아래 붉은색 지붕과 하얀 벽의 건물들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멀리 생 조르주 성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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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렝탑과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가 보았다. 벨렝탑은 타구스 강가에 위치해 있고 외부 세력의 침입으로부터 내륙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적 요새로 구축된 곳이다. 공원을 가로질러 위치해 있는 수도원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인 만큼 석조 건물 내부 장식들이 아름다웠다. 포르투갈 건축물들이 독특한 것은 500여 년 간 무어 제국의 지배아래 있었던 영향으로 둥근 돔과 원숭이, 코끼리 등의 이국적인 동물들의 장식, 코발트빛 타일로 장식된 건물 외벽이나 벽화, 건물 천정 등을 흔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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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렝탑과 항구에 서있는 대항해 출항 기념비

해양제국을 건설하고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포르투갈은 1974년 독립을 추구하는 앙고라,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식민지 주민들과의 전쟁에 염증을 느낀 일부 엘리트 군장교들이 주축이 된 카네이션 혁명으로 식민 통치를 종식한다고 선언했다. 시민들은 혁명군을 지지하는 의미로 카네이션 꽃을 가슴에 달아 주거나 총구에 꽂아 주었다고 한다. 혁명세력들은 오랜 세월 독재와 억압, 식민주의를 자행한 파시스트 정권을 축출하고 군부에 의한 임시정부를 거쳐 1976년 새로운 헌법을 기반으로 한 민주 공화정을 수립했다. 새로운 헌법은 자유와 공정, 형제애를 바탕으로 민주적 법치주의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주의 사회를 지향한다고 선언했다. 이 지향에 따라 국가 주요 기업이 국영화되었으나 이들의 사회주의는 구소련이나 동유럽의 공산주의보다는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에 가까운 것이라고 한다.

리스본의 관광거리를 걷다 들린 서점의 진열대 위에서 혁명의 역사나 주요 지도자였던 군장교들에 대한 서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독재자가 군사적 대결을 피하고 도피함으로써 무혈혁명이 성공했던 점,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에 비해 덜 폭력적이었던 살라자르 정권의 통치, 대부분 국민이 가톨릭 신자이지만 교회의 정치적, 사회적 지배력이 상대적으로 다른 유럽 국가들에 약했던 역사적 배경들이 내가 만난 포르투갈 사람들의 밝고 온화한 성품에 반영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해외 식민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포르투갈 국민으로 인정하는 포용적 정책을 실시했던 포르투갈이지만 세계의 양극화로 인한 갈등과 극단적 세력의 대두를 피해 갈 수 없는 모양이다. 지난 2019년 선거에서 1명의 국회의원이 극우 이념을 표방하는 정당에서 당선되었다. CHEGA!(enough!)라는 정당인데 극우 세력이 강화되는 유럽의 분위기에 힘입어 창당한 첫 해에 의회진출에 성공했다. 경제적 자유민주주의와 포르투갈 내셔널리즘, 반 이민, 반 이슬람 등을 주장한다.

참고로 포르투갈은 권역별 정당명부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선출한다. 정당 명부제 비례대표제가 소선구제의 단점을 보완하여 소수 정당의 득표수를 살리는 장점이 있는데 그 결실을 극우 정당이 획득한 셈이다. 비례대표제의 일부형태를 수용한 한국의 선거제도 하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전광훈의 당이 1석이라도 의회 의석을 차지한다면 국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소수당의 대표성을 살리고 의회의 다변화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다음 단계라고 생각한 나에게 새로운 고심거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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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조루즈성을 둘러싸고 있는 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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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생 조르주 성을 구경하기 위해 택시가 더 이상 가지 않는 지점에서부터 헐떡거리며 가파른 언덕길을 달렸다. 전날 구입한 패스의 유효시간(24시간)이 끝나기 전에 무료로 입장하기 위해서 아침부터 서둘러왔다. 생 조르즈 성은 11세기 무어인들이 리스본 성채 안에 건설한 것인데 주로 정치적, 종교적, 사회지도층들이 거주하는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16세기 이후 건설된 포르투갈의 다른 성들에 비해 소박하지만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 군사적 목적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지역에는 아주 오래전(기원전 7세기) 페니키아인부터 로마인, 무어인을 거쳐 포르투갈이 독립하기까지 긴 세월에 걸쳐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살았다. 1996년 한 고고학자에 의해 여러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아직도 유물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고 성 안 작은 전시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정원 곳곳에서 자유롭게 놀고 있는 공작새 무리들을 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리스본에서 신트라로 떠나기 전 날, 자동차를 빌려 카스캐스Cascais와 마리나와 보카 도 인페르노Boca do Inferno를 구경하고 좀 더 달려 경치가 유명한 우르사 해변과 카보 다 로카 구경에 나섰다.


카보 다 로카Cabo da Roca는 호카 곶이라고도 하는데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이다. 대륙의 서쪽 끝이라니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상업이 발달할 만도 하건만 등대와 관광 안내소, 십자가 달린 석비 외에는 자연 그대로의 절벽이었다. 바닷가 절벽에 부딪치는 파도가 이곳이 세상의 끝이니 저 바다 너머를 꿈꾸지 말라는 듯 거칠기 짝이 없다. 절벽 위 둔치에 바닷바람을 받으며 자라는 모자반 같기도 하고 톳 같기도 한 키 작은 식물들이 캘리포니아 북쪽 해변에서 본 식물들과 닮아있다. 지구를 반바퀴 돌아 그 해안에 닿은 사람들처럼 이 식물들도 함께 그 먼 여행을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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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서서 망망한 바다를 바람과 석탄에 의지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헤매며 죽음의 공포와 새로운 희망 사이에서 분투했을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인간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거리가 잘 느껴지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나에게는 그들의 고난과 용기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들을 움직인 궁극적 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평범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선택하게 했을까?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들이 두려움에 맞서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서는 모험을 감행했다면 더 이상 미지의 새로운 땅이 없는 오늘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어디에서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권력과 재력을 갖춘 누군가는 우주로 눈을 돌리지만 평범하고 가난한 나 같은 사람은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을까? 과거의 나를 살게 했고 오늘 나를 살게 하고 미래의 나를 살게 할 힘은 내게도 힘 있는 자들에 못지않은 욕망과 희망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나의 욕망, 희망은 무엇일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사람이 살기에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너무 쉽게 잊혀지고 짓밟혀 버리는 그 당연한 욕심과 희망이 아닐까? 그 희망을 안고 거리에서, 학교에서, 연구실에서, 의사당에서, 법원에서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연대의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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